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시절 풍류와 해학을 즐기던 몇몇 선배들이 그저 ‘좀 더 잘 놀기 위해서’ 모임을 하나 결성했다. ‘민홀당(민주홀아비당)’이라고 명명된 모임이었는데 이 모임이 그 후 실제로 어떤 활동을 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었지만 이 당(?)이 제1조로 채택했던 다음과 같은 정강(政綱)만은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우리는 하루 빨리 이 당에서 탈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너가 ‘개미군단’

무시 못 하는 건‘성과’


참여연대를 통해 소액주주운동을 평가해보자. 1997년 3월7일 제일은행 주주총회장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던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은 최근 10년간 가장 성공적이었던 시민운동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SK텔레콤, 현대중공업 등 국내 유수의 재벌기업들을 상대로 펼쳐진 소액주주운동은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 경영권 편법상속, 정경유착 등 재벌의 잘못된 관행과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매년 주주총회 시즌이 되면 주요 기업들은 참여연대가 어느 주주총회에 참석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으며 참여연대가 제기하는 각종 이슈, 뒤 이은 형사 고발과 주주대표 소송은 시민들과 언론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학자로서, 변호사로서 또는 회계사로서 이 운동에 참여했던 대개의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소액주주운동이 없어도 되는 미래’를 꿈꾸지 않았나 싶다. 소액주주를 대변한다고 하는데도 정작 소액주주들 참여가 저조해 ‘소액주주 없는 소액주주운동’으로서의 한계에 직면할 때,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이 시민들 성금과 참여로 운영되는 소액주주운동의 성과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자원 활동가로 참여한 운동이 갑자기 너무 중요해지는 바람에 도저히 비상근 자원 활동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이런 생각은 더욱 간절해졌다.

굳이 시민운동이 아니더라도 소액주주들이 스스로 활발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서 기업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아마도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그룹의 정강(政綱)이 있었다면 ‘우리는 하루 빨리 이 운동을 그만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가 아니었을까.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이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러한 기대와 소망이 상당히 성취됐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참여연대가 주주총회에 참석하는 일이 흔치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소액주주 권익과 관련한 제도 변화가 추진될 때는 즉각적으로 입장을 발표하고 삼성에버랜드 건이나 현대자동차 사태와 같은 지배구조 스캔들이 터지면 민원 제기나 형사 고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주총회에 가서 경영 현안을 따진다든지, 소액주주들로부터 표를 모아 표 대결을 벌인다든지, 직접 투자자들을 대신해 집단소송을 제기한다든지 하는 일들은 이제 드문 일이 됐다.

반면 개인 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소액주주모임을 결성해 주주총회에서 참석하고 장부열람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상법과 증권거래법에 따른 소수주주권을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종종 소액주주운동본부라는 명칭의 조직을 만들기도 하고 신문광고 등을 통해 자신들 행동의 운동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기관 투자자들도 외국 펀드건 내국 펀드이건, 연기금이건 간에 소송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주총회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공공연히 경영에 대한 감시를 선언하고 나서는 일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노라면 당초 시민운동으로 시작된 소액주주운동이 이제 시민운동 차원을 넘어서서 시장에서의 자발적인 권리 행사로 확산되는 이른바 ‘소액주주운동의 탈(脫)시민운동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참여연대가 꾸준히 추진해온 제도와 인식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상법 및 증권거래법상 소수주주권 강화, 사외이사제도 도입, 공시제도 강화, 증권집단소송제 도입과 같은 제도 변화는 소액주주를 비롯한 이해 관계자들이 직접 자신들 권리를 행사하기 쉬운 제도적 환경을 조성했다. 소액주주운동을 계기로 달라진 기업들과 투자자들 인식도 한몫을 담당했다. 이제 대주주라고해서 더 이상 소액주주를 무시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소액주주라고 해서 대주주 전횡을 용인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액주주운동의 탈시민운동화 추세는 시민운동으로서의 기업 감시운동 또는 재벌개혁운동의 퇴장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지금껏 소액주주운동 차원에서 펼쳐져 온 개별기업단위의 기업 감시활동은 이제 대부분 시장에 의해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으므로 시장에 맡겨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재벌이나 다국적 자본과 같은 실체가 존재하고 이러한 실체들이 단순히 경제활동 주체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까지 갖춘 ‘경제 권력’으로서 존재하는 한, ‘경제 권력’에 대한 감시, 특히 경제 권력과 정치권력과의 유착에 대한 감시는 여전히 시민단체 영역으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장 참여자들의 역할만으로는 재벌이나 다국적 자본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와 감시가 어렵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 해체할 때”

그렇다면 이제 만 열 살에 접어드는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의 남은 숙제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발전적인 해체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은 시민운동으로서 경제권력 감시운동과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라고도 불리는 소액주주운동을 겸하고 있었다. 경제 권력 감시를 위한 시민운동은 설령 소수주주권을 수단으로 활용한다 하더라도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한 주주행동주의와는 명백히 목표가 다르다. 그럼에도 그간 참여연대가 이 두 가지를 겸해 표방할 수 있었던 것은 소액주주 이익과 공공 이익간의 공통분모(예컨대, 기업 투명성 강화)가 분명했고, 상호 충돌이 되는 상황은 회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실제 지분을 보유한 개인 또는 기관 투자자들에 의한 주주행동주의가 자리를 잡아가는 마당에 이제 더 이상 자본을 포함한 경제 권력을 감시, 견제하는 시민단체가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참여연대가 시민운동으로서의 요소와 주주행동주의로서의 요소를 효과적으로 분리하고 각각 시민 또는 주주 이익을 혼동 없이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성공한 시민운동이 발전적으로 해체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비단 참여연대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의 바람직한 종료 모델을 제시하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