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움직임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비트코인은 암호화폐계의 냅스터(Napster·음원 공유 프로그램)가 될 수 있다.”

지난 14일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 최고경영자(CEO)는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비트코인이나 리플 같은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갈링하우스 CEO는 암호화폐의 원조인 비트코인을 냅스터에 비유했다. 냅스터는 디지털 음원 공유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지만, 정부 규제와 법을 무시하다 결국 몰락했다. 그 뒤에 등장한 스포티파이나 아이튠즈 같은 음원 공유 서비스는 정부 규제와 이용자 편의를 잘 조율해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갈링하우스 CEO의 생각대로라면 지금 암호화폐 시장은 냅스터와 스포티파이의 중간 어디쯤 와 있다는 이야기다. 암호화폐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본격화된 규제… 암호화폐 가격 주춤

작년말 2만달러를 위협하던 비트코인 가격은 연초 급락하며 800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작년말부터 각국 정부가 규제 정책을 쏟아낸 탓이다. 올해도 각국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1만달러를 넘어서 회복세를 보이던 이달 초에는 미국과 일본 정부가 나섰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7일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 전역의 암호화폐 거래소를 감독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거래소(exchanges)’라는 이름을 달고 영업을 하던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들은 SEC 등록이 의무화됐다.

일본 금융당국도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 8일 암호화폐 거래소인 비트스테이션과 FSHO 등 두 곳에 대해 1개월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이들 거래소가 고객 자산을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영업정지라는 강도 높은 처분을 내린 것이다.

한국에서도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7월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안’을 논의 안건에 상정했다. 박 의원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와 규율체계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는 각국 정부 차원에서 암호화폐 규제 방안을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세계적인 공조 체계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주도로 암호화폐 제도화 및 규제 방안이 논의됐기 때문이다.


IT 기업 자금 조달 창구로 자리매김

암호화 메신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텔레그램은 지난달 1차 ICO(암호화폐공개·Initial Coin Offering)를 통해 8억5000만달러의 자금을 모았다. 텔레그램은 자체 암호화폐인 그램(Gram)코인을 출시하기 위한 ICO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진행한 1차 ICO에 이어 이달 중에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2차 ICO를 진행할 예정이다. 텔레그램은 두 차례 ICO를 통해 20억달러(약 2조1000억원)의 자금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ICO는 기업이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를 발행한 뒤 투자자에게 판매해 자금을 모으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을 발행해서 자금을 모으는 IPO와 기본적인 원리는 비슷하다. 대신 ICO는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이 없고, 금융당국의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암호화폐 시장 초기에 진행된 ICO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 부족이었다.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이 대부분 신생 업체다 보니 이들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도 믿을 수 없다는 시각이 많았다.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진행된 ICO의 절반 정도가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텔레그램처럼 비교적 안정적인 기업이 진행하는 ICO를 암호화폐 시장 초기 ICO와 구분해서 리버스 ICO(Reverse ICO)로 부른다. ICO를 통해 조달한 돈으로 플랫폼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플랫폼을 가진 업체가 ICO를 통해 자금을 모은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는 블록체인 사업을 위해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카카오가 조만간 리버스 ICO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도 마찬가지다.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확실한 쓰임새가 있는 암호화폐는 단기적인 시세 변동과 무관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갈링하우스 CEO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암호화폐 시장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plus point

한국 찾은 암호화폐 거물들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 CEO. <사진 : 리플>

지난주 한국 암호화폐 업계는 여러 행사들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암호화폐 업계의 거물들이 잇따라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13일에는 이더리움 설립자인 찰스 호스킨스가 블록체인 지식 공유 콘퍼런스 ‘캠업(CAMUP)’에 강연자로 참석했고, 14일에는 리플의 최고경영자(CEO)인 브래드 갈링하우스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더리움과 리플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암호화폐 2위, 3위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암호화폐 업계의 거물들이 한국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그만큼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이 크다는 의미다. 암호화폐 정보업체인 코인힐스에 따르면, 15일 기준으로 각국 통화별 비트코인 거래량에서 한국의 ‘원화’는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엔화(53.38%), 미국 달러화(28.85%)에 이어 원화가 8.81%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순위에서도 한국의 업비트가 전체 거래량의 6.11%를 차지하며 전 세계 6위에 올라 있다. 한국 암호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높게 형성되는 ‘김치프리미엄’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암호화폐 시장에서 한국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갈링하우스 CEO는 “리플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도 한국 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앞으로도 암호화폐 시장에서 한국이 리더 자리를 지켜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