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왼쪽)는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아람코 상장을 논의했다. <사진 : 블룸버그>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왼쪽)는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아람코 상장을 논의했다. <사진 : 블룸버그>

사우디아라비아를 이끄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친아들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자를 제1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면서 사우디 경제 개혁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자가 여러 차례 사우디 경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자는 32살의 나이에 국방장관을 지내며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의 회장으로서 석유·에너지 산업도 관장해 사우디 왕가에서 ‘실세 중에 실세’로 불린다. 사우디의 경제·사회 정책을 주도하는 왕실 직속 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사우디의 중장기 개발 계획인 ‘사우디 2030’ 프로젝트도 이끌었다.


경제 개혁 강조한 빈살만, 후계자 등극

그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원유 가격이 내리든 오르든 중요하지 않다”면서 “사우디는 석유 개발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자의 왕위 계승이 가시화되면서 당장 탄력을 받게 된 것은 아람코 상장이다. 내각 일부에서는 아람코가 상장되면 사우디 정부가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무함마드 빈살만 왕자는 경제 개혁 과정에 아람코 상장이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자는 지난해 “이르면 2017년, 늦어도 2018년까지 아람코를 상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람코 상장을 추진하는 그가 제1 왕위 계승자가 되면서 더 큰 권력을 갖게 돼 아람코 상장은 한층 추진력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람코는 1933년 5월 사우디 정부와 미국 스탠더드오일이 공동 설립한 회사로, 1980년 사우디 정부가 지분을 전량 인수해 국영화했다. 아람코는 하루 13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석유 회사다. 아람코가 보유한 유전의 원유 매장량은 3000억배럴로, 각각 400억~500억배럴의 원유 매장량을 가진 엑손모빌, 로열더치셸, 셰브론, BP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가 상장되면 기업 가치가 2조달러(약 22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7500억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지분 5% 정도만 공개하고 나머지 자금으로는 국부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람코 상장 작업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아람코 내부에서 기업 가치가 1조5000억달러 이하일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아람코 상장 과정에서 글로벌 자금을 유치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아람코가 학교·병원·도로 건설 등 사우디 사회기반시설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사실상 사우디 왕가의 ‘금고’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까다로운 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람코와 경쟁하는 엑손모빌이나 로열더치셸 같은 글로벌 에너지 회사는 원유·가스 생산, 원유 정제, 화학 제조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은 회사가 벌어들이는 현금과 이 중 얼마를 배당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람코 실제 가치 1조달러 수준” 주장도

그러나 아람코는 석유 개발 사업뿐 아니라 사우디의 말라리아 근절 프로그램 등도 운영하고 있다. 에스워스 다모다란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아람코는 원유·가스 업체이면서 사우디 정부의 복지 정책을 수행하는 국부펀드이기도 하다”며 “아람코가 수행하는 모든 역할을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아람코의 실제 가치는 8800억~1조1000억달러 수준일 것으로 추정했다.

아람코의 기업 가치가 예상보다 크게 낮을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지면서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기업 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아람코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도 착수했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부채를 정부 계정으로 전환하고 아람코가 국내 기업과 소비자에게 지원하는 보조금을 축소해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높일 방침이다.


Plus Point

개혁 직면한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 <사진 : 아람코>
사우디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 <사진 : 아람코>

사우디 왕국은 1932년 건국 이후 영토에 매장된 풍부한 원유를 수출해 오랫동안 부(富)를 누렸다. 사우디 정부 수입의 80%가 ‘오일머니’ 에서 나왔고 사우디 중산층은 풍족한 삶을 누렸다.

그런데 최근 유가가 하락하며 사우디 재정 상황이 악화됐고 경제 활력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6년 사우디 정부의 재정 적자는 3000억리얄(약 9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 외환 보유액은 5002억달러로 1년 전보다 800억달러 감소했다.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 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사우디의 20대 청년 실업률은 28%를 웃돌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저유가가 지속되면 사우디 재정 수지가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며 “더 실질적인 적자 감축 노력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사우디 정부는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석유 개발에 의존했던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고 민간 기업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비전 2030이 그 첫걸음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현재 40%인 민간 경제 비율을 65%로 확대하고, 정부 재정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특히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를 시작으로 국영 기업 일부를 민영화해 현재 1630억리얄(약 50조원)인 비(非)석유 정부 수입을 2030년까지 1조리얄(약 300조원)로 확대할 방침이다. 아람코 상장은 사우디 경제뿐 아니라 세계 석유 시장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