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들이 과거 경쟁적으로 판매했던 고금리 상품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 과도한 확정배당금을 제시했던 백수보험 지급 문제가 법정다툼으로 비화됐고, 7.5%의 확정 고금리를 적용했던 각종 연금상품의 지급기한이 도래하고 있다. 소송 중인 백수보험에 대해 법원이 판매자 책임을 인정하고 계약자 손을 들어주면, 보험사는 약 3조원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난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생명보험(이하 생보)업계는 40여개사가 난립, 치열한 실적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보험사들은 설계사를 대량으로 선발하고 고객유치를 위해 고금리 상품을 앞 다퉈 도입했다. 그러나 시중금리가 하락 4%대에 머물면서 생보사들은 심각한 역마진 문제에 직면하게 됐고, 계약자들에게 지급할 보장금이 턱없이 모자라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 최근 법정다툼으로 비화된 백수보험(百壽保險)이다.

 백수보험은 삼성, 교보, 대한, 금호, 흥국, 제일 등 6개 생보사가 시중금리 20% 이상이던 1980년에 개발, 그 해 2월5일부터 1984년 10월31일까지 판매한 상품이다. 판매 당시 이 상품은 확정배당금 25%를 보장하고, 배당금을  적립해 평생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해 큰 인기를 끌었다.

 백수보험은 당초 은행이율이 변동함에 따라 확정배당금도 변동되고, 은행이율이 예정이율인 12% 이하로 하락하면 확정배당금은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설계한 상품이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보험모집인들을 앞세워 상품안내장과 지급예시표 중 일부만을 제시하면서 ‘안락한 노후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획기적인 보험상품, 최고의 이율을 보장, 지급예상액과 같은 배당금 확정, 확정배당금 종신까지 지급, 장수할수록 유리’하다는 장점만을 강조했다. 반면 은행이율에 따라 확정배당금의 수액이 변동된다는 점, 은행이율이 예정이율인 12% 이하로 하락하면 확정배당금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등 단점은 은폐했다.

 백수보험은 워낙 지급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100만건 이상의 계약을 체결하는 기록을 남겼다.



 백수보험 25%보장 판매 후 배당금 0% 전락

 그러나 소비자들이 계약을 체결한 지 길게는 1년, 짧게는 1개월 정도 이후인 1981년 6월 28일 정부는 은행이율을 12% 이하로 인하하는 금리인하조치를 단행했고, 결국 백수보험의 확정배당금이 전혀 발생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계약자들은 보험회사로부터 ‘은행이율이 예정이율 12% 이하로 하락하면 확정배당금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지받지 못하고 확정배당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말만 믿고 3년~10년 동안 당시 월급여의 30~50%에 이르는 막대한 보험료를 납입했다. 이 당시 상품 안내장에는 월 3만8200원씩 5년간 납입할 경우 확정배당 적립액 1억원, 확정배당금 매년 2400만원 등 75세까지 살아남을 경우 모두 6억원 이상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고 나왔지만(그림 참조), 정작 계약자들은 매년 100만원의 보험금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예정이율 12%는 6개사 판매자료 그 어디에도 없다. 약관에서 사업방법서로 인용하고, 사업방법서는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로 인용, 보험사만 보관하고 있는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서만 예정이율을 볼 수 있을 뿐, 계약자는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이 상품 약관 제 15조에서는 “사업방법서에 의하여 계산된 금액을 확정배당금으로 지급한다”라고 되어 있고, 계약자가 볼 수 없는 사업방법서에는 “보험료 산출기초에 적용된 예정이율과 동일 보험년도 중의 정기적금 최고이율과의 차율에 전 보험년도 말 책임준비금을 곱한 금액을 확정배당 준비금으로 적립한다”라고 되어 있다.

 보험사들은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서는 확정배당금 산출의 정확한 개념이 존재하나, 이 내용을 대외비라고 하여 계약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또 회사가 정기적금 이율이 18%대로 떨어졌어도 예시금액이 많은 종전 25%의 조견표를 그대로 사용했다.

 확정배당금이란 용어를 사용해 확정적으로 지급되는 배당금이라는 뜻으로 설명, 계약자를 현혹시켜 비난을 받았던 생보사들은 1993년 6월 9일, 이를 ‘금리차보장금’이란 용어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계약자들은 55세 또는 60세가 된 이후 보험회사에게 확정배당금의 지급을 요구했지만, 시중금리 변동을 이유로 거절당한 뒤 금융감독원 민원 및 법원소송을 제기해 왔다. 백수보험에 대한 소송은 전국적으로 약 50여건에 이르지만, 그 중 보험계약자가 승소한 사례는 단 두 건에 불과하다. 따라서 계약자들이 개별적·산발적인 방법이 아니라 집단적·집중적인 방법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하고, 2004년 4월 8일 1차, 2005년 1월 24일 2차로 소송을 냈다.

한편 보험사들도 상품판매의 문제점과 사기성을 인정하고 해약·합의 등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지급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관상 변동금리 상품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백수보험 가입자들이 생보사를 상대로 낸 확정배당금 반환청구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현재 백수보험 가입자는 11만명에 이르며, 일부승소가 이어지게 되면 이에 따른 보험금 지급 예상액은 5000억~6000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재판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판결에서 생보사들이 완벽하게 패한다면, 계약자들에게 60세 이후 사망시점까지 약정했던 매년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경우 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금액은 3조원에서 3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소송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만일 보험회사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제3, 제4의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며, “진행되는 소멸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해 3차 소송을 준비 중이며, 이번 소송은 수천명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해 확정배당금 지급을 놓고 보험사와 계약자의 줄다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백수보험 이외에 생보사들이 앞으로 지급해야 할 고정금리 상품이 아직 상당수 남아 있어 자산운용과 건전성에 위협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고정금리 상품은 이자율이 12% 내외이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7.5%의 이율로 판매된 상품이다.

 보험사들은 향후 이자율이 하락하면 변동금리 상품보다 유리하다며 상품을 판매했지만, 이자율이 예상보다 지나치게 많이 떨어져 역시 손실이 예상된다.

 삼성생명의 ‘장수축연금’과 ‘기쁨둘 행복셋연금’ 등이 과거 고금리시대 7.5% 이상의 확정금리로 판매한 상품이다. 대한, 교보생명 등도 ‘브라보저축보험’,‘21C 장수연금보험’,‘노후설계연금보험’ 등 과거 금리가 높았던 시절 확정고금리를 약속하고 판매한 연금보험계약이 남아 있다. 또 중·소형사 중 금호생명 역시 지난 79~85년 판매한 ‘종신연금보험’이 확정금리 7.5%로 설계된 상품이며, 현재 3200여건이 유지되고 있다. 이 외 알리안츠, 흥국 등 대부분 중·소형사들도 비슷한 상황이다.(표 참조)

 현재 시중금리가 3%대 후반이고 자산운용 수익률도 6%대임을 감안하면, 생보사에게는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특별계정을 제외한 책임준비금 규모는 약 70조원이고, 평균부담금리는 약 6.7%”라며, “이 중 약 57%인 40조원이 과거 고금리시대에 7.5% 이상의 확정금리로 판매된 계약이어서 상당한 부담이 있다”고 밝혔다.



 생보사 과거 계약 적립금 중 60%가 고금리 상품

 특별계정은 종신보험, 변액보험 등 최근에 판매된 상품에 대한 책임준비금을 의미한다. 따라서 과거에 팔았던 보험상품 중 계약자에게 지급하려고 쌓아놓은 금액의 절반이 넘는 돈이 고금리 상품이라는 뜻이다.

 생보사들은 이에 맞는 책임준비금을 적립하고 있지만, 자산운용의 부담과 함께 백수보험의 경우처럼 계약자와의 분쟁을 유발, 생보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여지도 남아 있다.

 한편 생보사들이 확정 고금리 상품 계약을 다른 상품으로 전환시키려는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여,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일차적으로 금리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상품을 판매한 보험사의 책임이 크다”며, “이로 인한 보험사의 자산건전성 악화에 따른 부실화는 결국 계약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금융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국내 생보사들의 근시안적인 상품정책과 리스크 관리 부재가 오늘의 고금리 상품의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한 것이다.

 보험은 금융상품 중 가장 납입기간이 긴 초장기 상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15년 이상 보험료를 받고 자금을 운용하고 수십년이 지난 후에 보험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 보험사들은 아직까지 근시안적인 상품 운용과 마케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됐던 변액보험도 분명 15년 후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영업일선에서는 과거 저축성 보험과 똑같은 방식으로 판매되어 왔다. 이에 삼성생명을 비롯한 국내 생보사들 대부분이 기존 상품에 대한 판매를 중지하고 보장성을 강화한 상품으로 전환했다.

 임창원 PCA생명 전무는 “최근 증시가 활성되면서 변액보험 등 투자수익이 가미된 상품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보험은 초장기 상품으로 몇 년 후에 증시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며 국내시장에서의 변액보험 열풍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외형성장 위주, 실적 위주의 생보사 경영마인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10년 후에는 변액보험 계약자들이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정원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