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1월 30일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2011년 6월 이후 6년 5개월 만이다. <사진 : 블룸버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1월 30일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2011년 6월 이후 6년 5개월 만이다. <사진 : 블룸버그>

한국 경제가 복병을 만났다. 원화 가치가 빠른 속도로 강세를 보이고 있고, 시장금리가 예상보다 빨리 뛰고 있는 데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원화 가치, 금리, 유가가 뛰는 ‘3고 변수’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들어(1월 2일~11월 29일)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10.8% 올랐다. 유로화(13.3%) 절상률에는 못 미쳤지만 영국 파운드화(9.2%)와 중국 위안화(4.9%), 일본 엔화(4.7%)보다 상승 폭이 컸다.

11월 29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6원 하락(원화 가치 상승)한 1076.8원에 마감, 2015년 4월 30일(1072.4원) 이후 2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 달러화 대비 원화값 10% 넘게 올라

9월 말과 비교하면 두 달 새 원화 환율은 73원이나 떨어졌다. 심지어 이날 새벽 북한 미사일 발사가 있었음에도 원화 강세 흐름은 꺾이지 않았다.

원화 가치 상승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적이다. 원화로 평가한 수입 원재료 가격이 떨어져 소비자물가가 안정되고 기업 생산비용이 절감된다. 해외 투자 유인도 늘어난다. 하지만 수출 기업들에게는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우리 수출의 경제 성장 기여율은 78.5%(1~9월)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절대적이다.

산업계는 원화 가치가 기업의 대응 수준을 넘어 추가적으로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수출 기업의 손익을 결정하는 손익분기점 환율을 중소기업은 1046원, 대기업은 1040원으로 보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원화 가치가 1% 오르면 국내 제조 업체의 영업이익률은 0.05%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방향이다. 시장에서는 내년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85원으로 올해 상반기보다 4.9%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내년 3분기 달러당 1080원까지 내려갈 것(원화 가치 상승)으로 예측했다. 블룸버그가 최근 투자은행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원·달러 평균 환율은 내년에도 지속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빠르게 뛰고 있는 금리도 한국 경제의 부담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로 방향을 틀면서 세계 경제는 고금리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은행은 11월 30일, 6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를 미리 반영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0월 중순까지 연 1.7~1.9%였지만 10월 말 이후 연 2.1%를 웃돌았다. 시장 금리 인상에 따라 가계 대출 금리도 크게 올랐다.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상환 능력이 취약한 고위험 가구는 2만5000가구 늘고, 이들의 부채 규모는 9조2000억원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한은 금융안정보고서)도 있다. 금리 상승으로 서민·중산층과 자영업자의 이자 비용이 늘면 가처분소득이 줄어 ‘소비절벽’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세계 경제 회복세에 힘입어 상승세로 돌아선 국제 유가도 부담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규모 숙청 사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주도권 다툼 심화로 중동 지역의 긴장이 높아지며 유가는 계속 상승세다. 11월 24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58.9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5년 6월 이후 최고치다. 브렌트유도 2년여 만에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섰다.


유가 10% 오르면 성장률 0.3%포인트 하락

유가 상승의 영향도 양면적이다. 산업별로 명암이 엇갈린다. 항공 등은 불리하고 석유화학, 조선 등은 유리하다.

문제는 상승 속도가 빨라질 경우 부정적 측면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유가 상승은 수입 제품 가격과 전기요금을 상승시켜 기업 생산 비용 증가와 가계 구매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수입물가지수는 최근 4개월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은 경상 수지도 악화시킬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10% 오르면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고 물가는 0.25%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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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저(低)·3고(高) 경기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가·환율·금리 등 세 가지 주요 가격 변수의 흐름을 보여주는 개념. 유가가 낮고, 원화 가치가 하락하며(환율은 상승), 금리가 낮은 경우 3저라고 부르며, 반대의 경우를 3고라고 한다. 3저는 호황으로, 3고는 불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Plus Point

1400조원 가계부채 ‘적신호’
가구당 부채 7000만원 넘어

우리나라 가구당 부채가 7000만원을 넘어선 가운데 한국은행이 11월 30일 작년 6월 이후 1.25%로 묶어 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가계는 본격적으로 금리 상승 리스크(위험)에 노출되게 됐다. 가계소득이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원리금 부담이 더 커지면 소비 위축,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내수 침체가 심화될 수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가구당 평균 부채액이 7270만원으로 작년 말(6962만원)보다 308만원(4.4%) 늘어났다. 총 가계 부채 1419조1000억원을 전체 가구 수(1952만가구)로 나눈 것이다. 가구당 부채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8.1% 늘어난 것으로 가구당 부채가 7000만원 선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한국은행은 대출 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 전체로는 연간 이자 부담이 2조3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준금리 상승에 따라 은행 대출 금리가 같은 수준으로 오르게 되면 가구당 이자 부담액은 연간 18만1750원(7270만원에 0.25%포인트를 곱한 것)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가계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분기 월평균 가구 소득은 453만7000원으로 1년 전보다 2.1%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은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13년 134%에서 지난해 153%로 늘었다. 소득보다 갚아야 할 빚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