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세번째로 큰 은행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의 부실채권 비율은 34%에 이른다. 민간을 통한 자본확충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지만, 정치 불안으로 회생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 : 블룸버그>
이탈리아에서 세번째로 큰 은행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의 부실채권 비율은 34%에 이른다. 민간을 통한 자본확충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지만, 정치 불안으로 회생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 : 블룸버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MPS)’가 설립 544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실이 이어지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지만, 회생 계획이 무산되며 부도 위기에 몰린 것이다. 당초 MPS는 카타르투자청 등 민간에서 투자금을 확보한 뒤 유상증자를 실시해 회생에 나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차질을 빚으며 MPS는 정부의 구제금융에 기대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지난 12월 4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부결되며 마테오 렌치 총리가 물러나게 됐고, 이른 시일 내 정부 구제금융이 지원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MPS는 지난 7월 유럽금융감독청(EBA)이 역내 61개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 올해 1분기 MPS의 부실채권(NPL) 비율은 34.4%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마르코 모렐리 최고경영자(CEO)는 구조조정을 위해 2019년까지 직원 2600명을 감원하고, 지점 500개를 폐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정도 구조조정 계획으로 그동안 누적된 부실을 만회하기엔 MPS의 부실이 심각하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MPS가 회생하려면 최대 80억유로(약 9조8800억원)의 자본 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상보다 신속하게 정부 구제금융이 이뤄지더라도 MPS가 정상화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부실 규모가 워낙 큰데다 사업 전망도 밝지 않기 때문이다.

MPS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20년 전인 1472년 시에나에서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다. 전 세계 2100개 지점(고용자수 2만6000명)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용 고객은 530만명에 이른다. 이탈리아 내 ‘유니크레디트’와 ‘인테사상파올로’에 이어 세번째로 큰 은행이다.


실패원인 1 |
무리한 사업 확장

MPS는 1860년대 이탈리아가 통일된 이후 시에나를 벗어나 이탈리아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99년 6월에는 이탈리아 주식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돼 본격적인 성장기가 이어졌다. 2000~2006년에는 공격적으로 사업 규모를 키웠다. 지역은행인 방코 아그리콜라 만토바나, 방카 델 살렌토를 사들였고 사업 부문도 개인 대출에서 저축은행 서비스·신용·투자은행 등으로 확대했다. 또 MPS는 2007년 방코 산탄데르로부터 안톤베네타를 90억유로(약 11조1200억원)에 인수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인테사상파올로로부터 지역은행 카사 디 리스팔미오 디 비엘라 에 베르셀리를 3억9900만유로(약 4900억원)에 사들였다. 인수합병을 통해 빠르게 덩치를 키운 MPS는 이탈리아에서 세번째로 큰 은행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곧 무리한 확장에 따른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많은 지역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했다. MPS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업 영역이나 영업 지역이 겹치는 사례도 나타났다.

특히 MPS는 안톤베네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실사조차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쟁자였던 프랑스 BNP파리바에 기회를 뺏길 것을 우려해 인수 필수 작업인 실사를 생략한 것이다. 인수 금액도 터무니없이 높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초 방코 산탄데르는 안톤베네타 매각 금액으로 66억유로를 제시했지만 MPS는 90억유로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안톤베네타를 인수했다.


실패원인 2 |
파생상품 투자에서 대규모 손실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부족해지자 MPS는 투자 위험이 높은 파생상품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MPS는 2002~2006년 파생상품 운용사 산토리니·알렉산드리아에 막대한 규모의 자금 운용을 위탁했다. 하지만 운용 과정에서 오히려 거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이탈리아 당국 조사에 따르면 이때 발생한 파생상품 운용 손실로 MPS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5억~7억5000만유로(약 6100억~9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경영진은 투자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 회계 부정도 저질렀다.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했던 사실은 2012년 11월 새로운 경영진에 의해 밝혀졌는데, 이 사실이 알려진 2013년 1월 주식시장에서는 MPS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실패원인 3 |
무능한 경영진이 위기 키워

MPS가 큰 위기에 봉착한 데에는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세페 무사리(Giuseppe Mussari) 은행장을 비롯해 2000~2007년 사업 확장을 이끌었던 MPS 경영진은 시장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했다. 위험한 파생상품 투자에 뛰어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MPS가 진행한 인수합병 역시 문제가 많았다. 특히 안톤베네타 인수 발표 후 내부에서는 경영진의 결정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당시 안톤베네타는 내부 조직이 탄탄하지 않았고 성장률도 낮은 상태였다. 잘못된 경영 판단이 이어지는 가운데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은행 부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2012년 상반기에만 MPS는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회사의 자본 구성을 재편하면서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됐다. 루크레치아 라이클린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경영 과정에서 투명하지 않고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 무능한 경영진이 이런 위기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keyword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 경제 위기 등 기업이나 은행 외부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부정적인 외부 충격)에 얼마나 잘 견딜 수 있는지 진단하는 시험이다. 유럽중앙은행과 유럽은행감독청은 주기적으로 유로존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금융시장 건전성을 점검한다.

Plus Point

정치 불확실에 리스크 커진 伊 은행

지난 12월 4일 치러진 이탈리아 국민투표가 부결되면서 이탈리아 정국은 불확실한 안갯속에 갇히게 됐다. 국민투표 이후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업종은 은행이다. 당장 이탈리아 은행들의 부실채권 처리 문제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금융감독청에 따르면 이탈리아 은행의 평균 부실채권 비율은 16.9%(2015년 말 기준)로, 프랑스(4.2%)·독일(3.2%)·영국(2.5%)·스페인(6.8%) 등 주변국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특히 이탈리아 은행들은 조직 효율성이 떨어지고 대출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어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이탈리아 은행의 자본확충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MPS는 국민투표 직후 부실채권 일부를 금융시장에서 매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시장에 내놓을 부실채권에 선뜻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른 은행의 부실채권 처리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최대 은행 유니크레디트는 조만간 130억유로(약 16조6800억원)의 자본확충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이 계획이 무난히 진행될 수 있을지 전망이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