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던트 론 규모가 급증하면서 미국 재정에 부담이 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스튜던트 론 규모가 급증하면서 미국 재정에 부담이 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스튜던트 론(Student Loan·학자금 대출)이 미국의 경제 성장에 잠재적인 복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스튜던트 론은 미국 연방정부가 고등교육을 위해 지원하는 학자금 대출을 뜻한다. 미국은 전체 학자금 대출의 90% 이상을 연방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스튜던트 론의 급증을 경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가계 부채 중 학자금 대출 규모가 2001년 3400억달러에서 2016년 1조3000억달러로 증가했다. 15년 만에 세 배 이상 늘었을 정도로 증가 속도가 빠르다.


대졸자 한 명당 평균 4000만원 빚

최근 집계된 수치로 스튜던트 론 총액은 1조4908억달러(약 1613조7900억원)에 이른다. 미국의 신용카드 대출 총액보다도 6200억달러 정도 많은 것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지난해 스튜던트 론 증가의 위험성을 경고한 적이 있다. 당시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더 많은 학생이 더 큰 규모의 스튜던트 론을 빌리고 있다”며 “ 학생 대출자들이 빚을 상환하는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학 졸업자의 70%는 스튜던트 론으로 빌린 돈을 상환하지 않고 졸업하고 있다. 대졸자 열 명 중 일곱 명은 빚을 진 채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셈이다. 2016년 기준으로 미국 대졸자 한 명당 평균 스튜던트 론 대출액은 3만7172달러 정도였다.

미국 정부는 스튜던트 론이 정부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오랫동안 고수했다.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빌려준 걸로 적자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 교육부가 잇따라 발표한 보고서는 미국 정부의 오래된 입장을 뒤집는 결과를 보여준다.

미국 교육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학생 대출·보증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책정한 예산에서 360억달러의 적자가 날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자들이 제때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거나 이자를 내지 않으면서 구멍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이다. 미국 교육부는 지난 1월에는 이런 구멍이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미국 정부는 학자금 대출을 탕감해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득연계상환방식의 스튜던트 론이다. 소득연계상환방식은 대출자의 소득을 고려해 대출금을 10년, 20년, 25년 동안 일정 비율로 갚고, 그 뒤에도 남아 있는 대출금은 탕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미국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2015년에 소득연계상환방식으로 스튜던트 론을 받은 학생들이 탕감받을 수 있는 대출금은 115억달러에 달한다. 문제는 이 비율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회계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소득연계상환방식으로 스튜던트 론을 상환하는 비율이 2013년 20%에서 2016년 40%로 급등했다”며 “대출금 가운데 평균 20% 정도는 정부가 보조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 정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재정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지난해 105.4%로 2008년(67.7%)보다 급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이 지속되면 재정 상황이 1940년대보다 악화될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재정 정책이 미지의 영역에 들어서고 있다”고 경고했다.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스튜던트 론 지원을 위한 정부 보조금이 증가하면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은 전 세계적으로 청년층 실업 증가, 고등교육 비용 증가, 시장금리 하향화 등의 추세가 심화되는 환경에서 학자금 대출 자격요건을 완화하고 혜택을 확대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정부의 재정 지출이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출 탕감 프로그램 폐지 추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튜던트 론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의회에 제출한 예산안은 스튜던트 론에 대한 지원을 줄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스튜던트 론의 소득연계상환방식 비율을 줄이고, 공공서비스 대출 탕감 프로그램(Public Service Loan Forgiveness Program)을 폐지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공서비스 대출 탕감 프로그램은 공공서비스에 해당하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세금을 내지 않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의 경우 10년 동안 정기적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면 남은 금액은 모두 탕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소득연계상환방식이나 공공서비스 대출 탕감 프로그램은 모두 저소득자나 공공 영역 종사자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재정에 대한 압박을 덜기 위해 이런 보조금 지원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워싱턴포스트(WP)가 “트럼프의 예산안 중 많은 부분이 의회에 도착도 하기 전에 죽어가고 있다”고 빈정댈 정도다. 다만 재정 문제에 대한 우려는 야당인 민주당도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스튜던트 론 지원 방안이 일부 수정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WSJ는 “스튜던트 론 때문에 납세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의회도 정부의 보조금 지원 프로그램을 없애거나 지원 기준을 강화하는 등 제도 보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스튜던트 론이 덩치가 커진 것에 비해 교육적인 효과가 적다는 비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최근 들어 긱 이코노미의 등장 등 고용 시장의 구조 자체가 변하면서 고등교육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기대만큼 높은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 스튜던트 론의 교육적 효과가 과거보다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 이 기사 작성은 이종현 기자가 멘토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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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 이코노미(gig-economy)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직이나 임시직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고용 형태를 뜻한다. 경기에 따른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지만, 정규직의 종말을 야기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