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의 테스코 매장에 있는 머니그램 가맹점. <사진 : 머니그램>
폴란드 바르샤바의 테스코 매장에 있는 머니그램 가맹점. <사진 : 머니그램>

1월 2일(현지시각) 중국 최대 핀테크 업체인 앤트파이낸셜(알리바바 자회사)이 미국의 송금중개 업체인 머니그램(MoneyGram) 인수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월 앤트파이낸셜과 머니그램이 인수·합병(M&A)에 합의한 지 딱 1년 만이었다.

중국을 넘어 세계 최대 금융 기업을 꿈꾸는 앤트파이낸셜을 가로막은 건 트럼프 행정부의 반중(反中) 정서였다. 앤트파이낸셜이 머니그램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공화당 관계자들은 이 거래에 대해 꾸준히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결국 CFIUS가 두 회사의 M&A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1년에 걸친 앤트파이낸셜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글로벌 해외 송금 규모 6000억달러 넘어

머니그램은 웨스턴유니언(Western Union)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송금중개 업체다. 송금중개 업체는 은행 계좌 없이 전 세계에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은행에서 해외로 돈을 보내려면 중계은행을 거쳐야 한다. 송금은행과 수취은행 사이를 중계은행이 이어주는 구조여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수수료도 비싸다. 반면 송금중개 업체를 이용하면 해당 업체가 확보한 가맹점에서 고유번호만 확인하면 바로 돈을 찾을 수 있다. 일반 은행의 해외 송금 서비스를 이용하면 돈을 받기까지 보통 2~3일이 걸리지만 송금중개 업체를 이용하면 10분 정도면 가능하다. 수수료율도 일반 은행이 10% 정도인 데 반해 송금중개 업체는 6% 수준이다. 이런 차이는 중남미, 아프리카처럼 금융 서비스가 열악한 지역으로 갈수록 커진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해외 송금 규모는 2015년 기준으로 6013억달러(약 638조원)에 달했다. 규모가 매년 4% 이상 꾸준하게 늘고 있다. 미국은 해외 송금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다. 매년 미국에서 빠져나가는 해외 송금액만 1300억달러가 넘는데, 두 번째로 유출액이 많은 사우디아라비아(440억달러)의 세 배에 달한다. 세계 최대 송금중개 업체인 웨스턴유니언과 머니그램이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머니그램은 전 세계 200개국에 진출해 있다. 머니그램과 제휴해 송금액 수취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맹점만 해도 35만 곳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회사를 꿈꾸는 앤트파이낸셜이 머니그램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이런 글로벌 네트워크 때문이다. 앤트파이낸셜은 2025년까지 고객을 20억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확보한 고객 수는 5억명 정도인데 이를 네 배로 늘리려면 중국을 넘어 해외 시장 진출이 필수다. 앤트파이낸셜은 머니그램 인수를 위해 처음에는 8억8000만달러를 제시했는데, 중간에 유로넷 월드와이드가 10억달러를 제시하며 인수전에 뛰어들자 12억달러로 인수 금액을 높이기도 했다. 최초 제시액보다 3억2000만달러를 더 썼을 정도로 머니그램 인수에 적극적이었지만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서비스 개선 위해 블록체인 기술 활용

앤트파이낸셜과의 M&A가 무산되면서 머니그램 주가는 급락했다. 1월 2일 주당 13.31달러였던 머니그램 주가는 4일에 11.71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지지부진하던 머니그램 주가는 11일을 기점으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24일에는 12.98달러까지 올랐다.

머니그램 주가를 끌어올린 건 다름 아닌 암호화폐 업체인 리플(Ripple)이었다. 머니그램은 1월 11일 해외 송금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리플과 손잡았다고 발표했다. 리플(XRP)은 비트코인, 이더리움에 이어 암호화폐 중 시가총액이 세 번째로 많다. 다른 암호화폐와는 달리 채굴이 아닌 회사가 코인을 발행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은행을 통해 해외 송금을 하면 환전을 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에서 멕시코로 돈을 보내려면 원화를 달러화로 바꾸고 다시 달러화를 페소화로 바꿔야 한다. 환전 과정에 비용과 시간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 리플을 해외 송금에 활용하면 중간 환전 과정 없이 리플로만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게 리플 측의 설명이다. 송금중개 업체가 제공하는 기존 송금 서비스는 10분 정도 걸리는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이를 수초로 단축할 수도 있다. 머니그램이 리플과 손잡은 것도 이런 효과를 기대해서다. 알렉스 홈스(Alex Holmes) 머니그램 최고경영자(CEO)는 “리플은 블록체인 기술의 선두주자”라며 “리플과의 협력으로 송금 서비스의 효율을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해외 송금 수수료율
1%로 낮춘 핀테크

최근 해외 송금 시장에 각국의 핀테크 업체가 가세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핀테크 업체들은 다양한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머니그램 같은 송금중개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송금중개 업체들은 은행에 비해 낮은 수수료와 빠른 송금을 앞세워 세력을 넓혔지만, 핀테크 업체들 앞에서는 이런 강점이 무색해지고 있다.

핀테크 업체들이 제공하는 해외 송금 서비스는 수수료율이 1% 안팎에 불과하다. 첨단 기술과 새로운 발상을 통해 수수료율을 대폭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국의 P2P 해외 송금 업체인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는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매칭 방식으로 해외 송금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에서 인도로 돈을 보내려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로 인도에서 영국으로 돈을 보내려는 사람을 찾아서 서로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해외 송금 평균 수수료율이 1%도 되지 않는다. 영국의 월드레미트(WorldRemit), 미국의 레미트리(Remitly) 등도 트랜스퍼와이즈와 함께 해외 송금 시장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핀테크 업체다.

핀테크 업체들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기존 송금중개 업체들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머니그램이 리플과 협력한 것도 그중 하나다. 송금중개 업체 1위인 웨스턴유니언도 디지털사업부를 신설하고 텐센트, 페이스북과 업무 제휴를 했다.

이광상 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송금중개 업체를 통한 해외 송금이 은행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여전히 수수료가 많고 창구를 직접 찾아가 상당한 대기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며 “핀테크 업체들은 송금 절차 간소화를 통한 시간, 비용 절감을 강점으로 해외 송금 시장 지분을 잠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