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는 세계 최대 재보험사 중 하나인 스위스리 지분 20~30%를 매입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왜 이런 딜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2월 7일 소프트뱅크가 스위스의 재보험사인 스위스리(Swiss Re) 지분 매입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금융 전문가들은 혼란에 빠졌다. 스위스 현지 은행인 본토벨(Vontobel)에서 스위스리 분석을 맡고 있는 애널리스트 슈테판 쉬어만(Stefan Schurmann)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소프트뱅크가 무슨 이유로 스위스리 지분 매입에 나서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손 사장은 스위스리 지분 매입을 강행하고 있다. 2월 18일 FT는 협상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소프트뱅크가 스위스리 지분 20~30%를 매입하고 이사회 의석도 확보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우버 운전 기사 700만명… 잠재적 보험 고객

스위스리 시가총액은 18일 기준으로 329억8800만스위스프랑(약 38조원)이다. 30%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프리미엄을 제외한 순수 매입 대금으로만 110억스위스프랑(약 12조6000억원)을 지불해야 한다.

스위스리는 뮌헨리(독일 재보험사)와 함께 글로벌 재보험사 1위 자리를 다투는 세계적인 보험사다. 자산 규모만 1610억달러(약 174조원)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워런 버핏도 보험사업에서 확보한 자금으로 인수·합병(M&A)을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도달했다”며 손 사장이 재보험사 투자를 통해 제2의 버핏을 꿈꾼다고 해석했다.

공유경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소프트뱅크는 우버, 위워크 등 다양한 공유경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공유경제는 많은 수의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자를 기반으로 한다. 우버만 해도 전 세계에서 700만명의 운전 기사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고용보험 등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 않고 있다. 바꿔 말하면 공유경제에 종사하는 수많은 이들이 보험사의 잠재적인 고객이라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유럽사법재판소(ECJ)의 판결은 이런 예상을 현실화하고 있다. ECJ는 우버를 운송 서비스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는데, 이 판결로 인해 우버는 자신들이 유럽에서 고용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한 복지혜택을 제공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운전 기사들에게 고용보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의 경제 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소프트뱅크가 자신들이 투자한 공유경제 기업이 직면할 대규모 보험 수요에 대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프트뱅크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보험 수요가 많은 것도 손 사장이 스위스리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로 보인다. 손 사장은 ‘동북아 수퍼그리드(Super Gri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청정에너지가 많은 러시아와 몽골에서 생산한 전력을 한국과 중국·일본으로 공급하는 전력망을 구축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아시아 전역에 걸쳐서 진행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만큼 각종 자연재해에 대비한 보험 수요도 많을 수밖에 없다.

2016년 스위스리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크리스천 무멘탈러(Christian Mumenthaler)는 스위스리가 금융회사가 아닌 지식기업이 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1863년에 설립된 스위스리는 150여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막대한 양의 보험 관련 정보를 축적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쓸모 있는 빅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데, 스위스리 같은 재보험사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막대한 양의 빅데이터를 확보한 셈이다.


지식기업으로 변신하는 스위스리

스위스리는 지난해 행동경제학과 디지털화를 보험에 접목할 방법을 찾는 연구소를 신설하는 등 지식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손 사장은 평소 기회가 될 때마다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7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월드 2017’ 기조강연에서는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의 기반에 데이터가 있다. 데이터는 산업혁명 시대의 석유 같은 자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소프트뱅크가 스위스리의 방대한 보험 관련 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프트뱅크가 스위스리를 완전 인수하는 게 아니라 일부 지분만 매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협상의 달인으로 불리는 손 사장이 월터 킬홀츠 스위스리 회장과의 만남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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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험(再保險) 쉽게 말해서 보험회사를 위한 보험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불의의 사고로 입게 되는 손실을 보험회사가 보상해주는 걸 보험이라고 하는데, 이때 보험회사의 보상 책임의 일부를 다른 보험회사가 부담하는 것이다.

plus point

손정의 발목 잡는 부채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11월 반기 결산 실적(4~9월)을 발표했다. 미국의 통신 자회사인 스프린트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8748억엔(약 8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전년대비 35%나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순이익은 87% 감소한 1026억엔에 그쳤다. 사상 최대 실적에도 순이익이 감소한 이유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채였다.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소프트뱅크의 유이자 부채(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부채)는 약 15조엔에 이른다. 작년 3분기 소프트뱅크가 이자비용으로 지출한 돈만 4600억엔이 넘었다. 4년 만에 7배나 늘어났다. 일본 상장 기업 전체가 부채 상환에 지출하는 돈의 20% 정도를 소프트뱅크 혼자서 내고 있을 정도다.

소프트뱅크의 부채가 많은 건 손정의 사장의 경영 전략 때문이다. 손 사장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일본 국내외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2013년 스프린트를 인수한 이후 작년 7월까지 11조6000억엔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추가로 1조5000억엔의 회사채 발행 계획도 가지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소프트뱅크에 각각 Ba1, BB+의 신용등급을 매겼다. BNP파리바의 마나 나카조라 애널리스트는 “미국이 통화 긴축을 시작하는 만큼 소프트뱅크가 채권단을 감안해 유이자 부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위스리 지분 매입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재보험사인 스위스리는 현금 창출 능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소프트뱅크의 재무제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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