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중심부에 위치한 도이체방크 옛 본사. 사진 블룸버그
프랑크푸르트 중심부에 위치한 도이체방크 옛 본사. 사진 블룸버그

150년의 역사를 지닌 독일 도이체방크는 한때 전 세계 업계 1위인 JP모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은행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끝없이 추락해 현재 도이체방크의 시가총액은 JP모건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지난 4년간 적자규모는 85억유로(약 11조원)에 달한다.

보다 못한 독일 연방재무부는 ‘독일 경제와 산업을 견인할 수 있을 만한 은행’이 필요하다며 압박을 가했다. 정부 주도로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 합병 논의가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올해 3월 초 공식적으로 시작된 독일 1위 은행 도이체방크와 2위 은행 코메르츠방크의 합병 논의는 그러나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무산됐다.

인력 감원을 우려한 노조의 반발, 추가 자본확충을 우려한 주주들의 반대 등 이유에서다. 4월 25일 크리스티안 세빙 도이체방크 CEO가 합병 결렬을 알리자, 독일 언론은 도이체방크가 혼자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려했던 독일 최대 은행이 몰락하게 된 이유를 짚어봤다.


1│투자은행(IB) 부문에 과도한 집중

1980년대 영국의 금융빅뱅으로부터 세계적인 금융자유화 물결이 시작됐다. 알프레드 헤르하우젠 도이체방크 전 CEO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영미권의 금융 문화”라며 해외 IB 사업 확장 의지를 불태웠다. 미국 월가 대형 투자은행을 넘겠다는 야심이었다. 1989년 도이체방크는 IB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영국 투자은행 모건 그렌펠을 인수했다.

그리고 3일 뒤 헤르하우젠은 극좌파 테러집단에 의해 살해됐지만 그 후 그의 의지는 꾸준히 이어져 도이체방크는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변해갔다. 1999년 도이체방크가 월가의 뱅커스 트러스트를 인수하자 염원하던 시대가 열렸다. 도이체방크 내 모든 IB 부문이 하나로 통합됐고, 전 직원 10만 명 중 절반가량이 해외에서 근무하게 됐다. 동시에 개인·기업 금융을 담당하는 상업은행(CB) 부문을 축소해나갔다.

그러나 금융위기 후 상황이 역전됐다. 금융시스템 붕괴를 가져온 고위험 IB 부문에 대한 각국 금융당국의 경계와 규제가 시작된 것이다. 도이체방크는 무리한 해외 확장, CB와 IB가 분리되지 않는 유럽식 유니버설 뱅크 특성 때문에 내부 문화 갈등이 깊어진 상태였다.

이는 급변하는 금융 업계 상황에 대응할 때 지체요인으로 작용했다. 도이체방크는 뒤늦게 역외 IB 부문을 축소하고 역내 CB 부문을 확대하는 ‘수익 안정성 확보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지만, 이미 타격을 받은 뒤였다.

지난 몇 년간 도이체방크 IB 부문은 많이 축소됐지만, 여전히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다 매출을 넘어서는 비용 압박을 가하고 있다. 투자 부문 매출은 13% 감소한 33억유로였는데 투자 부문 비용은 34억유로에 달했다. 도이체방크 전체의 수익성도 경쟁사보다 떨어진다. 올해 도이체방크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7% 늘었지만 2억1000만유로에 불과하다.


헤르하우젠 도이체방크 전 CEO는 글로벌 도이체방크를 탄생시킨 금융 업계 ‘전설’이다. 그가 사망한 다음 날 1만 명이 프랑크푸르트 거리에서 추모 행진을 벌였다. 사진 도이체방크
헤르하우젠 도이체방크 전 CEO는 글로벌 도이체방크를 탄생시킨 금융 업계 ‘전설’이다. 그가 사망한 다음 날 1만 명이 프랑크푸르트 거리에서 추모 행진을 벌였다. 사진 도이체방크

2│스캔들로 인한 신뢰 하락

금융전문가와 투자자들만 도이체방크의 도약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도이체방크가 합병 이후 우량기업으로 변모할 가능성에 대해 일반 시민도 반신반의했다. 3월 초 독일 시민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슈피겔 설문조사 결과,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 합병에 대해 50% 반대, 25% 무응답, 25%가 찬성이었다.

올라프 숄츠(Olaf Scholz) 독일 재무부장관이 구상한 ‘독일의 챔피언 은행’이 시민의 공감을 크게 얻지 못한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금융기관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신뢰’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2013년 도이체방크는 미국 부동산 거품이 절정이던 2005~2007년 주택저당증권(MBS) 판매 시 공시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14억유로(약 1조80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부실 주택저당증권은 2008년 금융위기 발발의 주요 원인이었다.

2015년에는 ‘2012년 리보금리 조작사건’ 등으로 25억달러(약 2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2017년 MBS 불완전 판매 혐의에 대해서는 요구액의 절반인 72억달러(약 8조7000억원)를 내기로 합의했다. 미국 법무부가 요구한 140억달러는 미국이 요구한 과징금 중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같은 해 러시아 부호의 자금세탁을 방조한 혐의로 미국과 영국 금융당국으로부터 6억3000달러(약 74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또 사상 최대 자금세탁 스캔들이라 불리는 덴마크 단스케 은행 스캔들에 연루됐다. 작년 가을 독일 금융감독당국 바핀(BaFin)은 해당 스캔들과 관련하여 도이체방크가 내부적으로 실시하는 조사에 대한 특별감사를 시작했다.


3│자본확충 실패

위기에 내몰린 도이체방크에 중요한 것은 자본금 확충이었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9년 동안 세 번의 자본확충을 꾀해 총 270억유로(약 35조원) 정도를 모았다.

그러나 2017년 5월 9.9%의 지분율로 도이체방크 최대 주주가 된 하이난항공(HNA)의 자본금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공격적인 기업사냥 전략을 펼치던 HNA는 해외 차입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해외 자회사의 현금을 활용하거나, 해외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의 투자자는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 주식을 되팔 확률이 높다.

HNA 역시 과잉투자로 중국 정부의 단속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그리고 유동성 위기가 오자 부채 축소를 위해 지분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보호무역의 흐름까지 가세해 중국 정부는 HNA에 해외 자산 매각을 강력히 주문했다. 결국 중국 대주주는 1년 만에 보유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매각하며 도이체방크 실적 악화에 기여했다. 도이체방크의 취약한 재무기반에 대주주의 주식 매각까지 현실화하면서 자본확충은 계속해서 멀어져만 갔다.


이제 도이체방크에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다. 끊임없이 주가가 하락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다른 은행과 합병을 시도하더라도 인수가격 산정 시 불리해진다. 몸값을 먼저 올려야 하지만 앞에 언급한 이유들로 쉽지 않다. 코메르츠방크와의 합병 논의가 2016년에도 또 올해도 있었지만, 논의가 결국 무산된 것은 이런 원인이 크게 작용했다.

유로존 내 은행동맹(banking union) 강화를 원하는 유럽중앙은행(ECB)과 바핀은 도이체방크와 다른 EU 국가 내 은행의 합병을 지지하고 있다. 또 최근 도이체방크의 자산운용사 DWS와 스위스 UBS의 부분 합병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엇보다 IB 부문의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과 같은 자체적인 구조조정이 급선무로 보인다. 도이체방크의 위기가 금융시스템에 전이되는 것에 대비해 부실자산을 따로 모아 처리하기 위한 ‘배드 뱅크(bad bank)’ 설립에 대한 내부 논의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예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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