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내수 회복에 힘입어 전 분기보다 1.0% 성장했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 <사진 : 블룸버그>
일본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내수 회복에 힘입어 전 분기보다 1.0% 성장했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 <사진 : 블룸버그>

일본 경제가 2분기 ‘깜짝 성장’을 기록했다. 일본 내각부는 올해 2분기(4~6월)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 1분기(1~3월)에 비해 1.0%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블룸버그가 집계한 경제 전문가들의 예상 수준(0.6%)을 크게 웃돈 것으로 2015년 1분기(1.2%) 이후 가장 가파른 성장 속도다.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6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이룬 점에도 주목했다. 일본 경제가 6분기 연속 성장을 이어간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말기인 2006년 이후 11년 만이다. 법인세율 인하, 규제 개혁 등을 축으로 4년 넘게 뚝심 있게 추진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제정책(아베노믹스)이 효과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을 털고 확실한 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11년 만에 6분기 연속 성장세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이런 성장 속도가 연말까지 계속된다면 올해 일본의 연간 경제 성장률은 4%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 민간 기관들이 예측했던 올해 일본 경제성장률(2.6%)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시장의 예상을 크게 웃돌며 일본 경제를 깜짝 성장으로 이끈 일등공신은 내수다. 일본 경제를 장기간 견인했던 수출이 0.5% 감소해 4분기 만에 뒷걸음질을 쳤지만 개인소비와 설비투자가 각각 전 분기 대비 0.9%, 2.4% 증가하며 일본 경기 전체를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특히 개인소비는 소비세율 인상(5%→8%)을 앞두고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던 2014년 1분기(2.2%) 이후 최고치로 늘었다. 외식 산업 매출이 6분기 연속 증가세를 보였고, 자동차와 백색가전 판매도 회복세로 돌아섰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경제재정장관은 “개인소비와 설비투자가 견실하게 증가하고 있고, 경기도 완만한 회복세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내수 주도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소비가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들이 부족한 일손을 대체하기 위한 설비투자에 앞다퉈 나서고 고용 개선 등으로 체감경기가 호전된 개인들이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소비재 구입을 위해 지갑을 열면서 내수가 전반적으로 호조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일본 정부가 보조금을 제공했을 때 구입한 가전제품을 교체할 시기가 온 것이 소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과 함께 여름철 무더운 날씨로 에어컨 등에 대한 수요가 급속히 늘었다는 설명도 있다.


기업 설비투자 2.4% 증가

내수 성장을 이끈 소비 주체는 일본의 젊은층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고용 상황이 좋아지면서 체감 경기가 개선된 젊은이들이 외식 등을 많이 즐겼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실업률은 지난 6월 기준 2.8%로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고 있다. 외신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수출보다 개인소비가 경제성장률에 더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했다.

기업 설비투자도 2.4% 늘어나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설비투자는 건설 및 기계, 소프트웨어 부문 등에서 증가했다. 기업들이 설비를 최신형으로 바꾸는 수요가 늘었고, 일손 부족을 보완하는 투자도 활발했다. 기업 설비투자가 늘어난 것은 일본 정부가 친(親)기업 정책을 잇달아 도입하고 시행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니 투자가 살아나고, 기업이 활기를 띠면서 고용도 증가해 경기가 살아난 것이다.

아베 정부는 2016년 법인세율을 25.5%에서 23.4%로 인하했다. 또 신사업에 대한 규제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고, 규제개혁특구 등을 확대했다. 경제정책자문회의에는 사카키바라 사다유키(木神原定征) 게이단렌(經團連) 회장 등을 참여시켜 기업들과의 소통도 강화했다. 사카키바라 회장이 “정부와 재계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기업들이 당초 예상을 뛰어넘어 2년 연속 사상 최고 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살아난 내수를 반영하듯 수입도 1.4% 증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내수 호조가 수입 증가로 이어졌다”며 “주택건설이나 공공사업이 늘며 해외에서 자재를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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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박스(sandbox) 제도 샌드박스란 모래를 깔아 어린이가 다치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제한된 장소를 뜻한다. 일본 정부는 기업의 혁신적인 사업과 서비스를 육성하기 위해 경제특구 등 특정 지역 안에서 실정법상 규제를 일시 정지시켜 신기술 시험을 가능하게 했다. 즉 샌드박스 제도는 규제를 확 풀어 기업의 신사업 창출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Plus Point

日 기업들 ‘임금 인상’ 회피

일본 경제에 온기가 돌고 있지만 정작 경기 회복세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임금 상승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본의 지난 6월 실질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0.8% 감소했다. 임금 상승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비의 지속적 증가는 어렵다. 2분기 같은 깜짝 성장도 지속적으로 기대할 수 없다. 구와하라 마사키 노무라증권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임금은 늘지 않았지만 주가 상승 등으로 부(富)가 늘어난 효과 덕분에 소비 성향이 개선됐다”면서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속도의 소비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 펴낸 경제백서에서 “기업들이 경기 전망 불투명으로 인해 임금 인상을 회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에 대한 낮은 기대감이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향후 물가가 많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 임금을 올리라는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마련인데, 현재 일본은 그런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은행은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8%로 상향 조정했지만,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1.4%에서 1.1%로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2.0%라는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 시기도 내년에서 2019년으로 늦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