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이 궈타이밍 훙하이그룹 회장과 함께 폭스콘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글로벌 기업이 잇따라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외국인직접투자는 오히려 감소했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이 궈타이밍 훙하이그룹 회장과 함께 폭스콘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글로벌 기업이 잇따라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외국인직접투자는 오히려 감소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도요타·폭스콘·소프트뱅크·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이 앞다퉈 미국에 대한 투자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에 대한 전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을 주요 시장으로 둔 일부 기업이 트럼프의 투자 확대 요구에 호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무역주의가 실제로는 미국의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렸다는 분석이다.


“무역 적자와 전쟁은 곧 외국인 투자와 전쟁”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에 대한 FDI 금액은 836억달러(약 94조원)로 지난해 1분기(1456억달러)보다 크게 감소했다. 2485억달러를 기록했던 2015년 1분기와 비교하면 올해 외국인 투자 규모는 훨씬 작다. 국제투자기구(OFII)는 “올해 1분기 미국에 대한 FDI는 최근 몇 년간 미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투자 평균을 하회한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인센티브 계획을 내놓았지만, 반무역 정책 기조가 이런 노력을 상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역과 이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적대적인 수사(修辭)가 미국이 세계 자본 흐름에 역행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이것이 미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사 허친슨 아칸소 주지사는 “로레알을 포함해 아칸소주에 생산시설을 가진 외국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동안 자유무역을 지지해온 미국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아칸소주는 외국 기업의 투자를 환영하고 미국은 앞으로도 외국인 투자에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애리조나도 마찬가지다. 애리조나 주도(州都) 피닉스의 경제자문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 카마초 위원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반무역 기조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가능성은 미국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결정을 지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닉스는 840여개 외국 기업이 6만3000명을 고용하고 있어 외국인 투자가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도시다.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미국 경제의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외국인 자금 유입을 억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FDI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무역 적자 축소는 결국 FDI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트럼프는 왜 미국으로 들어오는 FDI를 공격하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무역 적자와의 전쟁은 곧 외국인 투자와 전쟁을 벌이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무역적자와 외국인 투자의 관계를 보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수출과 수입을 보는 것이다. 미국의 수입이 수출보다 많다는 것은 미국인들이 자국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소비한다는 의미다. 소비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은 다른 국가로부터 돈을 빌려야 하는데 이는 외국인 자본 유입으로 이어진다. 저축보다 많은 투자를 봐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저축률이 매우 낮지만 이보다 많은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투자보다 부족한 저축 역시 외국인 자본이 채우고 있다.

또 투자에 대한 수요가 저축을 통한 자금 공급을 넘어서면 이자율이 높아진다. 높은 이자율은 투자금 유입으로 이어지는데, 미국에 투자하기 위해 달러가 필요한 외국인이 많아지면 외환시장에서 달러 가치가 높아진다. 달러 가치 상승은 다시 미국 수출을 감소시키고 수입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세 가지 경우 모두 무역 적자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감축시키려고 한다면 외국인 투자금 유입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외국인 투자가 美 근로자 640만명 고용 좌우

외국인 투자는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글로벌 공급망 확충을 통해 기업 효율성을 높여 경제를 성장시킨다. 각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투자 인프라를 확충하고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외국 기업 투자 유치에 나섰다. 그 결과 많은 기업이 미국에 대한 투자 확대를 약속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반무역 정책을 예고하고 무역 적자 축소 의지를 밝히면서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반무역 정책 기조로 외국인 투자가 주춤하게 됐고, 무역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외국인 투자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투자가 줄어드는 것은 소득을 잃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OFII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 640만명이 외국인 투자에 의지하고 있다. FDI 규모가 감소하면 향후 10년간 250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 트럼프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의미다.

Plus Point

노보 노디스크 ‘20억달러 투자’ “장기적 사업 가능성에 초점”

덴마크 제약업체 노보 노디스크. <사진 : 블룸버그>
덴마크 제약업체 노보 노디스크. <사진 : 블룸버그>

트럼프 행정부의 반무역주의가 외국인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부 기업은 미국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투자에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인슐린 제조업체인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는 20억달러를 투자해 노스캘리포니아에 85에이커(약 10만평) 부지에 새로운 공장을 지어 700명을 고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보 노디스크가 덴마크 밖에서 시설을 확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모튼 닐슨 노보 노디스크 수석 부사장은 “우리 회사는 단기적인 정치적 변동보다 장기적인 사업 가능성에 투자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제품을 판매하는 환자들은 지금 여기(미국) 있고, 10~20년 후에도 이곳에 있을 것”이라며 “워싱턴 상황에 우리의 투자 결정을 의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