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 앞을 한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인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 앞을 한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정부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발표로) 삼성의 장기 성장전략을 믿을 수 없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금융당국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의 분식회계를 발표한 11월 14일 “삼바 사태가 반도체 이후 차세대 산업을 키우려는 삼성의 장기 성장전략을 위협한다”는 긴급뉴스를 전했다.

닛케이아시안리뷰도 이날 “세계에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량이 세 번째로 많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정부로부터 대표이사 해임권고와 8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고 검찰조사를 받게 됐다”며 삼성과 정부의 날 선 법정공방을 예상했다.

각국 언론들이 삼바 분식회계 의혹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삼바가 삼성그룹의 차세대 성장 축인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대표기업이며 연간 영업이익만 60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도 삼바의 지분을 31.49%(2018년 9월 말 기준) 보유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스스로 ‘분식회계 기업’이라는 주홍글씨를 삼성에 선고하면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의 대외신뢰도는 하락하고 차세대 성장동력인 바이오산업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과 경쟁하는 다른 선진국들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뉴스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그룹 전체의 경영권 승계를 쉽게 하기 위해 삼바 분식회계를 주도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무리수를 두며 이 부회장과 삼성을 과도하게 옥죄고 있다고 지적한다. 분식회계라는 낙인을 찍고 이를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 전체와 연결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1│경영권 승계와 관련성 적어

정부는 11월 14일 삼바가 2015년 회계결산을 하는 과정에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분식회계를 했다며 대표이사 해임권고, 과징금 80억원 부과, 검찰 고발 조치를 했다. 또 삼바의 주식은 거래 정지시켰고 상장폐지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삼바를 징계한 이유는 삼바가 자회사인 바이오의약품 회사 에피스의 가치를 고의로 높게 산정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적자이던 삼바는 회계처리 변경으로 2015년 말 당기순이익 규모가 1조9049억원에 달하는 흑자기업이 됐다.

삼바가 흑자기업이 된 것을 이 부회장의 경영권과 연계해서 보는 이유는 제일모직이 삼바의 대주주(46.3%)였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원래 제일모직의 대주주(23.2%)였고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지배해야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을, 삼성생명이 다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순환출자구조가 완성된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안정적으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삼성물산을 지배해야 했고, 이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할 때 제일모직은 자회사인 삼바가 많은 수익을 내는 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삼성물산보다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았고 삼성물산의 주식 3주와 제일모직의 주식 1주가 같은 가치로 평가받는 합병이 이뤄졌다. 이 부회장이 고의로 삼바의 기업가치를 올렸다고 주장하는 쪽은 제일모직의 주식을 많이 가진 이 부회장이 합병회사의 지분을 많이 갖기 위해 삼바의 분식회계를 지시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이 부회장이 삼바의 분식회계를 지시했다는 주장은 삼성을 괴롭히기 위한 지나친 끼워 맞추기라고 지적한다. 단순히 삼바의 가치를 올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서 제일모직을 유리하게 하려고 했다면, 합병이 시행된 2015년 이전에 삼바를 주식시장에 상장했다면 더 쉽게 제일모직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바는 합병이 끝난 2016년에야 상장됐다.

실제 삼바가 상장된 후의 주가흐름을 봐도 이런 사실은 확인된다. 삼바는 처음에 주당 13만6000원으로 발행돼 상장됐지만 상장 후 기업의 미래가치 등이 반영되며 주가는 최고 60만원까지 올라갔다. 또 거래가 정지된 지금도 33만4500원의 주가를 형성하고 있다. 만약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전에 삼바가 상장됐다면 대주주인 제일모직은 합병 전에 더 높은 기업가치를 반영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는 “선후관계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삼성이 분식회계를 했다고 가정하고 그 이유가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행동”이라고 했다.


2│엔론과 비교는 무리수

삼바 사태가 미국 엔론의 분식회계와 비슷한 경우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최대에너지기업으로 미국과 유럽 지역 에너지 거래의 25%를 장악했던 엔론은 2001년 15억달러(약 1조6900억원)의 분식회계가 드러났고 결국 파산했다.

하지만 엔론과 삼바를 같은 경우로 비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다. 엔론은 매출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짓으로 꾸며 장부에 기재했었다. 반면 삼바는 자회사 관계였던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바꿔 회계 처리한 경우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A안과 B안이 모두 회계규정에 있는데 A안을 택할지 B안을 택할지를 기업이 정하는 것을 분식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너무 몰아가는 것 같다”며 “정부가 나서서 분식회계라는 빨간딱지를 들이대는 것은 글로벌 환경에서 경쟁해야 할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생각하지 못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3│차세대 먹을거리 바이오산업도 위기

삼성이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며 주력하고 있는 바이오산업도 분식회계 논란으로 위기를 맞았다. 삼성은 지난 8월 바이오·인공지능 등 4대 차세대산업에 앞으로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삼바가 분식회계 기업이라고 한국 정부가 낙인을 찍어 바이오의약품 업계에서 삼바의 입지는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삼바 사태로 바이오회사들 주가가 하락하고 삼성의 대외신뢰도가 떨어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유치가 안 돼 바이오산업 전체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면서 “삼바가 제3공장을 만들고도 놀리게 생겼는데, ‘일자리 늘리겠다’는 정부에서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