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밴티브’는 영국 ‘월드페이’를 104억달러(약 11조8560억원)에 인수했다. 영국 런던의 한 소매점에서 월드페이로 결제를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밴티브’는 영국 ‘월드페이’를 104억달러(약 11조8560억원)에 인수했다. 영국 런던의 한 소매점에서 월드페이로 결제를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세계 각국이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동을 준비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 결제 시장을 장악할 ‘결제 공룡’이 탄생했다. 미국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 업체 ‘밴티브’가 영국 전자결제 서비스 업체 ‘월드페이’를 104억달러(약 11조856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합병된 회사는 146개국에서 126개 통화로 이뤄지는 400억건의 거래를 처리해 연간 32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합병된 회사 이름은 ‘월드페이’다.

필립 얀센 월드페이 최고경영자(CEO)는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이뤄지는 전자상거래 확대로 전자결제 업체는 큰 이익을 얻는다”며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월드페이와 신용카드 등 오프라인 결제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밴티브가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결제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경찰관이 만든 월드페이

금융 산업에서 결제 부문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전자결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며 월드페이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국항공’과 같은 대기업은 물론 온라인 유통 업체 ‘아소스’ 등에도 결제 솔루션을 제공하는 월드페이 이익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2013년 7억9920만파운드였던 월드페이 순매출은 2016년 11억2420만파운드(약 1조6537억원)로 증가했다. 2015년 10월 런던주식시장에서 거래를 시작한 월드페이 주가도 상장 이후 70% 상승했다. 사업 전망도 밝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글로벌 결제 시장 매출이 2014년 1조8000억달러에서 2020년 2조2000억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1997년 월드페이를 설립할 당시만 해도 창업자 ‘닉 오그덴’은 자신의 사업이 얼마나 큰 가치를 창출할지 예측하지 못했다. 전직 경찰관이었던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온라인 와인 판매점이었다. 처음에는 파운드화로만 제품을 결제하도록 했다. 오그덴은 곧 파운드 결제만 고집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역 통화를 넘는 전자결제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한 오그덴은 ‘내셔널웨스트민스터은행’과 함께 전자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것이 월드페이의 시작이었다. 월드페이는 기업들이 다양한 지역 통화로 온라인 결제를 수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월드페이 첫 소비자인 ‘다이애나 황태자비 기념사업기금’은 월드페이의 전자결제 서비스를 통해 기부금을 모았다. 2002년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내셔널웨스트민스터은행을 인수하면서 2002년 월드페이 주인이 RBS로 바뀌었다. 월드페이의 본격적인 성장기는 2010년 RBS가 사모펀드인 ‘어드벤트인터내셔널’과 ‘배인캐피털’에 월드페이를 20억파운드에 매각한 이후 시작됐다. 어드벤트와 배인은 월드페이에 10억파운드 이상을 투자했고 이 자금은 기술 개발과 인력 확보, 경쟁사 인수를 통한 시장 확장에 사용됐다.

어드벤트와 배인의 투자는 기술 개발에서 특히 큰 힘을 발휘했다. RBS가 사용하던 구식 은행 기술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기존 월드페이 시스템은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 배인과 어드벤트는 IT 시스템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과감한 투자에 힘입어 월드페이는 전자결제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웠고, 시가총액 75억파운드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월드페이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사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얀센 CEO는 “월드페이는 하루 4100만건의 거래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며 새로운 서비스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구글·페이스북도 전자결제 사업 진출 가능성

밴티브는 오프라인 결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월드페이는 모바일·온라인 등 전자결제 서비스에 강점이 있어 합병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밴티브와 월드페이 합병 작업에 참여한 골드만삭스 등은 합병 결과로 매년 2억달러의 시너지가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합병 회사의 구조조정과 통합 비용이 3억3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월드페이가 극복해야 할 도전 과제도 많다. 가장 큰 우려 요인은 성장하는 세계 전자결제 수요 대부분이 중국 등 신흥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전자결제 시장은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에서 성장을 바탕으로 미국·유럽·인도 등 글로벌 각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밴티브가 월드페이를 인수한 이유는 중국 경쟁자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성장한 거대 IT 기업이 경쟁자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IT 컨설팅 업체 ‘캡제미니’는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과 같은 거대 기업이 전자결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 결국 이들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Plus Point

월드페이 매각 원인은 브렉시트 따른 파운드화 급락

월드페이는 미국 기업 인수를 검토했지만, 브렉시트 결정으로 파운드화가 급락하며 계획을 철회했다. <사진 : 블룸버그>
월드페이는 미국 기업 인수를 검토했지만, 브렉시트 결정으로 파운드화가 급락하며 계획을 철회했다. <사진 : 블룸버그>

영국 전자결제 시장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월드페이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미국 결제 서비스 기업 인수를 검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6년 6월 국민투표 결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면서 파운드 가치가 급락하면서 포식자는 한순간에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리처드 벅스튼 ‘올드뮤추얼글로벌인베스터스’ CEO는 “월드페이 매각은 브렉시트의 결과물”이라며 “월드페이는 브렉시트 결정 이전에 분명 밴티브 인수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파운드화 급락으로 계획이 좌절됐다”고 말했다. 영국 경제와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친 브렉시트가 월드페이의 운명도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벅스튼은 월드페이가 밴티브에 매각된 것은 양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월드페이 주식이 영국 런던주식시장에 다시 상장되면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돼 주주 이익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미국 밴티브가 월드페이를 인수함으로써 영국은 전도유망한 핀테크 업체를 잃은 셈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