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출신인 안토니오 호르타 오소리오 CEO는 2000억파운드에 이르는 부실 대출을 청산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 로이즈은행 경영 정상화를 이끌었다. <사진 : 블룸버그>
포르투갈 출신인 안토니오 호르타 오소리오 CEO는 2000억파운드에 이르는 부실 대출을 청산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 로이즈은행 경영 정상화를 이끌었다. <사진 : 블룸버그>

영국 ‘로이즈은행’이 9년 만에 정부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영국 정부는 최근 로이즈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 203억파운드(약 30조원)를 모두 회수했다고 발표했다. 로이즈은행과 함께 구제금융에 돌입한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의 대주주는 여전히 영국 정부(지분 72% 보유)라는 점을 고려하면 로이즈은행의 경영 정상화가 상당히 빠른 것으로 평가된다.

로이즈은행이 다시 민간은행이 됐다는 소식에 지난 6년간 은행 정상화를 이끈 안토니오 호르타 오소리오(António Horta-Osório) 최고경영자(CEO)에게 관심이 쏠린다. 포르투갈 출신인 호르타 오소리오는 골드만삭스와 스페인 산탄데르은행, 잉글랜드은행에서 경력을 쌓은 금융 전문가다. 2011년 로이즈은행에 합류해 경영 정상화와 구조개혁을 주도했다.


6년간 로이즈은행 수익성·건전성 높여

2011년 초 호르타 오소리오가 로이즈은행 CEO로 취임할 당시, 은행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겪으며 은행 대출 상당 부분이 부실화된 상태였고, 조직은 수익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비대했다.

호르타 오소리오는 먼저 2000억파운드(약 292조원)에 달하는 악성 부실 대출 청산에 나섰다. 부실 대출은 대부분 로이즈은행이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인수한 HBOS은행이 보유한 것으로, 당장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규모였다. 그는 다른 은행과 투자자들에게 부실 대출 채권을 매각하는 동시에 은행 자산을 확대하고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고객 예금을 유치했다. 하지만 2011년 발생한 유럽 재정위기가 영국 금융시장을 뒤흔들며 호르타 오소리오의 계획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유럽 단기 금융시장에 중요한 자금원 역할을 하던 미국 머니마켓펀드(MMF)가 유럽에서 자금을 빼기 시작했다. 매달 300억달러가 유럽에서 빠져나갔다. 호르타 오소리오는 “그 당시 우리 은행이 유로존 위기와 경기 침체에 얼마나 준비돼 있지 않은지 알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호르타 오소리오는 극심한 불면증으로 두 달간 장기 휴식을 취해야 했다. 부실 대출 청산 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로이즈은행의 구제금융 졸업에 큰 역할을 했다.

호르타 오소리오가 주도한 또 다른 개혁은 인력·지점 구조조정이었다. 2014년 호르타 오소리오 CEO는 2017년까지 200여개 지점을 폐쇄하고 직원 9000명을 해고하는 내용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된 이후에는 지점 400여개 폐쇄, 1만2000명 직원 해고로 구조조정 범위를 확대했다. 은행의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그가 그동안 로이즈은행에서 받은 보수가 3800만파운드(약 43억원)에 이르는 것을 두고 논란이 컸다. 그럼에도 호르타 오소리오가 추진한 구조조정 결과는 은행 수익성 개선으로 나타났다. 로이즈은행의 영업이익경비율(영업이익에서 각종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47%로, 영국 주요 은행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다른 대형 은행보다 경쟁력 있는 비용 구조를 갖게 된 셈이다.

위기에서 벗어나는 가운데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호르타 오소리오의 리더십은 주목받았다. 그중 하나가 ‘지급보증보험(PPI·Payment Protection Insurance) 스캔들’을 처리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채무자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해 보험회사가 각종 담보대출 채무를 대납하는 PPI를 판매한다. 그런데 로이즈은행이 대규모 부실 PPI를 판매한 혐의가 드러났다. 이 스캔들은 호르타 오소리오가 CEO를 맡기 전 발생한 금융 사고였지만, 그는 이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고 했다.


보험 판매 스캔들도 신속하게 마무리

그는 PPI 불완전 판매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32억파운드를 충당금으로 쌓았다. 이는 당시 업계의 예상을 크게 웃돈 규모였다. 로이즈은행은 2011년 1분기 손실을 감수해야 했고, 내부에서는 물론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은행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협상 없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성급하게 보상금으로 책정했다는 것이다. 호르타 오소리오는 “당시 우리 은행이 판매한 상품은 명백히 문제가 있었고, 적절한 보상은 우리가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CEO의 과감한 결정으로 로이즈은행은 보상금 지급을 마무리하고 스캔들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과거 영국 정부의 지분 보유를 감시하던 짐 오닐 BoA메릴린치 글로벌 금융 담당 대표는 “호르타 오소리오 CEO는 정부가 제공한 구제금융을 다시 납세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Plus Point

호르타 오소리오 거취 관심 당분간 로이즈은행 지킬 듯

영국 런던의 로이즈은행. <사진 : 블룸버그>
영국 런던의 로이즈은행. <사진 : 블룸버그>

로이즈은행이 위기에서 벗어나 민영화에 성공하면서 호르타 오소리오 CEO의 거취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2018년 임기가 끝나는 스튜어트 걸리버 HSBC CEO 후임에 호르타 오소리오가 임명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일부 측근은 호르타 오소리오가 고향 포르투갈로 돌아가 정치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하지만 호르타 오소리오는 당분간 로이즈은행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스스로 “여기(로이즈은행)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고 했고, 로드 블랙웰 로이즈은행그룹 회장 역시 최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호르타 오소리오 CEO가 은행의 미래를 창조하는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당분간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로이즈은행을 이끌 것으로 보이는 호르타 오소리오는 “디지털 금융 서비스와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에 집중할 것”  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로이즈은행은 지점을 폐쇄하는 가운데 온라인·모바일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덕분에 로이즈은행의 모바일 앱 고객은 2014년 5200만명에서 최근 8300만명으로 증가했다. 로이즈은행은 디지털 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비용을 줄이고 아마존·구글 등 금융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신규 경쟁자, 몬조·스타링 등 핀테크 업체의 등장에 대응하고 있다. 영국 금융 부문의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브렉시트’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호르타 오소리오 CEO의 새로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