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한은 가계부채 통계에서는 최근 연달아 오류가 발견됐다. <사진 : 블룸버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한은 가계부채 통계에서는 최근 연달아 오류가 발견됐다. <사진 : 블룸버그>

한국은행의 ‘부실 통계’가 논란이다. 한국 경제의 뇌관이라고 지목받는 가계부채 관련 통계에서 연이어 오류가 발견되면서 한은의 신뢰도에는 심각한 흠집이 났다.

한은은 지난 12일 “비(非)은행 예금 취급기관의 주택담보대출 수치가 그동안 ‘과잉 집계’됐음을 확인하고 정정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월별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이 30~40%가량 부풀려졌다는 설명이었다. 즉 저축은행·상호금융·신협·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으로의 가계대출 ‘풍선효과’ 현상이 통계 오류의 결과물일 수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지난 3월에는 잘못된 저축은행 가계대출 증가액을 발표했다가 뒤늦게 정정했다. 한은은 당시 올해 1월 저축은행 가계대출이 전월 대비 9775억원 늘었다고 발표했다. 월간 증가액으로는 사상 최대 수치였다.


‘가계부채 풍선효과’는 통계 오류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점검 결과 최종 수치는 4607억원으로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 협회가 준 수치를 확인 없이 갖다 쓰다 망신을 당한 것으로, 자료를 제공한 기관이 분류 기준을 착각했는데 한은이 ‘팩트 체크’에 실패해 일어난 ‘사고’였다.

당시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융통계부장 교체, 금융통계팀장 직위해제, 경제통계국장·담당 과장 엄중경고라는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 상처 입은 한은 통계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이 총재는 “이번 사태는 그동안 한은이 소중한 가치로 지켜온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며 재발 방지책 마련을 지시했다. 하지만 한 달여 만에 또 오류가 발견되자 금융시장에서는 “한은이 가진 영향력에 비해 내부 구성원들의 기강은 너무 흐트러져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은 통계를 기반으로 한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대책을 재점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한은이 4월 발표한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자료를 보면 비은행 금융회사의 2015년 12월~2017년 1월 주택대출과 기타대출 수치가 3월 발표 때와 모두 달라졌다. 예컨대 3월 발표 땐 작년 12월 제2금융권 주택대출 증가액이 2조9767억원이었지만 4월 발표 자료에선 2조2419억원으로 7348억원 줄었다.

대신 예·적금담보대출, 신용대출, 상업용부동산담보대출 등 주택대출이 아닌 나머지 가계대출을 의미하는 기타대출이 7348억원 늘었다. 이런 식으로 지난 14개월간 제2금융권 주택대출 월별 증가액이 30~40%가량씩 줄고 그만큼 기타대출이 늘었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을까. 문소상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제2금융권 주택대출 수치가 과잉됐다는 것을 지난해 인지하고 해당 금융회사에 안내했다”며 “이 과정에서 기타대출 중 일부가 주택대출 통계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게 돼 다시 수정된 통계를 받아 반영했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 통계에는 주택과 관련된 대출상품(전세자금대출 포함)만 들어가야 하는데, 기초통계를 제공하는 제2금융권의 미흡한 전산시스템과 인력 운영으로 그동안 상가·토지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 비주택대출이 주택대출 통계로 잡히는 오류가 발생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은 제2금융권에서 수정 제출한 2015년 12월 이후 14개월치 수치 자료만 수정했고, 이전 통계는 오류를 정정하지 못했다. 즉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발표하기 시작한 2003년 10월 이후 모든 통계가 잘못됐을 가능성을 해소하지 못한 셈이다. 문 팀장은 “과거 자료까지 소급하도록 애쓰겠지만 상황은 장담 못 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통계의 생명인 추세 분석이 불가능해진다. 통계는 시계열 분석을 통해 현상의 흐름을 분석하는 것이 핵심인데, 과거 자료가 부실해 이 작업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한은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노충식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은행과 달리 비은행권은 전산시스템의 미비로 기초자료에 한계가 있다”며 “한은이 계속 전산개발을 요청한 끝에 바로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권이 없는 한은으로서는 불성실하게 통계를 낸다고 금융사를 제재할 수단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2금융권 가계대출 통계는 각종 경제정책 수립에 근거가 되는 자료이기 때문에 한은이 정확성을 높이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고 비판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이 금융시장과 더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제2금융권 가계대출 통계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오류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부실한 통계, 엉뚱한 대책 낳아

이번 통계 오류의 심각성은 잘못된 통계에 기반한 가계부채 대책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제2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가파르다고 판단하고 가계부채 대책의 초점을 여기에 맞춰왔다. 지난해 2월 은행권에 대한 대출 조건을 강화한 이후 ‘풍선효과’로 인해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계대출 위험이 제2금융권으로 전이될 수 있다”며 수 차례 제2금융권에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라고 주문했다. 상호금융권에 주택담보대출의 부분 분할상환을 의무화하는 여신심사 가 이드라인을 도입한 게 대표적 정책이다. 이로 인해 신협·새마을금고 같은 상호금융권까지 집단대출 신규 취급을 크게 줄이면서 중도금대출 금리가 상승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그런데 정작 한은 통계에 오류가 발견됨에 따라 정부 대책은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 돼버렸다. 만약 한은이 이러한 통계 오류를 일찌감치 잡아냈다면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보다는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도가 높은 기타대출을 중점 관리했을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통계 오류를 대하는 한은의 인식과 태도다. 한은은 지난 3월 통계 오류로 인한 징계성 인사를 단행하면서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유관기관과 통계 관련 정보교환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통계 의미가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되도록 언론에 대한 설명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한은은 제2금융권 가계대출 오류를 사전에 미리 알리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다 언론으로부터 문제점을 지적받자 그제서야 해명했다. 한은 내부에서조차 ‘안일하다 못해 나사가 풀렸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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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폭증으로 인해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를 규제하기 위해 도입한 방안.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할 때 소득 증빙을 강화하고 원리금 분할 상환을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