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전봇대에 붙은 불법 대출 전단. 사진 조선일보 DB
서울 시내 한 전봇대에 붙은 불법 대출 전단. 사진 조선일보 DB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법정 최고이자율을 현재의 연 24%에서 연 10%까지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신용 서민의 빚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현실성이 크게 떨어지는 데다 자칫 제도권 금융사들이 서민의 대출 수요를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사상 최저 수준의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법정 최고이자율을 낮춰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일부 동의하지만, 급격한 인하 시 정책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이 제도권 금융에서 불법 사금융(암시장)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의미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 10명은 8월 9일 법정 최고이자율을 현재의 연 24%에서 14%포인트 인하한 연 10%로 낮추는 내용의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하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하 이자제한법)’을 발의했다. 이틀 전인 8월 7일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에는 법정 최고금리가 각각 연 25%, 연 27.9% 이내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대통령령에서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를 넘지 못하게 돼 있어 금융사는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한다. 문 의원은 이를 연 10%까지 내린 후,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이런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최근 여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163명에게 서한을 보내 대부 업체의 법정 최고금리를 연 10%로 낮춰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지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을 통해 “한국은행 기준금리 연 0.5%의 저금리·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현재, 연 24%의 법정 최고이자율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런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작은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신용등급 7~10등급에 해당하는 저신용자의 평균 대출 금리가 연 10~24%인 탓이다. 제2 금융권 저신용자 평균 대출 금리는 연 20~24%다. 신용등급은 가장 높은 게 1등급이며 가장 낮은 게 10등급이다.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대출 금리가 높다. 제2 금융권 대출 금리는 저축은행, 대부 업체를 비롯해 카드 및 캐피털 업계에도 해당한다.

일례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용등급 7~10등급 소비자가 카드 업체에 장기대출(카드론)을 신청하면 연 14~19%의 금리를, 캐피털 업체에 대출을 신청하면 연 14.2~23%의 금리를 내야 한다. 저축은행의 평균 신규 취급 대출 금리 역시 지난해 말 기준 연 18% 수준에 달한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서민의 급전 창구를 틀어막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저신용 서민이 주로 찾는 저축은행이나 신용카드사는 은행과 견줘 자금 조달 비용이 많이 든다. 리스크가 적은 담보 대출을 중심으로 자본을 조달하는 제1 금융권인 시중은행과는 사업 구조가 다른 탓이다. 특히 고객 상당수는 아예 담보가 없거나 다중 채무자인 경우가 많아 고금리를 택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이자 상한선을 확 내리면 업체는 역마진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체로서는 대출을 해줘 봐야 남는 게 없으니 고신용자 위주로 대출을 집중하거나 아예 대출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사례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지난 2018년 2월 법정 최고이자율이 연 29.9%에서 연 24%로 5.4%포인트 낮아진 후 대부 업계 1위를 지켜왔던 산와머니와 4위 조이크레딧이 바로 영업을 중단한 바 있다. 저축은행이나 카드사에서조차 대출이 불가능한 저신용자는 주로 대부 업체를 이용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법 사금융 대출 금리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한국대부금융협회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은 무려 평균 연 145%의 이자를 부담했다. 그리고 이는 정부의 보호 범위 밖으로, 불어나는 빚더미에 신음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2000만 명 암시장으로 몰릴 것”

전문가들은 초저금리 시대에 맞춰 저소득층의 이자 부담을 낮추자는 방향성에는 일부 공감하면서도, 시장에서 결정돼야 하는 금리를 이처럼 과도하게 급격히 낮추는 것은 정책 당국자들이 경계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서민금융 전문가는 “서민 포용 정책이 아닌 서민을 제도권에서 밀어내는 서민 배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현재는 초저금리 기조가 맞지만, 언제든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금리가 다시 오를 수 있다”라며 “현 금리가 낮다고 법정 최고이자율을 급히 낮추는 건 문제의 소지가 크다”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대략 2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불법 사금융으로 몰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고이자율을 연 10%로 낮추면 전체 금융권에서 신용등급 4등급 이하는 돈을 빌릴 수 없는 것으로 추산됐다”라며 “이는 약 2000만 명에 해당하는데 결국 저신용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 효과가 완전히 반대로 나타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서 서민금융을 주로 담당했던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도 “일부 정치권의 주장과 달리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낮아지는 것과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금리를 직접 연관시키기 어렵다”라며 “금융사 대출 원가에는 조달 금리에 더해 판매 관리비, 부실에 대비하는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조 원장은 저축은행의 사례를 들어 최고이자율 인하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서민금융연구원 분석 결과, 현재 저축은행 신용대출 잔액은 약 16조원인데 이 중 연 10% 이하의 이자를 내는 고객은 2.2% 수준에 불과하다. 연 10%로 최고이자율을 낮추면 97.8%는 대출길이 막히는 것이다.

대부 업체의 경우에는 신용등급 7등급 이하 거래자 기준, 최고이자율을 연 20%로 낮출 때 서민이 얻는 이득은 11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불법 사채 시장으로 몰리는 위험 노출 금액은 2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조 원장은 “정책 효과에 견줘 부작용이 수십 배에 달하는 셈”이라며 “돈을 빌릴 여건이 되는 고신용자에게만 유리하기 때문에 정책 효과를 달성하기는커녕 당장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암시장으로 몰아낼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도 “금융권 이자율 조정은 사실 금융위원회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부분인데, 정치권에서 법으로 일괄 강제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