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글로벌 채권 발행액은 6조8000억달러(약 7480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사진 : 블룸버그>

세계적인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주요국 중앙은행이 ‘긴축’쪽으로 통화정책의 방향을 돌리고 있지만, 글로벌 채권 발행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해에도 글로벌 채권 발행액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2017년 글로벌 채권 발행액은 6조8000억달러(약 7480조원)로, 6조6200억달러였던 2016년 실적을 경신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딜로직이 집계한 글로벌 채권 발행액에는 각국 정부가 공개입찰을 통해 발행한 국채나 지방채를 제외한 것으로, 기업이 발행한 채권과 미국 모기지 대출기관인 페니매·프레디맥, 유럽투자은행 같은 기구가 발행한 채권, 정부 보증 모기지, 커버드 본드 등이 포함된 것이다.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은 1050억달러를 들여 퀄컴에 대한 적대적 M&A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글로벌 IB, 채권 발행 수수료 급증

이런 추세는 세계 채무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17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수준은 324%로 10년 전인 276%보다 크게 증가했다.

채권 발행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AT&T,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블루칩 기업이다. AT&T는 타임워너 인수를 위해 225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분할 발행했고, 아마존은 유기농 식품 유통업체 홀푸드를 인수하기 위해 160억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기업의 채권 발행액은 전체 물량의 55%를 차지했다. 덕분에 호황을 누린 것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었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JP모건과 시티 등 IB는 2017년 채권 발행 수수료로 300억달러를 벌어들였는데, 이는 2000년대 이후 최대 규모였다.

기업이나 기관이 채권 발행 규모를 늘린다는 것은 그만큼 앞으로 경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경기 회복에 대응해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채권을 발행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앞으로 돈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금리를 세 차례 인상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올해도 세 번 이상 금리를 올릴 계획이다. 보유한 채권을 순차적으로 매각해 자산 규모도 축소할 계획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당장 금리를 인상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시중 채권을 매입하는 양적완화 규모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이 결정이 발표된 이후 채권 가격은 벌써 하락(채권 금리 상승)하고 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최근 2.5%에 근접하며 2017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독일 10년물 금리 역시 2017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가장 큰 수요자였던 중앙은행이 더 이상 채권을 매입하지 않으면 기업이나 기관이 채권 발행을 통해 시중의 자금을 쓰는 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로버트 미셸 JP모건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는 “우리는 그동안 세계 통화 팽창과 자산 가격 상승 시대를 살아왔지만, 2018년은 쉽게 돈을 빌리는 시대가 마무리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M&A 증가하며 채권 발행 더 늘어날 것

주요국 중앙은행이 돈줄 죄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올해도 글로벌 채권 발행액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가 추진한 세제개혁에 따라 대기업의 인수·합병(M&A)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법인세를 기존 35%에서 20%로 낮추고, 해외 이익잉여금에 대한 세율도 14%대로 내렸다. 전문가들은 세금 부담을 덜며 막대한 현금을 쥐게 된 기업들이 공격적인 M&A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이 M&A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약국체인 CVS헬스는 건강보험사 애트나를 69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했고,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은 1050억달러를 들여 퀄컴에 대한 적대적 M&A를 추진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M&A 시장에 심각한 레버리지(차입) 위험이 존재한다”고 경고했고, 골드만삭스 역시 “우리가 예상하는 것처럼 M&A 규모가 더 늘어나면 채권은 더 많이 발행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화정책의 변화가 예고된 가운데서도 채권 발행이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자 신용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성장이 위험에 처한 것일까’라는 제목의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지속적인 통화 축적의 환경은 시장 리스크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아직 적정한 부채 수준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최근의 채권 발행 증가 추세와 이에 대한 대응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채권 발행 규모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환경이 금융시장을 왜곡시켰다며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보다 채권 발행 규모가 큰 것은 심각한 위험 신호라고 주장한다. 클라우디아 보리오 국제결제은행(BIS) 통화정책 대표는 “각국 중앙은행은 세계가 싼 부채에 중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저금리 기조가 더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채권 발행 규모가 아직 위험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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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칩(blue chip) AT&T,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재무상태가 건실하고 경기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대형 우량주를 말하는 주식시장 용어다. 블루칩 기업은 자본금 규모가 크고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양호해 한 나라를 대표하기도 한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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