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은행들은 실적과 상관없이 경영진에 고액 보수를 지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최근 일부 은행이 주주들의 반발로 고액 보수 지급 계획을 수정했다. <사진 : 블룸버그>
글로벌 은행들은 실적과 상관없이 경영진에 고액 보수를 지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최근 일부 은행이 주주들의 반발로 고액 보수 지급 계획을 수정했다. <사진 : 블룸버그>

영국 주요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와 ‘바클레이스’가 최근 대주주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스탠다드차타드와 바클레이스가 경영진에 주는 보너스의 지급 요건을 완화하기로 결정하자 주주들이 반발한 것이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최근 경영진에 주는 성과급의 일종인 장기인센티브계획(LTIP)을 산정하는 수익률 기준을 낮추기로 했다.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돼도 경영진은 이전과 같은 수준의 보너스를 챙길 수 있게 된 셈이다.

스탠다드차타드 주요 주주들은 “빌 윈터스 최고경영자(CEO) 체제에서 은행 수익률이 비용보다 낮아졌음에도 윈터스는 거액의 성과급을 받을 것”이라며 “경영진이 단지 일터에 나오는 데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바클레이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클레이스 CEO가 지금 수준의 보너스를 받으려면 두 자릿수의 수익률을 달성해야 했지만, 지금은 7% 수준의 수익률을 내고도 수백만달러의 보너스를 받는다.


“경영진 성과급 지급기준 크게 낮춰”

글로벌 리서치 업체 ‘오토노머스’는 “바클레이스의 보너스 지급 기준이 놀라울 정도로 낮은 수준으로 완화됐다”고 했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의 경영진 성과급 규정 변경도 논란이 됐다. RBS는 로스 맥이완 CEO에게 지급하는 LTIP 기준을 낮춰 맥이완이 더 많은 성과급을 받도록 했다.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글로벌 은행이 지난해 성과를 바탕으로 경영진에 얼마의 보수를 지급할지, 또 올해 어떤 기준으로 보수를 줄지를 발표하고 있다. 은행들은 경영진의 성과급 지급 기준을 낮추는 결정에 대해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환경에서 은행 수익성이 낮아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장 금리가 낮아 경영진이 노력해도 달성할 수 있는 수익률은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주주들은 은행의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주주에게 돌아오는 배당액이 줄었고 주가 상승률도 미미한 상황에서 경영진에만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사례를 보면 반대로 시장 금리가 상승하는 경우 경영진의 성과급 지급 기준을 높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주 반발에 시티그룹 코뱃 CEO 보수 깎여

경영진에만 관대한 은행의 태도는 ‘HSBC’의 사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HSBC는 지난 2월 스튜어트 걸리버 CEO에게 총 970만파운드의 보수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170만파운드의 인센티브가 포함됐는데, 이는 전년도 걸리버가 받은 인센티브 110만파운드보다 50% 넘게 인상된 것이다. 지난해 HSBC는 당초 세웠던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걸리버 CEO가 거액의 인센티브를 받은 것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절감해 은행 수익성을 개선한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다. 하지만 HSBC는 매출 감소를 이유로 직원의 보너스 최대 한도를 12% 낮췄다. 글로벌 은행의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들은 “좋은 성과들은 포함하고, 성적이 좋지 않은 나쁜 부분은 제외해서 평가해 경영진에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주주의 반대로 경영진의 보수가 조정된 사례도 있다. 2012년부터 ‘시티그룹’을 이끌고 있는 마이클 코뱃은 2년 연속 총보수가 감소했다. 올해 초 공개된 코뱃의 총보수는 1550만달러로, 전년보다 6% 감소했다. 당초 은행은 코뱃의 총보수를 전년보다 소폭 인상할 계획이었지만, 주주들이 단기 목표가 달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성과급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보수 지급액을 변경했다.

주주가 나서기 전에 외부 기관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 기업 의결권 자문기관 ‘글라스루이스’는 크레디트스위스 주주들에게 경영진 보수 지급에 대한 회사의 결정에 반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해 트레이딩 부문 손실에 법적 분쟁에 따른 비용까지 겹치며 실적이 악화됐고 주가도 하락했다. 그러나 회사는 티잔 티엄 CEO 보수로 1190만프랑을 지급하는 계획을 승인해달라고 주주들에게 요청했다. 글라스루이스는 “지난 2년 주주들이 회사의 손실을 견뎌야 했던 것을 고려하면 회사가 결정한 CEO 보수는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이라며 “주주들은 회사가 손실을 보면서도 경영진에 상당한 성과 보수를 지급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제조업도 고액 성과급 논란

마크 필드 포드 CEO <사진 : 블룸버그>
마크 필드 포드 CEO <사진 : 블룸버그>

경영진에 막대한 성과급을 지급하는 관행은 일반 제조 업계에도 만연해 있다. 포드의 마크 필드 CEO의 총보수는 2210만달러로, 전년 1860만달러보다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는 250만달러의 ‘전략적 인센티브’가 포함돼 있다. 필드가 포드 CEO에 취임한 이후 주가가 크게 하락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2016년 3월 필드가 이사회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링컨’ 브랜드와 중국 시장에 진출한 모델 등 성장하는 기회를 고려하면 경영 성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혁신에 따른 성과는 재무적인 성과와 다를 수 있다고 설득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기업 실적이 악화되고 주가는 하락했지만, 유리한 기준을 적용해 결과적으로 더 많은 보수를 챙겼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이런 상황을 겪은 글로벌 회사들은 주주가 나서 경영진의 고액 성과급 지급을 막았다. 영국 생활용품 업체 ‘레킷벤키저’는 주주들의 반대로 라케시 카푸어 CEO에게 2550만파운드를 지급하려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고, 담배 업체 ‘임페리얼브랜드’ 역시 알리슨 쿠퍼 CEO에게 지급하기로 한 850만파운드 보수를 삭감했다. 방산 업체 ‘쳄링’과 금고 제조 업체 ‘세이프스토어’ 역시 새로운 인센티브 계획을 철회했다. 리갈앤드제너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헬레나 모리세이는 “지난 18년간 영국 주식시장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주요 기업 경영진의 임금은 3배 늘어났다”며 “이해할 수 없는 격차”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