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겸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랑스 최고 권위 명예훈장인 ‘레지옹도뇌르’를 받게 됐다. <사진 : 조선일보 DB>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겸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랑스 최고 권위 명예훈장인 ‘레지옹도뇌르’를 받게 됐다. <사진 : 조선일보 DB>

서울 광화문 네거리 교보생명 본사 건물에는 1991년부터 27년간 시민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 ‘광화문 글판’이 있다. 올가을에는 신경림 시인이 쓴 ‘별’의 한 구절(‘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이 붙었다. 도심에 글판을 내걸어 시민에게 온기를 전해온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겸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이 프랑스 최고 문화훈장을 받게 됐다. 프랑스 정부는 신 회장이 대산문화재단을 통해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힘쓰고 한국과 프랑스의 문학 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오는 11월 30일 ‘레지옹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서훈한다고 밝혔다.


신창재 회장, 佛 레지옹도뇌르 훈장 받아

레지옹도뇌르는 1802년 나폴레옹 1세가 제정한 프랑스 최고 권위 명예훈장으로, 프랑스 정부는 매년 정치·경제·문화·종교·학술·체육 분야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을 선정해 서훈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지휘자 정명훈, 국악가 안숙선, 영화감독 임권택 등이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수훈했다.

대산문화재단은 1992년 교보생명이 출연해 설립한 공익재단으로 한국 최대 종합 문학상인 ‘대산문학상’을 비롯해 한국 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에 소개되도록 지원한 것도 대산문화재단이다. 신 회장은 1993년부터 25년째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문학을 사랑하는 경영자로 잘 알려져 있다. 시인과 소설가 등 문학계 인사와 교류하며 인문학을 접목한 경영을 펼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한국시인협회가 그를 명예시인으로 추대하기도 했다.

신 회장이 문학을 지원하고 시를 읽는 이유는 ‘경영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임직원이나 재무설계사와 소통할 때 시를 활용한다. 시는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기도 하지만 함축적이고 전달력이 강한 시를 활용하는 게 백 마디 말보다 나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신 회장이 펼친 감성 경영의 성과는 교보생명의 성장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여파로 거래하던 대기업이 연쇄 도산하면서 교보생명은 30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보고 2조4000억원의 자산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2000년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신 회장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잘못된 영업 관행과 과도한 외형 경쟁을 개선하는 동시에 영업 조직을 재구축했다. 중장기 보장성 보험 위주로 마케팅 전략을 전환하고 경영 효율, 생산성 향상에 주력했다. 새로운 전략이 결실을 맺으며 교보생명은 신 회장 취임 이듬해 1400억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후 내실 경영으로 수익구조를 탄탄하게 다진 덕에 지금은 꾸준히 연간 5000억~600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2014년 5175억원이던 교보생명 순이익(연결 기준)은 2015년 6441억원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543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저금리에 따른 운용 수익 하락, 자살보험금 지급 등으로 순이익이 다소 줄었지만 올해 상반기 4662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연간 순이익이 다시 6000억원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로 생보 업계 전체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업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교보생명의 신용도는 국내 금융권 최고 수준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015년 이후 3년 연속 교보생명의 신용등급을 삼성전자, 주요 시중은행과 같은 ‘A1’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금융사인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신용도와 같은 수준이다. 국내 보험사 중 무디스로부터 A1 등급을 받은 곳은 교보생명이 유일하다. 피치 역시 2013년부터 교보생명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하고 있다.

재무안전성·수익성·생산성·소비자만족도 등 교보생명의 주요 경영 지표도 안정적이다. 보험회사가 가입자에게 제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급여력비율(RBC)은 올해 6월 말 기준 241.7%로, 교보생명의 재무안전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교보생명의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자본금 대비 이익금 비율)은 11.5%로, 2004년 이후 국내 대형 생보사 중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건물에 걸린 광화문 글판. <사진 : 조선일보 DB>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건물에 걸린 광화문 글판. <사진 : 조선일보 DB>

세계 최초 교육보험 ‘진학보험’ 출시

교보생명의 전신은 1958년 대산(大山) 신용호 창업주가 세운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다. 대산은 그의 호처럼 국내 생보 업계는 물론 교육·출판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룬 인물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그는 한국전쟁 이후 피폐해진 국가가 다시 일어설 방법은 교육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교육보험 사업을 결심했다. 고(故) 신용호 전 회장의 부친인 신예범 선생과 형인 용국·용율씨가 모두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신창재 회장은 신용호 전 회장의 큰아들이다.

오랜 연구 끝에 신용호 전 회장은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인 ‘진학보험’을 출시했고, 이 보험으로 300만 명의 학생이 학자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진학보험을 통해 가열된 교육열은 우리나라가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종업원퇴직적립보험과 건강보험의 효시인 암보험을 처음 출시한 곳도 교보생명이다. 신용호 전 회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한국인 최초로 보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했다. 신 전 회장이 가진 국민 교육에 대한 열망은 우리나라 최대 서점으로 자리 잡은 교보문고 설립으로 이어졌다. 현재 전국에 2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교보문고는 종이책 유통 1위 회사를 넘어 온라인과 디지털콘텐츠 시장을 포괄하는 지식·문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 보험사 중 유일한 오너 최고경영자(CEO)인 신 회장은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교보생명에 들어가기 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로 일했다. 1996년 암 투병 중이던 신용호 전 회장이 가업을 이으라고 권유하면서 교보생명에 입사했고, 경영 수업을 받은 뒤 2000년 회장에 취임했다.

신 회장은 선대 경영 철학을 이어받아 1997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신 회장이 취임 초반 혁신을 강조했을 때에는 안팎으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경영 경험이 없는 의사 출신 CEO가 자산 25조원의 기업을 이끌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신 회장이 이끈 18년 동안 교보생명은 자산을 70조원 넘게 불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 교보생명의 자산은 100조원이 넘는다. 성장의 질도 탄탄하다. 투자성 보험보다 중장기 보장성 보험, 과잉 판매가 아닌 완전 판매에 집중하는 등 업계 관행을 버리고 묵묵히 자신의 경영 철학을 유지했다.

교보생명은 생보 업계의 영업 문화를 개선한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신규 계약보다 기존 소비자 유지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교보생명이 내놓은 ‘평생든든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교보생명이 2011년 선보인 이 서비스는 모든 재무설계사가 금융 소비자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계약 내용을 설명하고, 보장받을 수 있는 사고나 질병이 없는지 확인시켜주는 일종의 애프터서비스다. 교보생명 재무설계사들은 지금까지 매년 150만 명의 소비자를 만나 고객이 놓친 보험금 391억원(7만2000여건)을 찾아줬다. 이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는 보험사들이 늘어나면서, 업계의 영업 문화를 판매에서 유지 서비스 중심으로 바꾸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5년 3월 스위스 출신 건축가 마리오 보타(왼쪽)와 강남에 세울 교보타워 설계를 협의하는 대산 신용호 전 회장. <사진 :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1995년 3월 스위스 출신 건축가 마리오 보타(왼쪽)와 강남에 세울 교보타워 설계를 협의하는 대산 신용호 전 회장. <사진 :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수평적 조직 문화 만들기 노력

이 사례는 ‘좋은 성장’을 강조한 신창재 회장의 경영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신 회장이 말하는 좋은 성장이란 단순히 보험을 팔아 매출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만족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가 만족해야 매출과 이익이 늘고, 이를 통해 소비자·임직원·주주 등 이해 관계자(stakeholder) 모두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선순환을 이룬다는 것이다.

교보생명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리·과장·차장·부장 등 임직원의 기존 직급을 없애고 마케팅 담당, 고객보호 담당 등 명칭만 불러도 담당 업무를 알 수 있도록 직함을 바꾼 것이다. 이는 신 회장이 직접 지시하며 추진된 것으로 그 자신도 ‘CEO 담당님’으로 불린다.

그는 이사회 의결권을 중시하고 두 아들에게 지분을 나눠주지 않는 등 특혜 없는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후계와 관련해 신 회장은 “CEO는 기업 경영에서 가장 큰 권한과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CEO 승계는 무엇보다 경영 능력이 중요하다”며 “물론 자식도 충분한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후보가 될 수 있지만, 경영을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CEO를 맡긴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내가 본 신창재 회장
“인본 경영과 언행일치, 日 이나모리 가즈오와 닮아”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교수

신창재(오른쪽) 교보생명 회장과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교수. <사진 : c영상미디어 이경호>
신창재(오른쪽) 교보생명 회장과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교수. <사진 : c영상미디어 이경호>

나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오랜 시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다. 1953년 태어나 올해 65세 동갑내기 친구인 신 회장은 서울 재동초등학교, 경기고등학교에 이어 전공은 다르지만 함께 서울대에서 공부했다. 비즈니스로는 1998년 신 회장이 그의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故) 신용호 창업주에게 나를 대산(大山)문화재단 이사로 추천하면서 연을 이어 가게 됐다.

어릴 때 신 회장은 성실하고 점잖은 모범생이었다. 집이 부유하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가 학교에서 부친이나 교보그룹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다. 신 회장은 의대 졸업 후 산부인과 의사, 모교 의대 교수로 일하다 부친의 병고(病苦)로 교보생명에 들어갔다. 일전에 신 회장에게 ‘아쉬움이 없냐’고 물으니 ‘의사 생활 중 군기가 너무 세고 술을 많이 마셔서 힘들었는데 도리어 잘됐다’는 농담 섞인 진담을 했다. 또 ‘산부인과 의사 시절 길러진 순간 판단력, 상황 대처 능력이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곤 했다.

신 회장이 의사 가운을 벗고 대표이사로 교보를 이끌게 됐을 때는 업계를 모른다는 이유로 부침(浮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간의 우려와 달리 그는 책을 많이 읽고, 학습력이 좋아 경영의 정도를 금세 이해했다. 신 회장이 업계 관행을 깨고 시장 점유율 위주가 아닌 이익 위주, 이사회 중심, 고객 위주 경영을 하는 것도 평소 성품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고객, 설계사, 임직원, 투자자 등 이해 관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회사를 지향한 것도 선대 회장부터 내려온 교보의 독특한 문화이자 신 회장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신용호 전 회장의 교보가 회장 중심 경영이었다면 현재의 이사회 중심 경영은 신 회장이 2000년 이후에 정착시킨 것이다. 신 회장이 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하기 위해 시대적 상황을 잘 읽었다고 볼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하는 사업가

그는 독서 외에 돈이 드는 별다른 취미가 없다. 업무상 필요한 골프 외에는 헬스클럽에 비서도 없이 혼자 가서 운동하는 게 유일한 건강 관리법이다. 특권의식이 없다 보니 권위의식이 있는 CEO 모임에 잘 가지 않고 그들과 가까이 지내지도 않는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탈권위적 CEO답게 사내에서는 독서토론회를 자주 열어 독서를 권장하고 호칭도 직함 뒤에 ‘담당님’을 붙여 최대한 수평적인 관계가 되도록 장려하는 것으로 안다. ‘호프데이’나 ‘칭찬 오찬’에 참석해 보험 설계사부터 과장, 팀장, 임원 등 직급을 가리지 않고 임직원들과 소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열린 자세는 조직원들과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결국 리더십으로 이어진다.

신 회장은 2001년 ‘교보인의 비전 2010’을 발표하면서 ‘우리 회사는 회장 위에 비전이 있습니다. 내가 만일 비전을 어기면 쫓아내십시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경영 성과를 연구하면서 나는 2015년 한국경영학회 세미나 연구 논문에서 일본의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과 여러모로 닮았다고 밝혔는데 인본 경영, 언행일치,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저서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서도 밝혔지만 신 회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적 책무)를 실천하는 한국의 사업가다. 조언하자면 그 역시 60대 중반이라 건강 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하고, 지금부터 후계자 양성·승계 계획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회사 차원에서는 한국에서 쌓은 노하우를 가지고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