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은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여러 벤처기업의 성장을 도왔다. <사진 : 실리콘밸리은행>

커머스닷이노베이티드(Commerce.Innovated)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기업 육성 프로그램 중 하나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금융 결제 분야의 벤처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금융회사인 마스터카드가 선정된 벤처기업의 멘토 역할을 맡는다. 이 프로그램이 특이한 것은 마스터카드와 함께 벤처기업의 멘토 역할을 맡는 금융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육성 프로그램은 보통 액셀러레이터나 벤처캐피털, 정부기관 등이 운영하는데, 이 프로그램은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마스터카드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10년 만에 자산 7배 넘게 늘어

SVB는 실리콘밸리 붐이 태동하던 1982년 설립됐고, 첫 지점은 이듬해인 1983년 문을 열었다. 이후 SVB는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여러 벤처기업의 대모 역할을 했다. 에어비앤비, 우버, 트위터 등 실리콘밸리의 스타 기업들이 모두 SVB의 고객이었다. 2015년에는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미국의 테크·생명과학 분야 벤처기업의 47%가 SVB와 거래한 경험이 있다.

SVB의 주 고객은 상환 능력이 안정적인 제조 분야 대기업이 아니라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벤처기업이다. 보통의 상업은행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벤처기업에 쉽게 대출해주지 않는다. 벤처 대출을 취급하고 있는 은행은 미국 전역의 5000여 개 상업은행 중 5곳에 불과하다. 그중 하나가 SVB다. SVB는 작년 기준으로 71억5000만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벤처 대출 시장의 50~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굵직한 은행들도 주저하는 벤처 대출 시장에서 SVB가 성과를 내고 있는 건 ‘벤처캐피털-벤처기업-은행’으로 이뤄진 3각 협업 관계 덕이다. SVB는 벤처캐피털의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 벤처캐피털에 직접 대출해주는 비율이 전체 대출 거래의 42%에 달할 정도다. 나머지 대출 거래 중 39%는 벤처캐피털이 초기 투자한 벤처기업과 하고 있다. 전체 대출의 80% 이상을 벤처캐피털과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기업에 몰아주고 있다. 벤처캐피털의 기업 분석 능력을 활용해 벤처 대출의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위험 관리를 해도 벤처 대출의 특성상 SVB의 손실률은 높은 편이다. 미국 상업은행의 평균 손실률이 대출액의 1~1.5%인 데 비해 SVB는 7~8%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은행들은 대출 손실에 따른 재정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높이는 선택을 하는데, SVB는 금리를 높이지 않는 대신 대출해주는 벤처기업으로부터 워런트(Warrant)를 취득하고 있다. 워런트는 일정 수의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벤처기업의 지분을 담보로 받아서 손실을 보전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대출해준 벤처기업이 상장하거나 좋은 실적을 내서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M&A)되면 SVB가 보유한 지분 가치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SVB는 작년 기준으로 1739개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분 가치만 1억3100만달러에 달한다.

적극적인 위험 관리와 실리콘밸리 벤처 붐 덕분에 SVB는 견고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미국 상업은행들의 성장이 둔화되는 동안에도 SVB는 꾸준히 성장했다. SVB가 속한 실리콘밸리은행그룹의 자산 규모는 2006년 60억달러 수준에서 2016년에는 450억달러 수준으로 늘었다. 수익성도 좋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미국 상업은행들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마이너스로 내려갔을 때도 실리콘밸리은행그룹은 2.68%를 기록했다. 이후 벤처 붐을 타고 ROE는 지난해 10.9%까지 올랐다.


아시아 벤처 대출 시장도 눈독

도이체방크의 마크 한토 주식자본시장 글로벌 대표는 앞으로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1000개 이상의 IPO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벤처기업의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SVB의 실적에는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은행그룹 주가는 작년 말 주당 171.66달러 수준에서 이달 14일에 229.67달러까지 올랐다. 미국 투자 매체 배런스는 내년에도 주가가 25% 정도 더 오를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SVB는 미국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 전역에 29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SVB는 영국 런던 같은 전통적인 금융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 인도 벵갈루루, 이스라엘 텔아비브 등에도 지점을 내고 있다. 모두 벤처기업 붐이 일고 있는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쌓은 벤처 대출 노하우를 활용해 다른 국가의 벤처 대출 시장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SVB는 중국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중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벤처기업 생태계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SVB는 2005년 중국 베이징에 첫 지점을 열었고, 2012년에는 중국 상하이푸둥발전은행(SPDB)과 합작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이 합작 회사는 테크 분야의 벤처기업에 사업 자금을 대출해주는 역할을 한다. 올해 3월에는 베이징에 두 번째 지점을 열기도 했다.


plus point

“한국 은행들도 SVB 배워야”

한국에서도 SVB 벤처 대출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지난달 열린 ‘제4차 한·영 금융협력포럼’에 참석해 “금융의 무게 중심이 소비자 금융에서 기업 금융으로 옮겨가야 할 때”라면서 “실리콘밸리은행을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원장이 지적한 대로 국내에서는 아직 은행이 벤처기업이나 벤처캐피털에 자금을 대는 벤처 금융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 벤처기업에 들어가는 자금의 3분의 1이 정책자금에서 나올 정도로 정부 의존도가 높다. 이렇게 정부가 직접 벤처기업의 자금 조달을 챙기는 방식은 규모가 한정돼 있고 효율성도 높지 않다.

켄 윌콕스 SVB 전 회장은 “정부 관료들은 고용 지표나 세수, 정책 집행 성과 등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한다”며 “고용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정치적 이유로 별 볼일 없는 기업에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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