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허리케인 하비로 침수된 미국 텍사스주 스프링의 한 주택 앞에서 일가족이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해 8월 허리케인 하비로 침수된 미국 텍사스주 스프링의 한 주택 앞에서 일가족이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피해가 늘면서 보험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관련 보험금 지출이 크게 늘면서 수익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캠페인 당시 “기후 변화는 사기(hoax)’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당선된 뒤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6월에는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도 탈퇴했다. 환경 규제를 풀어 일자리를 만들고 지지자를 끌어들이려는 의도였다.

기후변화협정은 2015년 195개국이 합의한 국제협정이다.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골자다. 그리고 지난해,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허리케인과 지진 등 전 세계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세계 최대 재보험사인 독일의 뮌헨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자연재해로 인한 전 세계 손실액을 3300억달러(약 353조2600억원)로 추정했다. 2만2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에 이은 사상 두 번째 규모다. 특히 하비∙어마∙마리아 등 허리케인과 캘리포니아 산불을 포함한 초대형 재해가 이어진 북중미 지역의 피해가 컸다.


자연재해 손실 97%가 기후 변화 관련

이와 관련해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은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16건의 대형 자연재해로 인한 재산 피해액이 사상 최대인 3060억달러(약 327조5700억원)에 달했다고 지난 8일(현지시각) 발표했다. 건당 피해 규모가 무려 20조원이 넘는다. 뮌헨리는 지난해 전 세계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의 97%가 기후 변화와 관련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1980년 이후 평균 수치는 85%였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증가는 보험금 지급 증가로 이어졌다. 뮌헨리는 같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자연재해로 인한 전 세계 보험금 지출 규모가 1350억달러(약 144조4500억원)였다고 전했다. 이 또한 사상 최대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미국 손해보험 업계의 종합비율(combined ratio)이 2016년 100.7%에서 지난해 104.4%로 상승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종합비율은 보험금 지출 총액을 보험료 수입으로 나눈 것이다. 종합비율이 높아지면 수익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경주지진 이후 풍수해보험 가입 증가

미국 AIG는 3개의 초대형 허리케인과 멕시코 지진 등으로 지난해 3분기에만 최대 31억달러의 보험 손실을 떠안은 것으로 추정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도 보험 부문에서 이와 관련한 지급액이 30억달러에 달했다. 이에 따라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보험 사업에서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보험사들이 막대한 손실에 직면하면서 수년 만에 처음으로 보험 업계가 보험료 인상에 나설 전망이다. 버뮤다 보험사 XL그룹 부회장을 지낸 스티븐 캐틀린은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보험료 책정이 매우 어려웠다”면서 “보험료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대규모 자연재해에 맞닥뜨리게 되면 전반적인 보험료 상승이 뒤따르게 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2016년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한 이후 풍수해보험 가입이 늘고 있다. 풍수해보험은 태풍·홍수·강풍·풍랑·해일·대설·지진 등 자연재해로 발생하는 피해를 최대 90%까지 보상하는 정책보험이다. 가입자의 소득에 따라 정부가 최대 92%까지 보험료를 지원한다.

지난해 11월 포항 지진 이후 금융 당국과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지진 전용 보험’ 출시도 추진됐지만 두 달 만에 백지화됐다.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손보 업계의 반발 때문이었다. 보험사들은 기존 손해보험의 특약 형태로 지진 피해 보상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전용 상품까지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손해보험 중 화재보험에 지진 특약을 추가하거나 정부가 보험료를 지원하는 풍수해보험에 가입하면 지진 피해를 일부 보상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진 특약 가입률은 지난해 말 기준 0.06%에 불과하다.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풍수해보험 가입 규모도 아직 200억원대에 머물러 있다.

이에 앞서 2016년 경주 지진 직후에도 금융 당국이 보험사들과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지진 전용 보험 도입을 논의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지진 발생이 잦은 일본은 정부가 일본지진재보험회사를 설립해 민간 보험사의 리스크를 분담하고 있다.


Plus Point

자연재해가 불러온 기술 혁신

일본 사이버다인이 개발한 ‘HAL 로봇’ 슈트를 착용한 모습. <사진 : 트위터 캡처>
일본 사이버다인이 개발한 ‘HAL 로봇’ 슈트를 착용한 모습. <사진 : 트위터 캡처>

자연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기술 혁신에도 속도가 붙었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최신 기술이 현장 구조 활동에 접목되고 있다.

일본 로봇 기업 사이버다인에서 출시한 ‘HAL 로봇’은 ‘아이언 맨’ 슈트와 비슷하다. 뇌 신경에서 근육으로 보내는 신호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사람의 힘을 10배 가까이 증가시킬 수 있다. 슈트의 무게는 20kg이 넘고, 배터리로 작동하며 3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주로 재해 현장에서 인명 구조나 탈출구 확보 등에 사용된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페이지드링킹페이퍼’가 개발한 ‘마시는 책(Drinkable Book)’은 바이러스를 거를 수 있는 초미세 항균 필터를 접목해 재해 지역의 식수난 해소를 돕는다. 보기에는 일반 책과 비슷하지만, 다 읽고 난 뒤에 책장을 한장씩 뜯어 필터로 사용하도록 고안됐다. 책 제작 비용은 몇 달러 수준으로, 한 장당 10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한 장으로 짧게는 수일, 길게는 한 달까지 정수 필터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다.

자연재해가 닥치면 대부분의 생활 인프라가 파괴돼 먹고 마시는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어진다. 이 중에서도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식수가 가장 큰 문제다. 실제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쳤을 때 뉴올리언스 지역에서는 1달러짜리 생수 한 병이 수십달러에 팔려서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국의 재난방지기술 전문업체 아이오세이프(IoSafe)는 2005년부터 허리케인과 산불 등 각종 자연재해로부터 소중한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특수 외장하드를 개발해 왔다. 이 제품은 3m 깊이의 물속과 1500도 고온에서도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극심한 가뭄으로 산불 피해가 심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절수형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 물 사용량을 절반 이상 줄여주는 수도꼭지와 샤워기꼭지 등이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