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있는 골드만삭스 전용 부스에서 트레이더가 모니터를 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있는 골드만삭스 전용 부스에서 트레이더가 모니터를 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한때 600명에 달하던 골드만삭스 주식 매매 트레이더들이 이제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컴퓨터 자동 거래 소프트웨어가 이들을 내몰았다. 골드만삭스의 외환 거래 부서에서는 네 명의 딜러가 담당하던 업무를 한 명의 컴퓨터 엔지니어가 대신하고 있다. 해당 엔지니어는 시시각각 변하는 외환·선물시장 동향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딜러들이 거래하던 방식에 가장 근접한 알고리즘(Algorithm·컴퓨터로 작동하는 논리 공식)을 만들고 있다.

정보·기술(IT)이 빠른 속도로 금융 서비스의 일부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지원 부서 역할에 머물던 IT 직원들이 어느덧 핵심 인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차기 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 마티 차베스는 지난달 19일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2017 CSE 심포지엄’에 참석해 “앞으로 투자는 수학 원리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약 3만5000명에 달하는 골드만삭스 전체 임직원의 4분의 1가량이 컴퓨터 엔지니어”라며 “외환 거래를 비롯해 세일즈와 고객 관리 업무 등 IB 고유 업무 영역에서도 컴퓨터가 기존 인력을 대체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타트업 창업자 출신인 차베스가 부사장 겸 CFO로 승진한 것은 골드만삭스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존엔 재무·회계 출신들이 CFO 자리를 차지해왔으나 차베스는 관련 분야의 경력 없이 CFO에 올랐다.


게리 콘(사진 왼쪽) 전 골드만삭스 사장과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사진 : 골드만삭스>
게리 콘(사진 왼쪽) 전 골드만삭스 사장과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사진 : 골드만삭스>

블랭크페인 회장 ‘골드만삭스는 IT 회사’ 선언

골드만삭스의 ‘환골탈태’는 주요 내부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일찌감치 예고됐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은 2015년 “골드만삭스는 IT 회사”라고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직을 맡은 게리 콘 전 골드만삭스 사장 역시 IT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콘은 골드만삭스 재직 중이던 2015년 11월 “고객의 요구에 따라 1990년대 초반부터 첨단 기술에 투자하며 빠르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변화 노력은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249.46달러에 장을 마쳤다. 2007년 10월 31일 종가 247.92달러를 찍은 후 10년 만에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골드만삭스의 변화는 인력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는다. 매년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를 본사가 자리한 뉴욕이 아닌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하고 있는 것도 IT 기술 역량 극대화를 위한 의지의 표현이다.

골드만삭스는 1년 전부터 ‘마르커스’라 불리는 온라인 신용 대출 플랫폼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사내 벤처 회사로 태동한 마르커스는 단 한 명의 인력도 없이 오직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작동한다. 대출받을 만한 고객을 데이터로 추려내 이메일을 보내는 방식으로 웹사이트와 모바일을 통해 대출을 진행한다.

클라우드 기반 메신저 서비스인 ‘심포니’처럼 내부 IT 프로젝트로 시작해 별도 회사로 독립한 사례도 있다. 심포니는 현재 2만여명의 골드만삭스 직원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경쟁 회사인 JP모건과 시티그룹에서도 활용 중이다.


미국 뉴욕 골드만삭스 본사에 위치한 마르커스 사무실 전경. <사진 : 블룸버그>
미국 뉴욕 골드만삭스 본사에 위치한 마르커스 사무실 전경. <사진 : 블룸버그>

지원 부서 인력도 감축 예상

골드만삭스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IT 스타트업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지난 3년간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분야에 2억4100만달러(약 2750억원)를 쏟아부었다. 골드만삭스가 인수하거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대표 IT 기업으로는 실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석 회사인 데이터마이너를 포함해 온라인 자산 관리 사이트 어니스트달러,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기업 켄쇼테크놀로지, 빅데이터 솔루션 업체 안투잇 등이 있다.

투자 부서뿐만 아니라 회계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는 경영 관리 부서 직원도 머지않은 시일 내에 짐을 쌀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 전체 직원의 7%에 해당하는 2400여명이 지난해 퇴사했다. 덕분에 골드만삭스는 지출을 크게 줄였다. 골드만삭스의 2016년 운영 비용은 전년보다 19%가량 줄어든 203억달러로 2008년 이후 가장 적었다.

1869년 설립된 골드만삭스는 147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수차례 모습을 바꿔왔다. 과거 프라이빗 파트너십 기업에서 기업공개를 통해 1999년 NYSE에 상장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비(非)은행 지주회사에서 은행 지주회사로 변신했고, 숱한 금융 규제의 압박 속에서도 과거의 명성을 유지해왔다.


Plus Point

JP모건·시티그룹도 IT 강화 나서

월가를 가리키는 미국 뉴욕 길거리의 표지판. <사진 : 블룸버그>
월가를 가리키는 미국 뉴욕 길거리의 표지판. <사진 : 블룸버그>

JP모건과 시티은행 등 다른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IT 역량 강화에 나섰다. JP모건은 내부 보안 업무에 빅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회사에 심각한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내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직원 인터넷 사용 데이터와 SNS 공개 데이터 등을 분석한다.

시티그룹은 빅데이터를 도입했다. 고객 거래 내역을 분석해 신용도가 낮거나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고객을 선별해 추후 대출 및 신용카드 발급 여부를 결정할 때 사용한다. 글로벌 보험사 AIG그룹은 운전자의 연령·성별·사고이력뿐만 아니라 운전 지역·습관·시간 등에 관한 빅데이터를 구축해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 최대 은행 그룹인 BNP파리바는 2013년 인터넷 전문 은행 ‘헬로뱅크’를 선보였다. BNP파리바 고객은 모바일을 통해서도 기존에 누리던 모든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 번호나 QR코드만으로 송금이 가능하며, 트위터를 통해 금융 상담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