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을 한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최근 집값과 전셋값이 하락해 일부 지역에선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에 모자란 ‘깡통전세’마저 나타났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3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을 한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최근 집값과 전셋값이 하락해 일부 지역에선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에 모자란 ‘깡통전세’마저 나타났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서울 광장동 빌라에 살던 정모(40)씨는 전세계약이 만기가 되면서 이사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방이 나가지 않는다’며 전세보증금 지급을 미뤘다. 새로 계약한 집의 전세보증금 마련이 힘들어진 정씨는 부랴부랴 은행 신용대출까지 받아 간신히 새로 계약한 집의 전세보증금을 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현행법에 따르면 살던 집에서 짐을 빼고 이사를 가면 집주인이 은행대출이나 전세보증금 등 빚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매각돼도 보증금을 요구할 수 없다. 세입자가 실제 거주(점유)해야만 살던 집에 대한 권리(우선변제권)가 유지되고 이사를 나가면 이 권리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하는 수 없이 아이와 아내를 새집에 남겨두고 본인의 이부자리만 남은 집에서 살아야 했다. 2개월간 이렇게 지낸 끝에 보증금을 받은 정씨는 “가족과 떨어져 매일 혼자 자야 했던 일만 생각하면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 당연히 내 돈인 보증금을 돌려받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정씨처럼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아파트 신규 분양 등 주택 공급이 늘면서 전세 공급물량도 함께 늘어나자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전셋값이 2년 전보다 크게 하락(2017년 12월 이후 15개월 연속 하락·한국감정원)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에 받은 보증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세를 놔야 하는데 그 차액을 마련하지 못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도 많다.

이렇게 보증금을 제대로 되돌려주지 못할 때 집주인들은 ‘좀 기다려달라’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많게는 수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를 대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버티는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안 돌려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세입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보증기관의 보증상품에 가입하는 것이다. 보증상품은 일정 금액의 보증료를 내면,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보증기관이 이를 대신 갚아주는 일종의 보험이다. 전세 계약이 끝난 지 한 달 안에 세입자가 보증기관에 청구하면 심사를 거쳐 전세보증금 전액을 지급한다.

현재 세입자가 가입할 수 있는 보증상품은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과 서울보증보험(이하 SGI)의 ‘전세금보장 신용보험’이다. 두 보증상품 모두 전세금을 대신 돌려주는 기본 구조는 같지만 보증해주는 전세금 한도금액 등 일부 조건에서는 차이가 있다.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서울 등 수도권은 7억원까지, 지방은 5억원까지만 보증금을 대신 갚아준다. 지역에 따라 보증한도가 다르지만 아파트인지 다세대주택인지 등 주택의 종류에 따라서는 보증금액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

반면 SGI의 전세금보장 신용보험은 주택의 종류에 따라 보증금액의 한도가 다르다. 아파트의 경우 지역에 관계없이 보증한도가 없어 고액의 전세계약을 한 세입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단독주택 등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대해서는 10억원까지만 보증해준다.

HUG의 보증한도를 넘는 고가의 전세계약을 체결한 세입자는 SGI의 상품을 이용하면 되는 셈이다. 두 상품 모두 가입절차는 간단하다. 집주인 동의 없이 가입할 수 있고 전세계약서와 주민등록등본 등 관련서류를 보증기관의 영업점이나 협약을 맺은 은행에 제출하면 된다.

보증상품에 가입할 때 보증기관에 내야 하는 수수료는 HUG가 좀 더 저렴하다.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경우 아파트는 전세보증금의 0.128%, 아파트 외 주택은 0.154%의 금액을 연간 보증료로 내야 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 보증금 5억원에 대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할 경우 연 64만원(5억원×0.00128)을 보증료로 내면 된다. 한 달에 5만3000원 정도를 부담하는 셈이다. 보증료는 6개월 단위로 나눠서 낼 수도 있고 세액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단 세액공제는 보증대상이 3억원 이하 보증금일 때만 가능하다.

SGI의 전세금보장 신용보험의 보증료율은 아파트가 연 0.192%, 아파트 외 주택은 연 0.218%로 HUG보다 각각 0.064%포인트씩 보증료율이 높다. KB금융경영연구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HUG와 SGI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가입 규모는 2015년 2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23조4000억원으로 3년 동안 8.6배(20조7000억원) 커졌다.


법원에 지급명령 신청도 가능

한편 보증금 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분쟁조정이나 소송 등의 절차를 이용해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분쟁조정위원회를 두고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세입자와 집주인의 분쟁을 조정해주고 있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등 전국 6곳의 위원회 지사에서 분쟁조정을 해준다. 하지만 집주인이 분쟁조정에도 응하지 않으면 전세보증금 지급명령을 법원에 신청해야 한다. 관할 지방법원에 신청하면 법원은 지급명령신청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관련 서류와 함께 집주인에게 전달한다. 2주 안에 집주인이 이의신청하지 않으면 지급명령이 확정된다. 지급명령이 확정되면 세입자는 집을 경매에 넘겨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강제집행’ 권한이 생긴다.

집주인이 지급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면 집주인과 세입자는 민사소송인 보증금반환소송(임대인 주소지 관할지방법원)을 해야 한다. 소송에서 승소해도 강제집행 권한을 얻을 수 있다.

세입자가 강제집행으로 집을 경매에 넘길 경우에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법원에 배당요구를 해야 한다. 배당요구는 경매낙찰 금액 중 일부금액이 세입자가 돌려받아야 할 전세보증금이라는 것을 법원에 알리는 절차다. 법원이 낙찰된 금액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모두 알 수는 없기 때문에 법원이 정해준 기일 이내에 세입자 본인이 스스로 배당요구를 해야 한다.


Plus Point

보증금 못 받고 이사 갈 때는 임차권등기명령 신청해야

집주인이 보증금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이사를 가야 한다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야 한다. 임차권등기는 못 받은 보증금이 있다는 것을 주택의 등기부등본에 명시하는 제도다. 임차권등기가 되면 새집에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전입신고를 해도 예전에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임차권등기 없이 이사 가면 경매로 넘어간 집에 대해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가 없다.

임차권등기의 신청은 가까운 법원(시·군 법원 포함)에서 할 수 있다. 임차권등기명령신청서를 임대차계약서, 주민등록등본, 건물등기사항증명서 등 관련서류와 함께 제출하면 된다. 신청 수수료는 등록세와 대법원등기수입인지, 대한민국정부수입인지 등을 모두 포함해 3만원가량이면 되고 이 비용도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일단 임차권등기가 발효되면 그때부터 세입자는 보증금을 늦게 돌려받은 것에 대한 지연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