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겨울방학 이후 방학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네요.”
1월 10일 찾은 이화여대(이대) 정문 앞에서는 영업 중인 상가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빈 상가가 많았다. 이대 정문에서 신촌 기차역 방면 1층 상가 총 43개 중 영업 중인 상가는 32.6% 수준인 14개뿐이었다. 나머지 29개 상가는 문 앞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은 채로 방치돼 있었다.
대면 수업에도 학생 발길 ‘뚝’
코로나19 시대를 맞은 지 3년이 된 가운데, 서울의 대표적인 대학가 상권 중 하나인 이대 상권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실률이 0%까지 낮아지는 등 활기가 돌기 시작한 다른 서울 주요 상권과 달리 이대 등 대학가 공실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5년 전부터 이대 정문 인근에서 액세서리 전문 숍을 운영하는 A씨는 “이전보다 지나다니는 학생도 늘었고, 동남아시아 등에서 온 관광객도 하루에 두세 팀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도 “매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년 말 가게 문을 닫을 생각이었는데 건물주가 임대료를 깎아주며 남아달라고 해 일단 버티는 중”이라고 말했다.
2017년부터 컵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B씨는 “대면 수업이 시작된다고 해서 코로나19 이전 대비 70~80% 수준 감소한 매출이 최소 절반은 회복될 줄 알았다”면서 “대면 수업 이전과 비교해 미세하게 매출이 늘었지만, 여전히 이익이 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부터 방학이 3년 넘게 이어지는 것만 같다”고 했다.
좀처럼 상권이 살아나지 않자 이대 명물 분식집도 폐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 1997년부터 이대 앞 좁은 골목에서 샌드위치, 떡볶이 등을 팔아온 ‘빵 사이에 낀 과일’은 오는 5월 폐업할 예정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방문객이 크게 준 데다 식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수익성이 더욱 악화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신촌·이대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9.0%로 서울 평균(6.2%)보다 높은 상황이다. 숙명여대(10.5%), 서울대 입구(6.1%) 등 다른 대학가도 비대면 수업 기간인 지난해 1분기 대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상권의 회복 속도와 비교하면 이대를 비롯한 대학가 상권의 침체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1분기만 해도 12.7%에 달했던 광화문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들어 0%로 떨어졌다. 압구정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도 작년 1분기 17.1%에서 작년 4분기 0%로 급격히 줄어들었고, 지난해 20% 이상 치솟았던 이대 인근 당산역의 공실률도 작년 말 1.7%로 안정화됐다.
학생 떠나자 ‘오피스텔’이 점령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대 상권은 의류 매장과 유명 미용실, 맛집 등이 즐비해 서울 강북 지역의 대표 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화장품 매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주요 고객층을 대학생에서 해외 관광객으로 바꿨다. ‘제2의 명동’으로 불릴 만큼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이대 상권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더구나 코로나19로 대다수 대학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대 상권을 지탱하던 학생들마저 사라졌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단계적 일상 회복)’가 본격화한 작년 2학기부터 대학들이 전면 대면 수업을 재개했지만, 학생들은 황폐화된 이대 상권을 외면했다.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자 계약 기간이 끝난 가게들은 너도나도 폐업했다.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집을 운영하는 C씨는 “코로나19로 상권이 침체하자 기존 건물을 부순 자리에 오피스텔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면서 “좁은 골목은 물론 이대역에서 이대 정문, 이대 정문에서 신촌 기차역으로 향하는 메인 골목까지 오피스텔 신축 공사 중인 데가 많아 학생들이 안전을 위해 강의가 끝난 후 바로 집에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대 앞 오피스텔에 거주 중인 김모(28)씨도 “재작년부터 화장품 가게, 옷가게 등이 있던 건물이 사라지고 오피스텔이 줄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면서 “골목마다 오피스텔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대 상권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맛집, 옷가게, 소품숍 등은 줄어들고 코인세탁방 등만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손님을 이끌 콘텐츠를 새로 발굴하지 않는 이상 이대 상권의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대 상권만의 특색이 있어야 고객층을 이대 학생뿐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있던 낡은 공장 골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인테리어를 바꿔 유명해진 성수동이나 을지로가 대표적이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소장은 “학생들의 수요에만 의존하는 상권은 한계가 있을뿐더러 지속될 수 없다”면서 “코로나19 시국에도 손님이 몰렸던 상권이 각각의 특성이 있는 것처럼 그 상권만의 콘텐츠를 갖고 있어야 꾸준히 수요가 유입될 수 있다”고 했다.
임대료, 매매 가격도 줄줄이 ‘뚝’
공실이 늘어나면서 임대료도 내려가는 추세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이대역~이대 정문과 이대 정문~신촌 기차역의 1층 소규모 상가 임대료는 전용 16.2㎡(5평) 기준 200만~250만원이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350만원까지 했다.
실제 2021년 1분기만 해도 1㎡당 5만2800원이었던 신촌·이대 소규모 상가 임대료는 2022년 4분기 4만7400원까지 떨어졌다. 표본의 변화가 있더라도 인근 홍대·합정 임대료가 같은 기간 5만4800원에서 5만6500원으로 오히려 상승한 것과 대조적이다.
상가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매매 가격도 하락세다. 토지·건물 빅데이터 플랫폼 밸류맵에 따르면, 이대 인근 전용 14.04㎡인 1층 상가는 지난해 3월 5억2000만원에 매매됐다. 2021년 10월 같은 층 같은 면적 상가가 5억50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5.5% 정도 낮아진 금액이다.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을 지나면서 공실이 많아져 임대료가 코로나19 직전 대비 평균 30% 가까이 떨어졌다”면서 “최근 들어 골목을 중심으로 소규모 상점들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