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정부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3.0%에서 2.9%로 하향 조정했다. 사진은 7월 16일 조찬회동을 가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한국은행과 정부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3.0%에서 2.9%로 하향 조정했다. 사진은 7월 16일 조찬회동을 가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3.1% 성장률을 기록하며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던 한국 경제가 불과 1년 만에 2%대로 다시 추락할 전망이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각각 7월 12일과 17일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9%로 낮춰잡았다. 민간 연구기관 등이 줄기차게 ‘한국 경제가 위태롭다’고 지적해도 낙관론을 펼쳤던 이들이 사실상 한국 경제가 하강 국면에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3.0%와 2.9%의 차이는 0.1%포인트 차이에 불과해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며 “경기 흐름이 예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은행과 정부가 경기 침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배경은 무엇일까. 


1│미·중 무역전쟁 격화

최근 들어 본격화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양국에 대한 한국 경제 의존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4.8%(홍콩 포함 시 31.6%)로 가장 높은 국가고, 미국은 11.9%로 중국 다음으로 높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 서로 수입 제품에 관세를 매기는 전쟁인 만큼 한국이 소비재 형태로 양국에 수출하는 제품은 이번 무역 제재와 무관하다. 그러나 문제는 중간재(부품) 수출이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부품을 수출하면 중국에 있는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 다시 미국 등으로 수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 중국 제조업이 타격을 입으면 한국 중간재 수출 산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는 미국과 중국이 전면전을 벌이면 한국의 피해액은 367억달러(약 41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현재진행형이라 이번 경제 전망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앞으로 전개 방향에 따라 경제 성장률이 더욱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주요국 간의 무역전쟁이 처음에는 확산되지 않을 것으로 봤는데 지금은 나날이 확대되고 있고 향방을 가늠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두 나라의 보복관세 부과 등) 조치들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우리 경제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 나아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성장률이 더욱 하락할 가능성까지 열어놨다. 그는 “미·중 마찰이 심화되고 국제 무역환경과 국제 금융환경이 아주 나빠질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할 수도 있다는) 가정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보지만, 나쁜 시나리오가 되면 경제 전망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설비·건설 투자 감소

지난해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기업들의 투자가 올해는 부진하다는 점도 성장률을 끌어내린 요인이다. 이전까지 한국은행은 올해 설비 투자가 2.9%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이번에 1.2%로 대폭 낮췄다. 정부 역시 설비 투자 전망치를 3.3%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건설 투자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각각 -0.5%, -0.1%로 건설 투자 전망치를 내려잡았다.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지난해 설비 투자는 14.6%, 건설 투자는 7.6% 증가하는 등 투자가 전체 경제 성장에 80% 이상 기여했다”며 “올해도 투자가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해엔 미치지 못하는 성장세가 나타나고 있는 데다, 앞으로 투자가 확대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해 국내 전체 경기의 하향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설비 투자가 둔화된 요인은 미·중 무역전쟁과도 연관이 있다. 양국의 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불확실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것이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설비 투자가 크게 증가한 것은 (기업들이) 올해를 포함한 향후 생산량을 예측하고 설비 투자를 진행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한국 경제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난해 투자했던 설비가 필요 없어졌고, 이에 따라 기존 설비 투자에 조정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이미 증설한 설비는 가동률을 낮추고 지난해 계획해둔 투자는 규모를 줄이거나 연기하는 것이다.

건설 투자 하락세는 아파트 포화상태와 맞물려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2016년 대량의 아파트가 착공됐는데, 이 아파트들이 완공돼 올해부터 분양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즉 신규 공급량이 충분하다 보니 건설사가 아파트를 더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실제 지난 1~5월 주택 준공 실적은 24만5000가구로, 주택 착공(19만7000가구)을 초과했다. 오지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015년 착공 물량이 많아 공급과잉이 우려될 정도였다”며 현 상황이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건설 투자의 둔화세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점은 문제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보유세 강화 등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고 있어 부동산 시장 심리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수도권 등 일부 지역의 미분양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하방 리스크로 꼽힌다. 


3│고용 쇼크

올해 취업자 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한국 경제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올해 취업자 수 증가폭을 각각 30만 명, 32만 명으로 잡았다가 18만 명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18만 명 증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09년 신규 취업자는 8만7000명 줄었는데, 이후 취업자 증가폭은 최저 23만1000명에서 최고 59만8000명 범위에서 움직였다. 지난해에는 31만6000명이 신규 취업했다.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 11조원 추가경정예산, 올해 19조2000억원 본예산, 3조원 일자리안정자금, 상반기 3조9000억원 청년일자리 추경 등 총 37조1000억원을 일자리 분야에 쏟아부었지만 일자리 창출에 별 효과를 내지 못한 셈이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는 기업과 노동자가 창출하는 가치를 통해 돌아가는만큼, 고용 쇼크가 발생했다는 것은 기본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부가 파괴됐다는 것”이라며 우려했다. 

한은과 정부는 고용 쇼크가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 감소 등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주열 총재는 “국내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향상 속도 등을 고려할 때 국내 고용 사정이 예년과 같은 30만 명 내외의 취업자 수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며 “최근의 고용 상황은 일부 업종이 부진한 영향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구조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생산가능인구가 6만1000명 감소했다. 

앞으로 고용 시장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 고용 확대와는 거리 먼 노동 정책들이 잇따라 실시된 영향이다. 이승석 부연구위원은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이 고용인구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정책은 고용 시장 심리가 경직되는 데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