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주도했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금융회사에 대한 불신이 크다. <사진 : 블룸버그>
밀레니얼 세대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주도했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금융회사에 대한 불신이 크다. <사진 : 블룸버그>

148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1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고객이 되려면 자산이 얼마나 돼야 할까. 과거엔 적어도 1000만달러(약 110억원)를 가진 부자여야 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지난해부터 1달러 예금도 인터넷으로 받고 있다. 부자 고객만 선별해 가려 받던 골드만삭스가 사업방식을 바꾼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에 인터넷은행을 만들고 인터넷 신용대출 사이트도 개설했다. 온라인 자산 관리 사이트 ‘어니스트 달러’, 인공지능 자료 분석 소프트웨어 회사 ‘켄쇼’ 등 금융과 기술을 결합하는 핀테크 기업들도 인수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이런 변화는 급부상하고 있는 금융 소비층을 사로잡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전의 금융 소비자와는 성향이 크게 다른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 40%, 은행 방문 안 해

밀레니얼 세대는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돼 IT(정보기술)나 스마트폰 기기에 익숙하다. 그만큼 은행 창구를 찾아야 하는 전통적 금융 거래는 멀리한다. 이들은 인터넷은행이나 페이팔(PayPal) 등 지급결제업체로 주거래은행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약 25억명으로 추산되는 밀레니얼 세대는 금융기관을 불신하며 은행에 거의 가지 않는다.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75%는 은행을 찾는 횟수가 한 달에 한 번이 안 된다. 40%는 전혀 은행을 찾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연간 2조4000억달러(약 2640조원)를 지출한다. 전 세계 소비 시장의 30%를 이들이 책임진다.

금융회사들이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유는 이들이 조만간 핵심 고객층으로 떠오를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곧 현재 60~70대인 베이비붐 세대로부터 막대한 자산을 물려받는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전 세계 부(富)의 10%에 달하는 약 17조달러(약 1경8700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향후 30년간 아버지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로부터 약 30조달러(약 3경300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상속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캐나다 최대 은행인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는 앞으로 30년 안에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와 영국에서만 약 4조달러(약 4400조원)에 달하는 부의 이전이 일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기존 금융회사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자산을 아직 많이 유치하지 못하고 있다. BCG에 따르면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등 기라성 같은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운용하는 자산 중 밀레니얼 세대의 자산 비율은 전체의 6%에 불과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월 18일 베이비붐 세대 재산 상속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밀레니얼 세대를 얼마나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가 향후 금융회사들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IT에 친숙한 것은 물론 기존 세대와는 다른 금융 거래 패턴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RBC는 “은행들이 밀레니얼 세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경청할 때가 됐다”고 했다.

문제는 밀레니얼 세대가 기존의 금융시스템을 이전 세대에 비해 불신한다는 점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한창 예민한 10~20대에 2007~2008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을 앞장서 주도했던 이들이 바로 밀레니얼 세대다.


“지속가능성·청정에너지 투자 선호”

브루킹스연구소는 “밀레니얼 세대의 성장으로 월가로 상징되는 금융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전 세대에 비해 소득이 적은 데다 금융위기를 목격해 금융회사에 돈을 맡기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자산 중 현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52%로 다른 세대 평균(23%)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전문가들은 밀레니얼 세대가 이전 세대와는 차별화되는 분명한 특징을 보이는 만큼 그에 맞는 금융 서비스를 선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FT는 밀레니얼 세대가 기존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 인공지능(AI) 등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투자하려는 성향, 착한 투자 선호 등의 특징을 가진다고 분석했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밀레니얼 세대가 중시하는 가치에 투자하는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경보호와 같은 지속가능성, 태양광·풍력과 같은 청정에너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착한 투자등이 향후 밀레니얼 세대의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테마라는 설명이다.

keyword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다. 대학 진학률이 높고 어릴 때부터 인터넷을 접해 모바일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에 능숙하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바람에 다른 세대보다 궁핍해 결혼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특징이 있다.

Plus Point

가난에 허덕이는 밀레니얼 세대
32%는 부모와 사는 ‘캥거루족’

밀레니얼 세대는 가속화하는 부(富)의 불평등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구조적 실업, 소득 불평등 심화, 부동산 가격 상승, 학자금 대출 등의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이전 세대에 비해 연금 수령액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로도 극명히 드러난다. 미국에서 올해 30∼39세의 평균 자산은 7만2400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현재 40∼49세인 사람들이 30대였을 때 보유했던 자산 13만4800달러에 비해 46%나 적은 규모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이들을 ‘불운한(unlucky) 세대’라고 지칭했다.

어려운 경제적 환경으로 미국에서는 성인이 돼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의 비율이 결혼이나 동거 형태로 가정을 꾸려 독립한 젊은이를 1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앞질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청년 실업 속에 대학을 졸업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하던 관행이 옛말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밀레니얼 세대 32.1%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이나 동거로 배우자와 함께 거주하는 젊은이들(31.6%)보다 많았다. 캥거루족의 비율이 가정을 꾸린 젊은이를 추월한 것은 1880년 이 조사가 실시된 이래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