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금융 규제완화 조치로 미국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의 자산 가치도 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뒤로 왼쪽부터 브라이언 모이니헌(뱅크오브아메리카), 제임스 고먼(모건스탠리), 마이클 코뱃(씨티그룹), 세르지오 에르모티(UBS), 제이미 다이먼(JP모건체이스), 로이드 블랭크페인(골드만삭스) CEO. <사진 : 블룸버그>
트럼프 정부의 금융 규제완화 조치로 미국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의 자산 가치도 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뒤로 왼쪽부터 브라이언 모이니헌(뱅크오브아메리카), 제임스 고먼(모건스탠리), 마이클 코뱃(씨티그룹), 세르지오 에르모티(UBS), 제이미 다이먼(JP모건체이스), 로이드 블랭크페인(골드만삭스) CEO. <사진 :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거에 승리한 이후 미국 은행 주가가 연일 상승세다. JP모건체이스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미국의 주요 은행 주가는 작년 10월 말 대비 20~30% 정도 올랐다. 주가가 오르면서 덩치도 커졌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시가총액은 지난해 3분기 600억달러 수준에서 최근 900억달러 정도로 늘었다. 모건스탠리가 지난달 한때 시가총액에서 골드만삭스를 앞서기도 하는 등 미국 은행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주가가 급등하면서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와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가 보유한 주식과 스톡옵션 가치는 각각 1억5000만달러(약 1695억원) 증가했다.


원인 1 | 금융당국 규제 완화 기조

미국 은행주(株)가 강세를 보이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대적인 규제 완화 정책이다. 지난 6월 미국 하원은 ‘금융선택법(Financial Choice Act)’을 통과시켰다. 금융선택법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도드-프랭크법’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의 감독 권한을 삭제하는 등 금융당국의 규제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금융산업 관련 규제를 철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규제 완화 기조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에 금융브로커 출신인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를 임명했다. CFTC는 선물거래와 파생상품 거래를 감독하는 중요한 금융감독기관이다. 지안카를로 위원장은 취임 직후 규제 완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국 금융주 전반에 걸쳐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이 좋아지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기조가 바뀌면서 은행들은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은행들은 최근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분기 주당 배당금을 종전의 7.5센트에서 12센트로 높이고 129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도 발표했다. 시티그룹은 분기 주당 배당금을 두배 늘렸다.


원인 2 | 재무건전성 좋아지고 실적 개선

미국의 주요 은행 34곳은 지난 6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를 모두 통과했다. 평가 대상 은행이 모두 테스트를 통과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미국 은행들의 재무건전성이 좋아졌다는 뜻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위기 상황을 가정하고 은행들의 손실흡수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올해 테스트에서 가정한 위기 상황은 국내총생산(GDP) 6.5% 하락, 실업률 10%, 주택 가격 25% 하락, 상업용 부동산 가격 35% 하락 등이다.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미국 은행들의 보통주 자본비율(CET1)은 기준점인 4.5%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평가됐다. 은행의 자본은 보통주, 우선주, 후순위채권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보통주의 손실흡수력이 가장 뛰어나다.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할 때 보통주 자본비율을 보는 이유다.

미국 주요 은행의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

JP모건체이스의 매출액은 2015년 935억4300만달러에서 지난해 956억6800만달러로 증가했고, 올해는 10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 매출액도 지난해 306억800만달러에서 올해는 315억4600만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원인 3 | 금리 상승에 수익 증가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직전 1.85%였지만, 최근에는 2.3% 정도까지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대대적인 재정확대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고, 시장금리도 오른 것이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이 몇 차례 더 남아 있다는 점도 은행들에게 웃어주는 부분이다. 미국 연준은 올해 3월과 6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올렸고, 올해 안에 한 차례 정도 더 올릴 가능성이 크다.

시장금리 상승은 은행의 수익 증가로 이어진다. 시장금리가 오르면 순이자마진(NIM)도 함께 오르기 때문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미국 은행의 평균 NIM이 15bp 올랐다. 김민정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금리가 상승하면서 은행 예대마진이 확대되고 실적도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Plus Point

은행 CEO 고액연봉 논란

미국 뉴욕의 웰스파고 은행 지점. <사진 : 블룸버그>
미국 뉴욕의 웰스파고 은행 지점. <사진 : 블룸버그>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웰스파고는 지난해 ‘유령 계좌’ 스캔들에 시달렸다. 2001년부터 고객 명의를 도용해 유령 계좌 200만개를 만든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은 웰스파고에 1억85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고, 웰스파고 주가는 2016년 9월 이후 두달 동안 10% 하락했다. 회사는 큰 타격을 입었지만 웰스파고 CEO가 받는 돈은 여전히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지난해 웰스파고 CEO가 된 팀 슬로언이 받은 보수는 1290만달러에 달한다.

미국 은행 CEO들의 보수 체계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은행 CEO의 보수 체계를 투명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변한 건 없다. 미국 민주당의 맥신 워터스 의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목격했듯이 CEO의 보너스와 인센티브는 납세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지급된 것”이라며 “웰스파고 같은 은행이 약탈적인 비리에 가담했을 때 경영진이 포상을 받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은행 CEO의 고액 연봉에 대한 감시가 지금보다 뒷걸음질할 가능성이 크다. 도드-프랭크법은 은행 CEO의 급여가 해당 기업 일반직원 급여 중간값의 몇 배인지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도드-프랭크법을 폐기하고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하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