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공습이 시작됐다.”
UBS, JP모건, ABN암로 등 선진금융기법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거대 해외 금융기관들이 국내 펀드시장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 200억달러를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의 설립, 10년간 189조원으로 성장할 퇴직연금 도입 등 국내 펀드시장이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초긴장 상태다. 이미 시장의 30% 이상을 외국계가 잠식한 상태에서 세계 유수의 자산운용사들이 대거 진입할 경우 시장을 빼앗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융감독원 및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자산운용사 신규 설립 및 합작을 준비 중인 해외 금융기관들은 UBS, ABN암로, JP모건, ING, 메릴린치, CSFB, 골드만삭스, HSBC, 라자드 등 7~9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ABN암로, JP모건, ING, HSBC 등은 자산운용사 신규 설립 또는 M&A를 통해, CSFB, UBS,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은 합작사 설립을 통해 시장 진출을 모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회사는 현재 국내에 은행, 증권사 등의 형태로 진출해 있는 상태지만, 펀드 개발 및 운영을 담당하는 자산운용사를 설립한 곳은 한 곳도 없다. 대부분 해외 본사 또는 지사의 해외 펀드를 판매 대행하는 렙오피스(Represenetative Office, 대행사무소)만 갖추고 있는 상태다.



 세계적 금융기관 한국에 ‘올인’

 미국의 대형 상업은행으로 국내에도 SK글로벌의 분식회계로 잘 알려진 JP모건은 최근 자산운용 인력을 대거 채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JP모건은 올 연말까지 자산운용사 설립 준비를 끝내고 금감원에 인·허가 신청을 한 후 내년 2월부터는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가는 걸로 알려졌다. 최근 JP모건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D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마케팅 및 상품개발 등 업무별로 현지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것으로 들었다”며,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계 대표 투자은행인 ABN암로도 연내 자산운용사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ABN암로는 올 초 서울사무소를 개설했고, 강면욱 전 신한BNP파리바투신 상무 등 전문인력 채용에 나선 상태다.

 지난 7월 서울사무소를 개설한 미국계 거대 자산운용사인 라자드도 자산운용사 설립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라자드는 도이치투신 등에서 전문인력을 스카우트한 상태며, 빠르면 내년 상반기 중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표 자산운용사인 KB자산운용의 지분 20%를 가지고 있는 ING도 독자 진출을 타진하는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ING는 KB자산운용의 지분을 매각, 자산운용사를 신규로 설립하거나 M&A를 검토하는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원기 KB자산운용 대표는 “주요 주주인 ING가 독자적으로 펀드시장 진출을 검토하는 중인 것으로 들었다”며, “하지만 지분매각 등 아직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은행인 스위스유니온뱅크(UBS)는 합작을 통한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합작사는 최근 하나은행이 인수한 대한투자증권의 자회사인 대한투자신탁운용으로, 현재 실사작업을 끝내고 출자규모 및 액수, 경영권 이전 등을 협의하는 걸로 알려졌다. 대투증권 관계자는 “선진 자산운용사의 노하우와 투자경험을 갖추기 위해 UBS 등과 합작을 준비하고 있다”며, “실사작업은 끝났으며, 지분매각 규모 등에 대해 조율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스위스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퍼스트보스톤(CSFB)도 우리금융지주와 합작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에 앞서 CSFB의 CSAM은 지난 8월 서울사무소를 개설한 바 있다. 우리투자증권 고위 관계자는 “CSFB 등 해외 금융기관과 자산운용사 지분 매각을 논의 중인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현대투신운용을 인수해 자산운용업을 영위하고 있는 푸르덴셜은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 투자를 총괄하는 아시아지역본부를 한국에 설치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서울에 상주시킬 예정이다.

 이 밖에도 미국 내 최대 자산운용사로 꼽히는 얼라이언스캐피탈매니지먼트(ACM)도 국내 서울사무소의 확대·개편을 검토하는 중이며, 또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도 M&A 또는 독자적인 자산운용사 설립을 저울질하는 상태다. 배인수 ACM 서울사무소 대표는 “ACM은 한국 자산운용 시장을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한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한국 내 활동은 내년 초 ACM의 경영전략에 따라 정해질 예정이라 아직 공표할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황금시장’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해외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내년을 기점으로 대거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자산운용시장이 급팽창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한국 펀드시장은 장밋빛으로 물들고 있다. 저금리와 고령화의 영향으로 간접투자 문화가 조금씩 정착되면서 이미 펀드시장 규모는 200조원을 넘어선 상태. 펀드 가입자도 800만명을 돌파했다. 여기에 지난 7월에는 외환보유액 200억달러를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가 설립됐고, 오는 12월에는 10년간 189조원으로 성장할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또 국내 최대 펀드 투자기관인 국민연금도 10년 이후 572조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만큼 펀드시장으로 많은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산운용 업계에서는 향후 5년 안에 펀드시장은 4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원기 대표는 “외국계 자산운용사에게 한국시장은 황금시장으로 비춰지고 있다”며, “간접투자 문화 정착, 퇴직연금제 도입 등으로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이 펀드로 유입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신용일 도이치투신 대표도 “한국투자공사 설립이나 퇴직연금제도의 도입은 한국 펀드시장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라며, “외국계가 가장 군침을 흘리는 부분도 바로 이런 부분”이라고 전했다.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등 제도적 확립과 동북아 금융허브를 추진 중인 정부의 정책적 배려도 외국계 진입을 가속시키고 있다. 정부당국은 지난해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제정, 시행했다. 이에 따라 기존 주식 및 채권형 펀드는 물론 해외 펀드오브펀드, 부동산 펀드, 선박 펀드 등 다양한 상품개발이 가능해졌다. 수많은 상품개발 노하우와 투자경험을 지닌 외국계의 운신의 폭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해외 펀드. 지난해 말 3조원 규모였던 해외 펀드 판매액은 지난 9월 말 현재 5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씨티은행 등 외국계가 차지한 상태다.

 이에 업계 전문가는 “새로운 제도 마련으로 국내 펀드시장이 질적으로 성장하면서 외국계도 안심하고 들어오고 있다”며, “더욱이 동북아 금융허브로 인해 외국계에게는 펀드시장 문턱이 낮아지면서 시장 진출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종 ‘시장을 지켜라’ 초긴장

 외국계 금융기관의 시장 진출이 눈에 띠게 늘면서 토종 자산운용사들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외국계의 진입이 늘어나는 만큼 시장잠식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전체 44개 자산운용사 중 외국자본이 참여한 자산운용사는 18개로, 이 중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외국 자산운용사는 11개사에 달한다.

 이에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숫자가 많아지는 만큼 토종회사가 먹을 수 있는 파이는 줄어들 게 뻔하다”며, “특히 퇴직연금과 같은 새로운 시장은 외국계가 경험이 많기 때문에 토종회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국내 펀드시장의 30% 이상은 외국계가 잠식한 상태다. 지난 2001년 17.38%(수탁고 27조원)에 불과했던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시장점유율은 지난 2004년 말 30%를 넘어섰고, 9월 말 현재 33.8%(수탁고 67조1820억원)를 기록했다.

 박은노 마이다스에셋 과장은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전 세계 네트워크를 가진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점유율은 펀드시장 성장과 함께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토종회사들도 외국계와 경쟁하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할 때”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자산운용사도 M&A 활성화와 전문인력 양성,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등을 통해 몸짓을 키우고 투자 노하우도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퇴직연금 등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충고다.

 김동일 한국은행 금융안정분석국 대외업무팀 팀장은 “퇴직연금제도 시행에 따른 시장성장 전망, 국민연금기금 운용 참여 기대 등으로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나 국내 운용사들은 대형화와 전문화 유도,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외국계 운용사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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