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주요국의 부채가 급격히 늘면서 미국 금리 인상 여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환전소가 보이는 홍콩 거리. <사진 : 블룸버그>
아시아 주요국의 부채가 급격히 늘면서 미국 금리 인상 여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환전소가 보이는 홍콩 거리. <사진 : 블룸버그>

우리나라와 중국·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의 부채가 급격히 늘면서 미국 금리 인상 여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는 우리에게 ‘국제통화기금(IMF) 긴급 구제금융’의 아픔을 가져온 아시아 외환위기 발생 20년이 되는 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중국·일본·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은 지난 10년간 미국 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부채를 늘려 성장을 부양해왔다. 그런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작년 12월과 지난 3월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등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면서 부채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달러 표시 부채가 많은 국가와 기업의 부채 상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태지역 회사채 63%가 달러 부채 표시

연준은 향후 2~3년 동안 매년 서너 차례 금리를 인상할 전망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원자재 가격의 등락, 환율 변동 등도 부담 요인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21년 만기가 돌아오는 아·태 지역 회사채 1조달러(약 1130조원) 중 63%가 달러화 표시 부채인 것으로 추산한다.

2008년 160%였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기업+정부) 비율은 지난해 258%로 8년 사이 90%포인트 넘게 늘었다. 인민은행은 중국 기업들의 외화 부채 내용을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 부채의 절반 이상이 달러화 표시 부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외화 차입은 2016년 3분기에 1조2000억달러로 전 분기보다 477억달러(4%)가 증가했다. 늘어난 증가분의 38%가량은 기업에 자금을 대는 은행들의 몫이었다. 이밖에도 부동산 개발사, 항공사, 지방정부 등이 달러화 부채를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달러화 표기 부채 비율은 중국 정부가 위안화 환율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중국 기업 매출의 상당 부분은 13억 인구의 내수시장에서 발생한다. 위안화로 돈을 벌어 보유한 달러 부채를 갚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부채 상환 부담은 늘어난다. 이 때문에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면 기업들은 서둘러 달러 부채를 갚아나간다. 문제는 달러 부채의 조기 상환에 따른 자본유출이 위안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中 기업 달러 부채 상환, 위안화 약세 요인

지난해부터 중국 위안화 가치는 달러 대비 7% 떨어졌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 당국이 달러를 내다 판 탓에 외환보유액이 급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위안화 가치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외환보유액도 지난 3월까지 두 달 연속 증가했다.

일본은 GDP 대비 국가부채가 250%에 육박한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다. 그나마 일본은 해외 자산과 국내 자산에 대한 투자가 골고루 분포돼 있고, 부채 대부분이 엔화 표시여서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다. 일본 국채를 보유한 사람들도 대부분 내국인이어서 자본 유출 위험이 높지 않은 것도 고무적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0년대를 거치면서 부채 규모는 GDP의 100%를 넘어섰고, 지난 2010년에는 200%를 돌파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찾아온 엔고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금리를 빠르게 내리며 자산 거품을 키웠다.

하지만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자산 거품이 1992년 일시에 꺼지면서, 일본 경제는 더욱 침체로 빠져들었다. 이를 해결하기 1992~95년 일본 정부는 6차례에 걸쳐 65조5000억엔(약 665조원)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이 기간에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연 7~10% 급증했다.

호주의 가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89%로 기록적인 수준이다. 부채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이다. 이에 반해 연평균 임금 상승률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낮다. 호주 중앙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가구당 소득이 3% 증가한 데 반해 주택 관련 부채는 6.5% 늘었다”며 “임금 상승률의 둔화는 가계의 부채 상환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높은 부채와 낮은 임금 상승률은 가혹한 조합”이라고 전했다.

인도 정부의 부채는 GDP 대비 70% 정도다. 그러나 기업부채가 빠르게 늘면서 은행의 리스크도 증가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인도가 2019년까지 채무 상환을 위해 조달해야 하는 자본의 규모를 900억달러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 예산에는 100억달러 정도만 반영된 상태다.

동남아 국가들의 부채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일부 국가의 기업부채와 가계 빚은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최근 보고서에서 “2008년 6월~2016년 6월 말레이시아의 전체 부채는 GDP 대비 173%에서 240%로 늘었다”며 말레이시아 중산층의 부채 규모는 영국과 이탈리아·호주 등 선진국 중산층들의 부채 수준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부채가 적은 나라들이다. 은행 대출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채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두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연간 정부 재정 적자는 GDP의 3%, 정부부채는 GDP의 6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부채가 1년 새 141조원이 증가하며 지난해 말 기준 1344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가계신용 통계를 내놓기 시작한 2002년 이후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대출이 증가하는 등 부채의 질이 나빠진 것도 문제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 4월 19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2016년 3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6%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포인트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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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합의(Plaza Accord) 1985년 미국·프랑스·독일·일본·영국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외환시장 개입에 의한 달러화 강세 시정에 합의한 것을 말한다. 이후 미국은 불황에서 탈출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회복했지만, 일본과 독일은 그 후 오랫동안 경제불황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