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까 두렵다고?… “투자정책, 문서로 정리해 놓아라”

주가 급등락에도 꿈쩍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대로 오랫동안 투자할 자신이 있는가? 아마도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시장 상황에 따른 성급한 결정으로 한번쯤 후회한 적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예로 2007년 말 주가가 하락하자 많은 투자자들이 적립식 투자를 중단했다. 이 때문에 2009년 주가 반등에 따른 수익률 회복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차라리 계속 투자했더라면 원금 회복뿐만 아니라 양호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원래부터 인간의 심리는 투자 성공보다 실패에 더 적합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러 인지심리학적 실험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정보 및 예측력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지나치게 자주 펀드를 사거나 판다. 또 이익보다는 손실에 대해 더 민감해 조금만 손실이 나도 손을 빼는 특성이 있다.

미국 예일 대학 투자위원회 위원장인 찰스 엘리스(Charles D. Ellis)는 이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장기적인 투자정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찰스 엘리스는 연간 22조원 규모의 예일 대학 기금을 운용하며 최근 10여 년간 연 18%의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는 또한 전 세계 주요 기관들이 조언을 구하는 세계적인 투자 컨설팅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패닉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해독제는 ‘정책’”이라며 “칼날 같이 변하는 단기 지표와 불안심리의 난폭한 공격에서 장기 정책을 지켜내는 가장 좋은 방패는 정책을 문서로 차분하게 작성하면서 지식과 이해를 얻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투자를 실행하기에 앞서 문서로 투자정책을 명확하게 정리해 놓으면 시장 상황에 휘둘릴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패자 게임’ 이론으로도 유명

그렇다면 투자정책은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엘리스는 “투자정책의 유용성은 투자의 목적과 지침이 얼마나 명료하고 엄밀하게 기술돼 있으며 또 얼마나 일관성 있게 현실에 적용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엘리스가 말하는 중요 정책분야는 △감수해야 할 시장 위험 수준 △시장 변화에 따라 위험 수준을 변경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개별 종목 및 종목군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 피할 것인가. 위험을 감수한다면 포트폴리오상에서 가능한 추가 수익률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가 등이다.

투자정책에 대한 엘리스의 조언을 개인의 펀드투자에 적용한다면 아마도 이럴 것 같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펀드의 비중 △시장 변화에 따라 주식 펀드의 비중을 변경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특정 스타일·섹터 펀드, 액티브 펀드 등에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인덱스 펀드에 투자할 것인가?’

찰스 엘리스는 혁신적 투자이론인 ‘패자 게임(Loser’s game)’ 이론으로도 유명하다. 엘리스는 투자관리가 패자의 게임으로 전개돼 왔다고 지적했다. 패자 게임이란 테니스 경기에서 유래된 개념인데 아마추어 선수들 간의 시합에서 볼 수 있는 특성이 있다. 프로선수들은 정확하고 힘차게 공을 주고받으며 훌륭한 게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마추어의 시합은 완전히 다르다. 멋지게 공을 쳐 넘기는 일은 드물며 어느 한쪽의 승리는 상대편 선수가 점수를 많이 잃은 결과인 경우가 많다. 즉 스스로 무너지는 패자의 행동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따라서 다른 펀드매니저들과 경쟁하는 펀드매니저의 승리 비결은 다른 펀드매니저보다 실수를 적게 하는 것이다. 시장을 이기려 들면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돼 있다. 이에 찰스 엘리스는 장기적으로 승자가 되려면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 현실적인 장기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건전한 정책을 수립한 후 자제력과 인내심, 투지를 동원해 끈기 있게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급변에 따른 손실에 대해 투자자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대다수 투자자들은 돌발적이고 당혹스러운 대규모 손실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 찰스 엘리스는 “주식시장의 오랜 역사를 연구하고 이해하게 되면 그러한 사건들이 충분히 발생 가능한 정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불안에 휩싸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의 역사를 연구하라”

그는 “현재를 연구하는 것보다는 투자의 역사를 연구하는 편이 투자자들에게 훨씬 득이 된다”며 “과거 신문이나 잡지, 서적들을 읽다 보면 ‘데자뷰(기시감; 과거에 비슷한 상황을 겪은 느낌)’가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고 말했다.

결국 시장은 늘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장이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펀드매니저와 개인 투자자들이 겁에 질리거나 위기에 빠질 필요는 없다.

성공적인 자산관리를 위해서는 투자자가 자산관리 회사의 훌륭한 고객이 될 필요가 있다. 찰스 엘리스는 훌륭한 고객이 되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자신의 투자 목적과 참을성을 파악하는 일에서 시작하라. 사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투자자 자신일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의 인내력 등을 점검해야 한다. 둘째, 외부세계인 투자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펀드매니저에게 그의 능력 이상을 기대하지 말라. 시장을 이기려고 한다면 그렇게 약속하는 펀드매니저를 만날 수 있지만 과연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확신할 수 없다. 셋째, 당신이 기대하는 임무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고 그 임무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당신이 함께 일하면서 즐길 수 있는 펀드매니저를 선택하라. 넷째, 꾸준히 장기 프로그램을 밀고 나간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도록 스스로 훈련하라. 마땅한 명분 없이 펀드매니저를 교체하는 것은 시점 선택으로 돈을 벌겠다는 시도와 비슷하다.

자, 찰스 엘리스의 말대로 훌륭한 고객이 될 준비가 됐는가?

찰스 엘리스가 말하는 개인 투자 10계명

많은 투자자들이 신상품에 쉽게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새로 나온 상품이라면 그 내용을 꼼꼼하게 따지지 않고 덥석 투자한다. 찰스 엘리스는 “흥미로운 상품일수록 투자자에게 팔아넘기기 위해 설계된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낚시 가게에서 화려하게 꾸민 인조 미끼를 본 낚시 초보자가 물었다. “물고기가 실제로 이런 미끼를 무나요?” 주인이 대답했다. “우리는 물고기들에게 미끼를 파는 게 아닙니다.”

다음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유용한 투자 지침이 될 만한 찰스 엘리스의 투자 10계명이다.

1. 투기하지 말라

2. 저축하라

3. 절세를 목적으로 하는 매매는 하지 말라

4. 주택을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라

5. 상품선물 투자는 하지 말라

6. 증권 브로커의 본질을 확실히 알아두라

7. 새로 출시됐거나 ‘흥미로운’ 투자 상품에는 투자하지 말라

8. 투자수익과 원금이 안전하다는 말만 듣고 채권에 투자하지 말라

9. 장기 목표와 장기 투자 프로그램을 작성해두라

10. 자신의 감정을 믿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