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이날 오후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6원 오른 1187.8원으로 마감했다. 사진 연합뉴스
10월 16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이날 오후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6원 오른 1187.8원으로 마감했다. 사진 연합뉴스

내년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환율은 서로 다른 통화의 교환 비율로, 한 나라의 통화 가치를 다른 나라 통화로 표시하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1달러를 사기 위해 더 많은 원화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달러화 가치는 올라가고 원화 가치는 내려가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9월 27일 발표한 ‘2020년 국내외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평균 원·달러 환율이 1220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올해 평균 원·달러 환율 1175원(1~9월 말 기준)보다 45원(3.8%) 오른 수준이다. 지난해 평균 원·달러 환율(1100원)보다는 120원(10.9%)이 높다. 앞서 8월 29일 프랑스 최대 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SG)은 내년 평균 원·달러 환율을 LG경제연구원보다 높은 1250원으로 전망했다.

원·달러 환율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연평균 1200원 이하를 유지하지만 IMF 외환위기(1997년 1695.0원, 1998년 1204.0원),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1259.5원), 박근혜 정부 탄핵(2016년 1207.7원) 등 국내외 정세와 경제 상황이 불안할 때는 어김없이 1200원을 넘었다. 원·달러 환율이 이렇게 계속 상승하면, 달러화로 바꿨을 때의 수익률 하락을 염려해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해 떠날 가능성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원·달러 환율이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경제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간다는 의미”라며 “1달러당 1200원까지 환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정부는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1│1100원→1175원→1220원, 끝 모를 원화 가치 하락

LG경제연구원은 내년 평균 원·달러 환율이 1220원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8년 평균인 1100원보다 120원(10.9%) 상승한 수준이다.

LG경제연구원은 “과거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었던 것은 주로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카드 사태 등 국내외 경제가 불안했을 때였다”며 “그러나 현재는 특별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심순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금 세계 경제 침체 우려가 확산하고 있어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늘고 내년에도 이런 경향이 계속될 것 같다”며 “이런 현상이 원·달러 환율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사려는 수요가 많아지면 국내에 있는 달러화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개인 달러예금 잔액은 지난 8월 131억8000만달러(약 15조6800억원)를 기록해 지난해 3월 말(132억6000만달러·약 15조7000억원) 이후 17개월 만에 최고 수준까지 올라갔다.

원화로 달러화를 사서 은행에 맡긴 돈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앞으로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올라 환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달러화를 사들이는 것으로 분석한다.

오석태 한국SG 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내년에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것으로 전망되고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올해보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커 원·달러 환율은 올해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미·중 무역전쟁,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수도

원화 가치가 내년에도 계속 하락할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는 미·중 무역전쟁이 더욱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화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이 앞으로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렇게 되면 원·달러 환율은 크게 상승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재무부는 지난 8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중국이 자국 수출 기업들을 위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1994년 이후 25년 만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 제한과 중국 기업의 미국 금융 시장 진입 금지 등의 제재를 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에서 해제할 가능성도 있지만, 양국이 환율 수준을 놓고 계속 갈등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중국에 경제 제재와 환율 압박을 가하면 중국 경제는 극도로 불안해지고 이에 영향받는 원화 가치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국내 수출의 25% 정도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중국 경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원화인데, 지금 중국 경제 위기설이 계속 나오고 있어 원화 가치가 극도로 불안한 상태로 가고 있다”고 했다.

최제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트럼프와 시진핑은 무역 갈등 악화보다는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협상이 장기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며 “당분간 원·달러 환율은 미·중 무역전쟁 향방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3│수출 감소도 환율에 직격탄

미·중 무역전쟁뿐 아니라 국내 기업의 수출량이 줄어드는 것도 원·달러 환율 상승의 원인이다. 기업의 수출이 줄면 국내로 들어오는 달러화가 줄고, 이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9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같은 달보다 31.6%나 줄었다. 미국과 중국의 싸움에 끼인 상태에서 국내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흔들리는 것이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한국 경제가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기초체력이 좋았고, 이 때문에 다른 신흥국들보다 환율 변동 폭이 상당히 작았다”면서 “이제는 수출 축소 등으로 기초체력이 약화하면서 미·중 무역전쟁 등 외부 문제가 발생하면 환율이 큰 폭으로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했다.


plus point

환율 10% 오르면 기업 영업이익률 0.5%↑

환율이 상승하면 외국인 투자 자금 이탈 등 부정적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 효과도 있다. 환율 상승에 따른 대표적인 긍정적 효과는 수출 기업의 실적 개선이다. 1000원짜리 제품을 1달러에 팔다가 1200원짜리 제품을 1달러에 파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국내 수출 기업이 파는 제품을 달러화로 환산했을 때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일본 정부가 인위적인 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로 엔화 약세를 유도한 것도 자국 수출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국내 매출 1000대 기업 조사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 올라가면 기업 영업이익률은 0.5%포인트, 수출은 1%포인트 증가한다. 자본시장연구원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평균 원·달러 환율이 매년 1.6%씩 올랐는데, 수출량이 5.2%씩 증가했다.

허인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화 약세가 국내 수출 기업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하다. 특히 중국이 위안화를 인위적으로 약세로 가져가지 않겠다고 미국에 이야기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위안화는 강세인 상황에서 원화가 약세로 가면 국내 기업들이 받을 이익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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