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시대를 맞아 한시적이나마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따라 옮기는 ‘통장 메뚜기족’이 늘고 있다.
제로금리 시대를 맞아 한시적이나마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따라 옮기는 ‘통장 메뚜기족’이 늘고 있다.

“요즘 이자 3%짜리 통장이 어디 있나요. 100만원까지만 적용된다고 해서 남편과 부모님까지 총동원해 계좌 네 개를 만들었어요. 마침 카카오페이증권이 5% 이자를 주는 기간이 끝나서, 거기 넣어둔 원금을 그대로 옮겼죠.”

6월 8일 ‘네이버통장’이 출시되자마자 계좌를 개설한 직장인 박지영(35)씨 얘기다. 네이버통장은 미래에셋대우와 네이버파이낸셜이 함께 내놓은 수시입출금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통장으로, 8월 31일까지 예치금 100만원까지 연 3% 수익률을 보장한다. 출시 첫날부터 프로모션 기간이 끝날 때까지 100만원을 넣어두면 약 5840원을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돈 넣어둘 곳이 마땅치 않은 제로금리 시대라 가입자가 몰리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출범한 카카오페이증권은 간편결제 계좌를 증권 계좌로 업그레이드하면 한시적으로 예치금 100만원까지 연이율 5%를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해, 100여 일 만에 가입자 125만 명을 모집하는 성과를 거뒀다. 해당 프로모션은 6월 1일부로 종료됐는데, 열흘이 지나기도 전에 네이버가 치고 들어왔다. 한 금융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카카오페이증권 이용자를 대상으로 ‘체리피킹(cherry picking·좋은 혜택만 골라 취하는 소비자 행위)’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네이버통장이 출시된 6월 8일 재테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카카오페이증권에서 네이버통장으로 갈아탄다” “6월부터 카카오 이율이 0.6%로 급락해 돈 넣어둘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잘됐다” 등의 반응이 다수 나왔다. 1%라도 높은 금리를 찾아 이 통장, 저 통장을 옮겨다니는 소위 ‘통장 메뚜기족’이다. 통장 개설 프로모션 대부분에 고금리 혜택이 적용되는 예금액 한도가 정해져 있다 보니, 이들은 가족·친지를 총동원해 돈을 넣고 프로모션 기간이 끝나면 돈을 빼는 행동 양식을 보인다.

네이버·카카오와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최근 금융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8월 5일부터 시행되는 신용정보법 개정안에 따라, 고객 개개인의 신용정보를 통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데이터(my data)’ 산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와 같은 간편결제 사업에 주력하던 사업자들이 이제는 자산 관리, 펀드 투자, 보험 가입 등의 영역에까지 발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3% 수익률을 앞세운 네이버통장 출시에 맞서 카카오페이증권은 결제와 투자를 연계한 ‘알모으기’와 ‘동전모으기’ 서비스를 내놨다. 사진 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증권
3% 수익률을 앞세운 네이버통장 출시에 맞서 카카오페이증권은 결제와 투자를 연계한 ‘알모으기’와 ‘동전모으기’ 서비스를 내놨다. 사진 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증권

본격화된 핀테크 경쟁…‘유저 붙잡기’가 관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두 회사는 초기 가입자 모집 이후 이들의 이탈을 막는 ‘록인(lock in)’에도 총력을 다할 전망이다. 카카오페이증권은 6월 1일 결제와 투자를 연계한 ‘알모으기’와 ‘동전모으기’ 서비스를 출시했다. 알모으기는 카카오페이로 결제하면 리워드를 제공하고, 이를 펀드 상품에 자동으로 투자하는 서비스로 일주일 만에 10만 명이 신청했다. 동전모으기는 카카오페이로 결제하고 남은 1000원 미만의 동전을 펀드 상품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소액으로 투자 경험을 심어주고, 이를 실제 투자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앞으로도 금융 상품 투자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투자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개발할 것”이라며 “카카오페이증권은 이용자에게 투자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 생활 속 투자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자사 플랫폼 서비스와 연계한 포인트 혜택으로 네이버통장 가입자를 붙잡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네이버통장으로 네이버페이 포인트를 충전하고 이를 네이버쇼핑·예약 등에서 결제하면 결제 금액의 3%를 포인트로 적립해준다. 또 고금리 프로모션이 종료되는 8월 31일 이후에도 일정 실적을 달성하면 혜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2021년 5월까지는 전월 결제 금액 월 10만원 이상이면 이전과 동일하게 예치금 100만원까지 연 3% 수익률을 보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업계의 숙원인 데이터 3법이 개정돼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고, 제로금리 시대인 만큼 자산 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전망은 밝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중 금리가 낮은 만큼 펀드 투자 등에 대한 니즈가 강해지고 있다”라며 “네이버·카카오 등은 플랫폼 기업의 강점을 살려 접근성이 뛰어난 맞춤형 금융 상품으로 승부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도 “데이터 3법의 통과로 핀테크 업계에서 빅데이터 분석 능력이 뛰어난 ICT 기업의 역할이 더 커졌다”며 “데이터와 금융을 융합하고, 나아가 금융과 비금융을 융합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Plus Point

연 3% 준다는 네이버통장, 원금 손실 가능성은?

“본 상품은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하지 않으며,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통장 가입 홈페이지의 안내 사항에 명시된 문구다. 네이버통장은 일반 예금 통장이 아닌 환매조건부채권(RP)형 CMA 통장으로, 원금을 5000만원까지 보전하는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은행권 통장과 달리 ‘이자율’이 아닌 ‘수익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네이버통장은 펀드 운용에서 손실이 나면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는 위험한 통장”이라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그러나 네이버통장 운영 주체인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네이버통장은 RP형 CMA를 운용해 얻는 수익률과 무관하게 3% 수익률을 약정한 것”이라며 “운용상 손실이 나더라도 이는 미래에셋대우가 감당해, 가입자에게 전가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약정한 수익률을 보장하지 못하고, 원금 손실을 내는 경우는 미래에셋대우가 파산하는 상황 정도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비대면 금융 서비스가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금융 상품 가입 시 그 위험성에 대해 좀 더 자세하고 확실하게 고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남주 금융소비자원장은 “직접 육성으로 설명하는 대면 금융 상품 가입과 달리, 비대면 방식은 위험 정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크다”며 “RP형 CMA는 원금 손실 위험이 매우 낮은 상품이지만, P2P 대출 등 위험도 높은 상품에 소비자들이 ‘무지 속의 가입’을 한다면 문제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