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7월 13일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한은은 2016~2020년 잠재성장률을 연평균 2.8~2.9%로 추정했다. <사진 : 블룸버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7월 13일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한은은 2016~2020년 잠재성장률을 연평균 2.8~2.9%로 추정했다. <사진 : 블룸버그>

한국 경제의 ‘최대 능력치’인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다고 한국은행이 공식 발표했다. 한은이 중장기 전망이 아닌 현재 기준으로 잠재성장률이 3%대 아래로 추락했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즉 경기 과열 없이 달성할 수 있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어느덧 2%대까지 낮아졌다는 의미다.

한은은 7월 13일 발표한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2016~2020년 잠재성장률을 연평균 2.8~2.9%로 추정했다. 한은은 2015년 12월에는 2015~2018년 잠재성장률을 3.0~3.2%로 추산했다. 불과 일 년 반 만에 잠재성장률을 낮춘 것이다. 한은은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 내외에서 계속 하락 추세”라고 설명했다.


한국시장 규제 OECD 중 4번째로 강해

실제로 잠재성장률은 꾸준히 하락해 왔다. 한은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4.8~5.2%였지만 2006~2010년 3.7~3.9%, 2011~2015년 3.0~3.4%로 계속 하락했다.

한은은 잠재성장률이 급락한 요인을 세 가지로 설명했다. 서비스업 발전 미흡, 높은 규제 수준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 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자본 축적 부진이다.

특히 한은은 “지나친 시장 규제에 따른 효율적인 자원 배분 저해, 지식재산권 보호 취약으로 인한 혁신 제약 등이 생산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시장규제지수를 보면 한국의 시장 규제는 33개 회원국 중 30위, 지식재산권 보호 정도는 30개국 중 26위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수요 부진과 그에 따른 기업 투자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점도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이유 중 하나다. 수요 부진과 투자 부진은 고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저성장 고착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전승철 한은 부총재보는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선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 구조조정과 서비스 시장 개혁, 기술 혁신 등을 통해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높여나가고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대내외 연구기관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위협 요인은 인구구조 변화다. 한은은 “앞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로 잠재성장률이 더욱 빠르게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은 ‘소비 부진→투자 감소→성장 위축’으로 이어진다. 올해는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첫해다.

한국이 지금부터 고령화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10년 안에 경제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은이 7월 6일 발표한 ‘인구 고령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5년 연평균 3.9%이던 경제성장률은 2016~2025년 1.9%, 2026~2035년 0.4%로 가파르게 떨어진다.

2036~2045년이 되면 성장률은 아예 0%로 주저앉는다. 2046~2055년엔 -0.1%가 될 전망이다. 고령화 속도가 워낙 가파른데다, 은퇴 뒤에 근로소득 감소와 함께 곧바로 소비가 위축된다는 점에서 부정적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고령화 속도, 미국보다 3.6배 빨라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가파르다. 고령화 사회(총인구 중 노인 비율 7% 이상)에서 초고령 사회(노인 비율 20%)로 넘어가는데 걸리는 기간이 미국은 94년, 일본 36년이지만 한국은 불과 26년 만에 진입한다.

다만 한은은 ‘고령화 쇼크’는 제도와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가령 정년을 5년 연장하면, 고령화로 인한 성장률 하락을 10년간 0.4%포인트, 그 후 10년간 0.2%포인트 각각 지연시킬 수 있다. 현재 57.4%(2015년 기준)인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을 OECD 평균(66.8%) 수준으로 올리면 향후 20년 동안 성장률 하락을 연평균 0.3~0.4%포인트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한은은 “종합적인 고령화 대책을 실행할 경우 성장률은 앞으로 10년 내에는 연평균 2%대 후반, 20년 내에는 1%대 중반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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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성장률(potential growth rate)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 한 나라 경제가 보유하고 있는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를 모두 활용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즉 잠재성장률은 공급 측면의 개념으로 물가 수준이나 국제수지 조건을 일정한 기준에서 유지하면서 공급할 수 있는 최대의 생산증가율이라 할 수 있다.

Plus Point

한은, 올해 성장률 2.8%로 조정

한국은행은 7월 13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4월 전망치보다 0.2%포인트 올려잡은 것이다. 올해 한국 경제가 한은이 새로 추정한 잠재성장률 2.8~2.9%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최악의 저성장 국면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분석이지만 경기 회복세를 여전히 일부 수출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어 ‘성장의 질’ 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번 경제 전망에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로 불거진 한·중 갈등에 따른 성장률 감소 효과(0.3%포인트)가 반영됐다. 사드 갈등이라는 돌발 변수만 없다면 올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소폭 웃도는 수준이 된다.

한국 경제가 올해 3%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도 있다. 한은의 성장률 전망에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효과는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는 추경이 편성되면 올해 성장률을 0.2%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추경이 통과되면 3% 성장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는 지난 2012년 이후 2014년(3.3%)한 해만 빼고 2016년까지 2%대 성장에 머물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