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어마의 여파로 플로리다의 많은 도시가 물에 잠겼다. <사진 : 블룸버그>
허리케인 어마의 여파로 플로리다의 많은 도시가 물에 잠겼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 10일 오전 7시(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州) 남부 해안에 상륙한 허리케인 ‘어마(Irma)’는 시속 200㎞가 넘는 강풍으로 플로리다주 전체를 휩쓸며 대규모 피해를 냈다.

피해는 전방위적이었다. 플로리다주 당국은 최소 580만가구에 전기 공급이 중단된 것으로 집계했다. 마이애미공항은 시설 피해가 커 일시 폐쇄됐다. 마이애미 도심의 한 건설 현장에선 아파트 지붕이 날아가는 일도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를 ‘중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고, 복구 작업을 위해 연방 비상 원조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어마는 난폭한 허리케인이자 커다란 괴물”이라고 했다. 미국 국립허리케인센터는 어마가 플로리다주 외에도 조지아주를 포함해 앨라배마·테네시·사우스캐롤라이나·노스캐롤라이나 등에 거주하는 4500만명에게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자연재해”

3주 전 텍사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Harvey)’에 이어 어마까지 미국을 강타하면서 경제적 피해 규모가 300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비가 초토화시킨 텍사스주는 주력 산업이던 정유 시설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올랜도 디즈니월드와 마이애미 비치 등 휴양지로 유명한 플로리다도 한동안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하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자연재해라며 피해 규모를 감안해 미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연율 환산 기준)에서 2.0%로 낮췄다. 골드만삭스는 “대형 자연재해는 일시적으로 성장을 둔화시킨다”며 “이를 고려하면 3분기 경제성장률이 최대 1%포인트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기상업체 애큐웨더는 두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액이 2900억달러(약 32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텍사스를 덮친 하비가 끼친 피해액이 미국 재난 역사상 가장 많은 1900억달러에 달하고, 플로리다를 통과한 어마 피해액도 1000억달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큐웨더는 실업률 상승, 교통·인프라 피해, 오렌지 등 작물 피해, 기름 등 연료값 상승, 기업 피해, 주택 피해 등을 추산해 피해액을 산출했다.

CNN머니에 따르면 미국 재난위험 평가업체인 엔키리서치는 하비와 어마 피해액을 각각 900억달러, 1720억달러 총 2620억달러(약 297조원)로 추산했다. 또 다른 업체 RMS는 하비에 따른 피해 규모가 700억~900억달러이며 이 중 보험처리되는 비용은 250억~350억달러 정도로 예상했다.

보통 천재지변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거나 일을 할 수 없고, 기업이 문을 닫으면 국내총생산(GDP)은 감소한다. 다만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은 그 이상의 경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연달아 발생한 허리케인이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고용, 민간 소비, 성장률 등 단기적으로 경제지표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휴업에 들어간 기업의 근로자들은 소득 감소가 불가피하고, 휘발유 가격 상승은 미 전역에 걸쳐 가계 지출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표 악화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허리케인 피해가 본격 시작된 지난 8월 말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신청은 6만2000건이나 늘어난 29만8000건에 달했다. 2015년 4월 18일 이후 최대치다. 주간 상승폭 역시 2012년 1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당국은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를 늘린 주범으로 허리케인 하비를 꼽았다. 9월 들어 신규 실업수당 신청은 28만4000건으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다.


연준, 금리 인상 속도조절 예상

연이은 허리케인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허리케인 피해 복구에 따른 건설경기 호조 등의 효과는 보통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12월로 예정된 금리 결정 회의까지는 경제 지표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과거 성장률에 관한 비관론이 고개를 들 때마다 연준은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섰다. 이번에도 같은 행보를 취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반면 이번 자연 재해가 미국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가 몰고 온 물리적인 피해가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간 지속될 수 있지만, 전반적인 경제 피해는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산설비가 침수나 정전 피해를 입으며 서비스나 제품 생산이 단기적으로 줄고 실업도 증가하겠지만, 도로 보수 등 복구 작업이 탄력을 받으면 GDP 감소분을 상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Plus Point

韓 정유·화학업계 반사이익 기대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최대 정유·화학 단지가 있는 텍사스주 멕시코만 지역을 강타하면서 국내 정유·화학업계가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 제품 공급에 차질이 발생해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이번달 둘째주 기준 에틸렌 평균가격은 t당 1291달러로, 지난 2월 이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틸렌은 플라스틱 용품이나 기저귀 등 생필품부터 자동차까지 각종 산업과 생활 곳곳에 쓰여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텍사스주 내 모든 생산 단지는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틸렌 공급이 줄면서 마진(에틸렌 가격-원재료 가격)은 이번 달 기준 801달러로 한 달 새 37% 급증했다.

삼성증권은 미국의 공급 차질이 국내업체에 유리한 업황을 조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기업의 에틸렌 연간 생산 규모는 롯데케미칼 323만t, LG화학 220만t, 여천NCC 195만t, 한화토탈 109만t, SK종합화학 86만t, 대한유화 80만t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허리케인 피해는 슬픈 일이지만 상대적으로 한국 업체들은 에틸렌 가격이 올라 수익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국내 정유사들도 정제마진 상승의 수혜를 누릴 전망이다.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텍사스에는 엑손모빌의 베이타운, 아람코의 포트아서 등 미국 내 정제설비의 30%가 몰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