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평화의 집에서 공동선언문에 서명 후 포옹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평화의 집에서 공동선언문에 서명 후 포옹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6월 2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이 북한 경제 개방의 주요 수혜자가 될 것”이라며 “한국 주식 투자자들이 통일펀드에 수천만달러의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이자산운용의 김연수 펀드매니저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통일은 한국 경제에 강한 성장 모멘텀이 될 것으로 본다”며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결국에는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자산운용은 대표적인 통일펀드인 ‘하이 코리아 통일르네상스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FT의 보도대로 한국 주식시장에 통일펀드 바람이 불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 미·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고, 남북 경제협력(경협)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통일펀드에도 덩달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펀드평가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 있는 8개 통일펀드에 올해 들어서만 268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미국 금리 인상 여파로 국내 주식시장이 부진한 가운데 거둔 성과라 통일펀드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통일펀드 붐은 전 정권에서 시작됐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들고 나오면서 여러 증권사와 운용사가 통일펀드를 출시했다. 하이자산운용의 하이 코리아 통일르네상스 펀드나 신영자산운용의 ‘신영 마라톤 통일코리아 펀드’가 이때 출시된 대표적인 통일펀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론이 이렇다 할 결과물 없이 흐지부지되면서 통일펀드도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녹색성장펀드가 정권의 기조에 맞춰서 잠깐 반짝하다 사라진 것처럼 통일펀드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듯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통일펀드에 다시 햇볕이 들었다. 남북 관계 개선 바람을 타고 남북 경협 종목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통일펀드도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이다. 다른 자산운용사도 적극적으로 통일펀드를 내놓고 있다. KB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이 기존 주식형 펀드를 통일펀드로 리모델링해서 판매하고 있고, 하나UBS자산운용도 1999년부터 운용하고 있는 펀드를 통일펀드로 바꿔서 내놨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중국 주식에도 투자하는 통일펀드를 조만간 출시하기로 했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북한 개방과 관련된 다양한 금융 상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남북 협력 강화로 인한 영향이 통일펀드의 성과로 이어진다면, 통일펀드가 단기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섹터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통일펀드는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과정에서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다. 하지만 국내에 출시된 통일펀드는 남북 경협주보다 삼성전자 같은 대형주 투자 비율이 높은 경우가 많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부정적인 전망이 해소되면서 삼성전자 같은 대형주도 수혜가 있을 수 있지만, 통일펀드라는 이름에는 맞지 않다. 실제로 신영 마라톤 통일코리아 펀드나 하이 코리아 통일르네상스 펀드는 투자 종목 가운데 삼성전자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연초 이후 수익 내는 펀드 없어

이렇다 보니 국내 주식시장이 부진하면 남북 관계 개선과 무관하게 통일펀드 수익률도 떨어지고는 한다. 올해 들어서 남북 관계 개선이 급진전되고 있지만, 통일펀드 가운데 연초 이후 수익을 내고 있는 펀드는 단 하나도 없다. 기간을 최근 1년으로 넓혀도 하이 코리아 통일르네상스 펀드만 4.92%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고, 다른 펀드들은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고 있다.

김후정 연구원은 “통일펀드 같은 테마펀드가 확실한 자리를 잡으려면 투자 테마가 확실하거나 다른 액티브펀드보다 뚜렷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며 “북한 경제 개발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인 만큼, 통일펀드 투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Plus Point

“통일펀드 시기상조…제재부터 풀려야”

유승민 삼성증권 북한투자전략팀장. 사진 삼성증권
유승민 삼성증권 북한투자전략팀장. 사진 삼성증권

삼성증권은 지난달 증권업계 최초로 북한 관련 전담 리서치팀인 ‘북한투자전략팀’을 만들었다. 기존에 투자전략팀에서 하던 북한 관련 리서치 기능을 떼어내 전담 조직을 만든 것이다. 앞으로 남북 경제협력이 확대되면 북한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질 것으로 보고 한발 앞서 움직였다. 유승민 삼성증권 북한투자전략팀장을 만나 주식 투자자의 입장에서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물었다.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북한 관련 기업은 테마주처럼 여겨졌다. 이슈가 사그라들면 관심도 없어지는 식이었다. 앞으로는 달라질까.
“북한은 전략적으로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는 상황에서 북한 투자의 안정성도 덩달아 높아지고, 장기적인 투자도 가능해질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한국 주식시장의 새로운 투자 트렌드로 떠오를 것이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북한은 어떤 매력이 있나.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일단 한국 경제 자체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북한 경제가 재건되고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남북한을 합쳐서 8000만명에 달하는 소비시장이 만들어진다.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까지 합치면 거대한 시장이 만들어지는 효과가 있다. 또 남북의 산업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주식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사라질 수 있다. 한국 주식시장은 신흥국인 데다 한반도 지정학적 위기 때문에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사라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시장에 몰리는 코리아 알파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 투자자들도 남북 관계 개선에 관심이 많나.
“아직까지는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개혁·개방에 나설지에 대한 의심이 많다. 하지만 충분한 신뢰가 형성되면 다양한 경로로 북한에 투자할 것으로 본다. 주식시장을 통한 간접적인 투자뿐 아니라 북한 지역의 인프라 투자, 기업 설립 등 직접적인 투자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외국 투자자들을 만나보면 북한의 어떤 산업 분야에 투자해야 할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통일펀드가 다시 관심을 모으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아직 통일펀드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통일펀드가 시가총액 상위의 대형주 위주로 편성돼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거라는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다.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진행되고 국제 사회의 제재가 해소되면 투자 기업이나 산업을 고르는 게 수월해질 것이다. 경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혜주가 나타날 것이다. 그때가 돼야 통일펀드가 의미를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