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1등주의’가 삼성 금융계열사들 사이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그동안 각 금융권에서 ‘TOP’이라는 타이틀을 고수해 왔던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최근 갈수록 거세지는 국내외 경쟁사들의 도전과 인수합병 및 겸업화, 금융지주사 설립 등 금융환경 변화로 시장지배력이 약해지고 있다. 도전과 변화라는 장벽 앞에서 과연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1등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영원한 1등은 없다.”

 최근 보험 및 증권 등 제2금융권에선 삼성 금융계열사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제1금융권인 은행을 제외한 여타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했던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삼성생명·화재·증권 등 삼성그룹의 ‘1등주의’ 명맥을 이어온 금융계열사들의 시장 지배력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생명 및 화재의 독보적인 시장지배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데다 삼성증권은 이미 1등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이들 금융계열사들이 과거 대규모 자금력과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X파일 등 삼성그룹의 잇단 악재로 이미지 실추에 따른 시장 지배력 하락 우려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정치권의 금융산업구조개선법률(이하 금산법) 개정, 삼성그룹의 공정거래법 헌법소원과 X파일을 계기로 불거진 반삼성 여론은 금융계열사의 영업력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금융계열사의 경쟁력과는 상관없이 정치적·국민적 반감이 1등주의를 옥죌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삼성 금융계열사 중 삼성투신운용이나 삼성카드는 사실 ‘1등주의’와는 무관하다. 단지 ‘삼성이 하면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삼성투신운용은 3투신(한국투신, 대한투신, 현대투신운용(현 푸르덴셜자산운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삼성카드도 LG카드에 밀려 만년 2위에 머무르다 이 자리마저 내준 상태다.



 삼성생명 ‘부동의 1위 이젠 옛말?’

 생보업계 부동의 1위인 삼성생명이 외국계 생명보험사(이하 생보사)들의 시장 잠식으로 속을 태우고 있다. 급기야 과거 시장독점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던 40%대 시장점유율이 30% 중반까지 떨어지면서 위기감마저 감지되고 있다. 삼성생명의 지난 2004사업연도(2003년4월~2004년3월) 시장점유율(총 수입보험료 기준)은 34.33%(18조4541억원)로 2003사업연도 36.24%에서 2% 포인트 가량 줄었다. 지난 2000사업연도에 비해서는 5.73% 포인트 하락했다. 시장점유율이 매년 1%씩 줄어든 셈이다.

 이러한 시장점유율 하락은 지난 2003년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방카슈랑스 도입 이후 외국계 생보사들의 가파른 시장 확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사들의 시장 확대가 전체 생명보험시장 성장세를 휠씬 앞지르면서 삼성생명이 속수무책으로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ING생명 등 11개 외국계 생보사들의 시장점유율은 지난 사업연도 16.5%로 전년 동기 13.6%에서 3% 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이에 앞서 지난 2000사업연도에는 5.8%에 불과했던 시장점유율이 이후 8.0%(FY2001), 10.5%(FY2002) 등 급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의 시장점유율 하락이 과거 방카슈랑스 도입시 대규모 설계사 조직의 반발을 우려해 적극적인 판매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카슈랑스 상품 판매를 확대할 경우 채널간 마찰에 따른 영업위축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방대한 조직이 오히려 변화의 걸림돌로 작용한 셈이다.

 삼성생명의 방카슈랑스 상품 판매수수료가 통상 외국사보다 낮아 상품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한 요인이다. 대형사들은 조직이 방대한 만큼 대규모 사업비 및 브랜드 이미지 등을 감안해 외국사는 물론 중소형사들보다 낮은 판매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상대적으로 몸집이 가벼웠던 외국계 생보사들은 방카슈랑스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더군다나 외국사들은 방카슈랑스 판매 확대를 발판으로 설계사를 대폭 늘리는 등 공격적인 사세 확장에 나서면서 시장 지배력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삼성생명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시장잠식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각에선 삼성생명이 외국계 대형 생보사들의 시장점유율 및 전략을 분석,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형 생보사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 등 대형사들이 방카슈랑스 도입에 따른 판매채널 다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외국계 생보사에 시장을 선점당했다”며 “최근 대형사들이 방카슈랑스를 새로운 창구로 인식하고 뒤늦게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모든 면에서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생명은 시장점유율 하락에 이어 순이익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삼성생명의 지난 사업연도 당기순이익은 5758억원으로 전년 사업연도 1조1463억원에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특히 지난 사업연도 순이익은 지난 2001년 6308억원를 기록한 이후 가장 저조한 실적이다.  더욱 심각한 건 삼성생명이 올해도 수익성이 높은 보장성 보험 판매가 줄어든 데다 주력 상품의 판매 중지, 회계제도 전방위 변경 등으로 이익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는 것이다.

 중소형 생보사 관계자는 “삼성생명은 최근 순수보장성 종신보험 가입 감소, 변액유니버셜보험 판매 중단 등 이익 감소가 불가피해 새로운 대안상품 개발이 급선무”라며, “여기에 IBNR(미보고발생손해액 : 사고가 발생했는데 보험금 청구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의 추정 손해액) 적립과 실제사업비 이연 상각 등 회계제도 변경으로 이익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삼성화재  ‘온라인’ 외풍에 흔들

 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는 온라인 자동차보험사들의 시장 확대로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삼성화재 역시 자동차보험의 방카슈랑스 판매가 허용되면 시장점유율이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태라서 비상에 걸렸다.

 삼성화재의 지난 2004사업연도 시장점유율(원수보험료)은 32.35%(6조8049억원)로 전년 동기(32.29%)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1사업연도에 처음으로 30%대를 돌파한 이후 꾸준히 31%에서 32%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삼성화재의 시장점유율 증가는 장기 및 자동차 보험 등 전반적인 시장 성장에 따른 반사이익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파이가 커진 만큼 시장점유율이 소폭 개선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에도 삼성화재는 지난 3년간 시장점유율이 32% 안팎에서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화재 역시 더 이상 독보적인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화재의 시장 지배력 정체 및 약화는 온라인 자동차보험사들의 시장 잠식이 주요인이다. 온라인 자동차보험 시장점유율(원수보험료 기준)은 올 1분기 9.2%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3% 가까이 상승, 마의 1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001년 하반기 설립된 온라인 자동차보험사들이 불과 4년도 안 돼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삼성화재의 기존 오프라인 자동차보험이 온라인 상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고객 이탈에 속수무책이라고 지적한다. 자동차보험은 만기 1년의 소멸성 보험으로 고객의 가격 민감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통상 온라인 자동차보험은 설계사 수당이 없어 보험료가 평균 10~20% 정도 저렴한 상태이다.

 특히 자동차보험의 방카슈랑스 상품 판매가 허용되면 온라인 자동차보험이 저렴한 보험료를 무기로 가히 메가톤급 시장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인건비가 줄어드는 만큼 보험료를 더욱 낮춰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수 있다는 것. 상황이 이런데도 삼성화재는 손보사 중 유일하게 판매채널 간 마찰을 우려, 온라인 자동차보험 시장에 뛰어들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 때문에 삼성화재가 당분간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 자동차보험의 방카슈랑스 상품 판매가 허용되면 설계사 수당은 물론 인건비가 절감돼 현재보다도 가격이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이럴 경우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비싼 대형사들의 기존 오프라인 자동차보험의 시장점유율은 더욱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화재 역시 순이익에서 손보업계 1위다운 위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사업연도 손보 시장 활황에 힘입어 당기순이익이 2782억원으로 전년도 1701억원보다 크게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지난 5년간 3000억원대 벽을 깨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사업연도 대규모 당기순이익은 유가증권의 대규모 평가익에 따른 것으로 일시적인 현상이다. 반면 무리한 사업비 집행 등으로 인한 만성적인 보험영업 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해 수익 악화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삼성증권 ‘아~옛날이여!’

 국내 대표증권사로 불리던 삼성증권이 위탁영업(브로커리지) 업계 1위 자리를 내준 건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8월10일 현재 삼성증권은 위탁영업 시장점유율(8월 누계 약정기준)이 업계 5위로 밀려난 상태. 경쟁사의 공격적인 영업과 온라인 증권사의 가격경쟁으로 최근 삼성증권의 시장점유율은 과거 8%대에서 6%대로 무려 2%포인트나 하락했다.

 이에 증권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우, 미래에셋, 키움닷컴증권 등이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면서 삼성증권의 시장점유율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며, “아직까지 업계 1위 자리를 탈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위탁영업이 약화되면서 경쟁사에 비해 실적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위탁영업 수익은 삼성증권 전체 순이익 중 4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 증시 활황에도 올 1분기(4월1일~6월30일) 삼성증권은 297억원의 영업이익과 215억원의 순이익을 거둬들이는 데 그쳐 우리증권(순이익 298억원) 대우증권(436억원) 현대증권(300억원) 등 4대 증권사 중 꼴찌를 기록했다.

 김병윤 미래에셋증권 상무는 “대형 증권사들은 여타 중소형 증권사에 비해 지점과 영업인력이 많고 수수료도 상대적으로 높아 증시 활황에 이익 증가율이 크다”며, “삼성증권의 영업이익이 대우증권 등 경쟁사에 비해 부진한 것은 위탁영업이 약해졌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증권의 위탁영업 부진은 황영기 전임 사장의 ‘종합자산관리 영업전략’ 실패가 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황 전임 사장은 종합자산관리 영업을 위해 주식영업 인력을 축소하는 등 파격적인 조직 및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황 사장은 “종합자산관리 중심의 영업을 펼치면 위탁영업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고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 하지만 고객 중심의 영업을 위해서는 영업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종합자산관리 영업은 이렇다 할 빛을 보지 못하고 황 사장의 예언대로 위탁점유율만 떨어지고 말았다. 더욱이 황 사장이 임기 기간 중 새로운 영업제도가 정착되기도 전에 우리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영업공백 상태만 더욱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황영기 전임 사장 스스로도 영업구조 개편에 따른 리스크를 알고 있었다”며, “당시 영업구조 개편으로 고객 중심의 영업체계가 자리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업계 1위 자리를 내주는 데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배호원 현 사장이 취임하면서 삼성증권은 옛 명성을 되찾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삼성증권은 이달 초 부서장(파트장)급 인사를 단행, 관리 부서장 가운데 일부를 영업 관련 부서장으로 발령을 냈으며, 본사 직원 130여명을 단계별로 지점에 추가 배치했다. 또 위탁영업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지난 7월에는 차등증거금 제도를 도입하는가 하면, 임직원이 실제로 돈을 투자하는 ‘실적투자대회’를 개최하는 등 위탁영업을 독려하고 있다.



 위기의 돌파구는 무엇인가

 삼성 X파일, 헌법소원 등 ‘내풍’과 국내외 경쟁사의 공격적 영업이라는 ‘외풍’에 시달리는 삼성 금융계열사가 위기를 극복할 해법은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은행 및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그룹화나 지주사 설립이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은행 및 보험, 증권 등 금융계열사 간 업무 시너지 극대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가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이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금융그룹이나 지주사 설립이 잇따르면서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다만 걸림돌이 산적해 실제 성사 가능성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그룹화는 삼성그룹의 은행 인수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은행법상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 조항이 폐지되거나 한도가 확대돼야 한다. 하지만 학계는 물론 재계, 시민단체 등에서는 금융기관의 사금고화 등 부작용을 우려해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실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물론 보험사의 은행업 겸업을 허용하는 ‘어슈어뱅크’가 허용되면 지주사 설립이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불가 여론에 밀려 불가능한 실정이다. 올 초에도 금감원이 ‘보험산업 발전방안’ 마련의 일환으로 어슈어뱅크 허용을 검토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지만, 역시 비용부담이 커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행 지주사 설립 요건은 지주사가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생명이 지주회사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삼성화재 20%, 삼성증권 19%, 삼성투신 24% 정도의 지분을 추가로 인수해야 한다.

 이와 관련,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향후 지주사나 초대형 금융그룹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과의 전략적 제휴 체결 등을 강화해야 한다”며, “또한 지분 인수에 따른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 등도 장기적인 방안으로 검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송정훈 디지털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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