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투자로 돈을 벌고 싶다고? 그렇다면 당장 눈을 밖으로 돌려야지” 전길수(50) 슈로더투신운용 사장은 26년간 자산운용부문에서 외길을 걸어온 ‘백전노장’이다. 그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로 자산운용업계에서 ‘명예박사’로 불린다. 그런 그가 국내 증시에 올인(All-in)하는 투자자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테크는 투자자 스스로 현명해야 성공한다는 것이 전길수 사장의 지론이다. 자산운용사나 은행, 증권사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뿐 투자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간접투자(펀드)의 모든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는 만큼 스스로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 사장은 이제 국내 투자자들도 달라져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재테크로서의 펀드 투자에 있어 국내 투자자들은 두 가지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본다. 우선 투자기간에 대한 개념을 확 바꿔야 한다. 어떻게 1년이 장기투자에 속하나. 해외에서는 기본 3년6개월 이상은 돼야 장기투자로 분류된다. 투자자 입맛에 맞는 단기상품에만 열을 올렸던 자산운용업계도 문제가 있지만 저금리 고령화가 정착된 지금은 투자자 스스로도 장기적인 자산운용 계획을 세울 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투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만 올인하는 천수답식 자산운용으로는 한계가 있다. 더 좋은 기회와 수익률이 가능한 해외도 있는데 왜 우물 안에서만 놀아야 하는가.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전 사장은 올 한해 국내 펀드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을 낮출 것과 분산투자를 적극 충고했다. 지난해 전 세계 증시에서 한국 증시가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여 펀드 수익률도 크게 올랐지만 올해는 지난해와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기대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해외 시장으로의 분산투자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내외적인 불안요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동성 측면에서 올해도 국내 증시의 상승 여력은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지난해와 같은 큰 폭의 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펀드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도 낮추는 것이 현명하고, 국내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한다면 해외 시장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안주할 때 아니다”

전 사장은 투자자와 함께 자산운용업계도 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펀드 시장 규모가 200조원을 돌파하고 적립식, 퇴직연금 등으로 시장 여건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 양적, 질적으로 업계가 안주할 때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적립식, 퇴직연금 등 장기투자상품의 인기로 시장 여건이 고무적이긴 하지만 자산운용사들은 섣불리 판단하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펀드 수탁고가 200조원을 넘었지만 IMF 전후 180조원이었던 것에 비해 30조원가량 늘어난 것뿐이다. 속내를 살펴봐도 MMF나 단기채권 상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변한 것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는 자산운용업계가 오랜만에 찾아온 호기를 오랫동안 이어가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시장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우선 자산운용사마다 상품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 펀드 시장규모가 230조원에 달하지만 이중 MMF나 단기채권상품 등 비경쟁적인 상품이 절반 가까이 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외형은 늘었지만 자산운용업계의 수익성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질적으로도 레벨업하기 위해서는 자산운용업계가 상품 종류를 장기 주식형과 채권형, 해외펀드, 실물펀드 등 다양하게 갖춰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산운용사의 수익성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주식형 상품 비중을 40%, 채권형과 여타 상품 60%를 자산운용사의 이상적인 구조로 제시했다.

최근 논란이 된 펀드 고비용 문제와 관련, 그는 현재의 펀드 비용구조가 절대 높은 수준이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해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보수가 낮다는 주장이다. 또 문제의 근본 원인은 단기투자 문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외 투자자간 가장 다른 점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투자기간에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투자기간이 평균 1년 이하로 짧지만 전 세계적으로 평균 투자기간은 3년6개월 정도다. 이것이 비용 논란의 핵심이다. 짧은 만큼 더 싸야한다는 인식이 현재 펀드 비용 분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따라서 자산운용업계와 투자자 모두가 장기투자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펀드 비용의 유연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정부당국 역시 이런 점을 감안해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이퀄리티 비즈니스에 박차

전 사장은 올해를 도약의 해로 삼았다. 그동안 조용한 경영을 했다면 올해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영국에 본사를 둔 슈로더투신운용은 1998년 외국계중 처음으로 국내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투신사 라이선스를 받은 회사지만 외형으로는 소형사에 속한다. 여타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M&A로 몸짓을 불리는 와중에도  슈로더투신은 조용히 내실경영에만 치중했다. 설립 6년이 다 됐지만 펀드 수탁고가 1조원을 간신히 웃도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외형상 소형사이긴 하지만 슈로더투신은 ‘알짜회사’로 불린다. 상품구조를 보면 수익성이 높은 주식형 펀드와 재간접펀드(펀드오브펀드)가 70%를 차지하고 있고 마진이 적은 MMF, 채권형 상품은 거의 취급하지 않고 있다. 또 서울기금(기업구조조정 펀드)과 국민연금 운용을 담당하면서 기관투자가 사이에서는 이미 펀드 운용 실력을 인정받은 상태다.    

전 사장은 “슈로더투신은 펀드 운용의 원칙과 정도를 중요시하고 단기투자상품은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며 “단기적이고 실적 위주인 국내 투자문화 특성상 이런 보수적 성향이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실력이나 경쟁력만큼은 이미 인정받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 한해 적립식펀드와 퇴직연금, 변핵보험 등 장기적이고 수익성 높은 하이퀄리티 상품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또 서울기금 운용 경험을 토대로 장기 PEF(사모펀드)도 선보일 예정이다. 주식형 적립식펀드의 경우 이미 브릭스펀드와 코리아에쿼티알파 등 신상품을 출시해 전체 펀드 수탁고의 절반인 5500억원 가량을 모집한 상태다.

그는 “적립식이나 퇴직연금, 변핵보험의 잇따른 도입은 국내 펀드 시장의 질적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은 물론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도 경쟁력과 수익성을 강화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하이퀄리티 상품이다. 올해에는 하이퀄리티 상품을 중심으로 영업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또 PEF와 관련, 그는 “국내에는 PEF가 대부분 기업 인수 후 구조조정을 통해 비싸게 되파는 바이아웃(Buy Out) 형식으로 제한돼 있다”며 “ 슈로더투신은 바이아웃 형식보다는 서울기금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기업 친화적이고 장기적인 PEF를 선보일 계획”이라 전했다.

이 같은 공격경영으로 2006회계연도(2006년 4월~2007년 3월)에는 수익성을 더욱 키우고 자본잠식에서 벗어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01년 회사 설립 이후 꾸준히 이익을 냈지만 인건비 등 설립비용으로 인해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올해에는 아마도 세금을 많이 내는 한해가 될 것이다.(웃음)”

원칙과 정도를 중요시 여기는 전 사장은 단명이 특징인 자산운용사 CEO로서는 드물게 슈로더투신 대표로서 6년간 장기집권(?)해왔다. 그만큼 영국 슈로더투신 본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 내실경영으로 6년을 지낸 온 그가 공격경영을 선언한 것은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주목할 만한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