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의 인사철만 되면 끊이질 않고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낙하산 인사’다. 신분과 지위를 이용, 자리를 옮기는 ‘낙하산 인사’는 이제 관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사회가 변해도 ‘공직 사회는 철밥통이다’는 통념이 쉽게 깨지지 않는 것도 이같은 ‘보이지 않는 복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들만의 혜택을 버리고 민간 부문으로 나오는 엘리트 관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그들의 ‘뜻있는 가출’을 좇아 본다.

 근 금융시장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엘리트 고위 관료들의 잇따른 시장 진출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변양호(51)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과 김영재(58) 전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 이들은 지위 보장과 혜택을 과감하게 떨치고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금융권의 이슈 메이커가 되고 있다. 아직도 해마다 낙하산 인사가 판치는 상태에서 이들의 출현 자체가 업계에 신선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관료들이 변했다고 하지만 사실 재경부·금감원 등의 낙하산 인사는 이제 당연스런 일로 여겨질 정도로 해마다 재현되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지위가 보장됐던 변 전 원장 등이 시장에 나오는 것은 이례적이고 신선한 일”이라고 말했다. 



 엘리트 관료, PEF로 ‘헤쳐모여’

 지난 3월 PEF(사모주식펀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는 국내는 물론 국제 금융계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행시 17회 출신인 그는 주로 금융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실물경제 전문가로 당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차관’ 자리는 보장받을 것”이란 얘기가 나올 만큼 잘 나가는 관료 중 한명이었다. 그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국제금융과장으로 외채 협상 실무를 주도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1998년에는 영국의 경제월간지인 <유로머니>에서 아시아 지역 위기 국가의 능력 있는 관료로 선정됐고, 2002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재직 시절에는 미국의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15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공직을 버리자 과천 경제 부처 선후배들 사이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변대표가 사모주식펀드 도전을 위해 관을 떠나자 내부에선 무슨 일이 터져도 터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변대표는 현재 리먼브러더스와 펀드 자문 계약을 맺고 지난 4월 ‘보고펀드’란 토착 PEF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보고펀드’로도 불리는 보고펀드는 그가 경희대 강연에서 <장보고의 동북아 전략>이란 책을 낸 모 교수의 설명을 듣고 직접 지은 이름이다. 말 그대로 ‘외국계에 대항하면서 국내 자본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는 “토종이면서도 외국계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장보고는 우리와 딱 맞다”며 “그러나 장보고가 정치적인 입김에 의해 암살당하는 것처럼 정치적 개입은 절대 배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대표와 보고펀드를 운용 관리할 조직도 화려하다. 이재우 리먼브러더스 한국대표, 신재하 모건스탠리 서울지점 전무 등 한국인 3명과 중국계 캐나다인인 레이먼드 소씨 등이 핵심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의 이대표는 경력 23년의 금융계 베테랑으로 우리금융의 뉴욕증시 상장과 LG투자증권 인수를 성사시켜 우리금융지주 구조 조정 작업을 뒷받침했던 인물이다. 또 신전무는 조흥은행·외환은행·한국투자신탁·대우종합기계 등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채권단 관리 상태인 대형 기업들의 매각을 주도했던 M&A(인수·합병) 전문가다.

 1조원 규모의 보고펀드는 올 하반기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국내 M&A 물건 등을 대상으로 투자 대상 물색은 물론 자금 모집도 병행하고 있는 상태다.

 변대표보다 앞서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도 외환위기 당시 경제 개혁의 주요 일원으로 활약했던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또 이헌재 사단의 대표적인 일원으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김회장은 지난 2003년 이헌재 전임 부총리와 ‘이헌재펀드’란 토종 PEF를 만들려다가 이 전임 부총리의 입각으로 독자 행보를 걷고 있다. 지난해 말 주주를 끌어 모아 칸서스자산운용을 설립한 그는 업계 최초로 새로운 상품인 멀티클래스펀드를 선보이는가 하면, 단일 최대 규모인 3880억원의 PEF를 만들어 CJ와 공동으로 진로 인수 작업에도 나선 바 있다. 김회장은 앞으로 2개의 PEF를 추가로 설립,  중소기업 인수 등 기업 구조 조정 시장에 뛰어들 방침이다. 

 김회장은 “PEF는 앞으로 가장 성장할 시장 중 하나”라며 “PEF를 통해 국내 자본시장 육성은 물론 외국계 투가 자본과도 싸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변양호 대표·김영재 회장 이외에도 이헌재(61) 전 부총리, 정재룡(59)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있는 정재룡씨는 중국 부실 채권시장 진출을 위해 자산운용사 설립을 구상중이다. 이에 대해 정고문은 “고성장을 위해 중국 은행들은 ‘퍼주기’식 대출을 일삼았고, 정부도 이를 용인하면서 거대 부실이 생겨나고 있다”며 “중국의 부실 채권시장은 과거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새로운 개척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고문은  경기고·서울법대 동창인 명노승 전 법무부 차관,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를 경영하는 백종헌 프라임산업 회장 등과 함께 자산운용사 설립 및 중국 투자 대상 물색 등 수익 모델을 구체화하고 있는 상태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고문이 캠코(자산관리공사) 사장을 지내면서 많은 부실 채권 노하우를 쌓았던 만큼 중국 부실 채권시장 공략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고문도 “캠코 사장 시절 중국에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왔다”고 할 만큼 중국 부실 채권시장 진출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는 “자산운용사 설립이 구체화된 것은 아니다”며 “중국이란 나라의 특성상 투자 물건 확보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어 조심스레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은 이헌재 전 부총리다. 그는 퇴임 이후 이렇다 할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과거 이헌재펀드를 만들어 “토종 자본으로 우리은행을 인수하겠다”고 선언했을 만큼 사모주식펀드에 관심이 많다. 그의 측근은 “전면에 나서진 않겠지만 조만간 이헌재펀드와 같은 형태로 시장에 나타날 것”이라고 전했다.

 이헌재사단의 대표 주자인 김영재 회장은 “퇴임 이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내시고 있는 걸로 안다”며 “이헌재펀드를 다시 만든다는 것은 호사가들의 얘기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분의 경험이나 포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위치로 복귀하실 것”이라고 말해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시장에 진출할 것임을 시사했다.



 관료 출신 시장 진출 ‘일단 환영’

 변양호 대표나 김영재 회장 등 시장에 진출했거나 준비중인 엘리트 관료 출신 모두 “위기의 국내 자본시장을 지키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모주식펀드에 올인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일단 금융권은 물론 시장에서도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실물경제 전문성과 관료 출신으로서의 영향력을 동시에 갖춘 이들이 국내 자본시장의 대변인, 대항마 등 선순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자산운용사의 한 대표이사는 “시장 중심으로 자본이 움직이긴 하지만 아직 국내 금융시장은 관가의 입김이 거센 게 사실”이라며 “금융기관이 낙하산 인사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유 중 하나도 관가의 이같은 영향력을 인정하고 변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인사 전략적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관가와 금융권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고위 공직자들은 대부분 관가의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업계와 시장의 니즈를 바로 금융 당국에 전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창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특히 엘리트 고위 관료의 시장 진출은 PEF 등 새로운 시장을 빠르게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중은행 기업금융 담당 부행장은 “사실 리스크를 중시하는 개별 금융기관이나 기관이 M&A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정보 수집과 자금 모집, 신속한 투자 결정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이에 반해 관료 출신들은 공직 시절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보 및 자금을 모을 뿐 아니라 투자 결정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진로 인수 작업에 뛰어든 바 있는 김영재 회장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자금도 언제든지 4000억원 가량은 모을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라고 말할 정도로 신속하고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한 상태다. 보고펀드도 변양호 대표의 전문성과 경력을 인정받아 국내는 물론 외국 자본마저 투자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고위 관료 출신의 시장 진출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관가의 영향력을 시장에 행사하면서 차별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업계의 이같은 우려를 의식하듯, 변대표나 김회장 모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정치적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강력히 어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증권사의 한 임원은 “금융 환경 변화로 금융기관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데 일부 엘리트 고위 관료 출신들이 차별적 지위를 누린다면 시장 질서만 왜곡하는 꼴이 될 것”이라며 “과거 재경부나 금감원 출신 고위 공직자들이 금융기관의 CEO나 임원으로 내려올 경우 관에서 여타 금융기관에 비해 많은 편의를 봐줬다”고 꼬집었다. 또 고위 관료 출신의 시장 진출은 ‘파벌 조성’과 ‘줄서기’ 등 부작용만 키워 금융시장내 인력 선순환을 막는 폐해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전문가는 “고위 관료 출신의 시장 진출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사실 최근 사례를 보면 업계 주요 인력이 한데 뭉쳐 다니는 꼴”이라며 “파벌 조성이나 줄서기가 더욱 만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Plus TIP



 좀체 사라지지 않는 금융권 낙하산 인사



 올해도 재경부와 금감원 출신들의 낙하산 인사는 많았다. 특히 금융권 내부 인사 교체가 드물었던 올해에는 대부분 금융기관의 감사 자리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의 경우 이길영 전 금감원 비은행국장이 씨티은행 감사로 자리를 이동했으며, 금융감독위원회 자문관인 권재중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제일은행 감사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또 허병준 금감원 감독관도 대구은행 감사로 이동했다. 이밖에 정재삼 금감원 부산지원장은 국민은행 검사본부장 타이틀을 달았다.

 증권업계도 재경부, 금감원 등 관료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동원지주는 지주사 상임고문에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한 장승우씨를, 전략담당 부사장에는 유영환 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을 영입했다. 장승우 고문과 유영환 부사장은 모두 행정고시 출신으로 연배는 서로 다르지만 각각 예산실 출신의 ‘전략기획통’이며 미국 유학파다. 장승우 동원금융지주 상임고문은 행시 7회 출신으로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을 거쳐 재정경제원 제1차관보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기획예산처 장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해 가장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유영환 동원증권 부사장도 행시 21회 출신으로 미국 오리건대에서 경제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기획원 기획예산실을 거쳐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국장과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을 지냈다.

 대우증권은 김영록 금감원 국장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김국장은 금감원 조사1국장 및 회계감독2국장 등을 역임했다. 또 서울증권도 유병철 금감원 국장을, 삼성증권은 연해철 금감원 국장을 주총을 통해 선임할 예정이다. 유국장은 자산운용국장 등을 거쳤으며, 연국장은 조사2국장 출신이다.

 이에 대해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매년 상당수의 인력이 금융기관으로 자리를 이동함으로써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일부 낙하산 인사를 가지고 전문성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마저 낙하산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칸서스자산운용 회장 김영재



“시장에서 일생의 마지막 성적표를 받겠다”



 공직자들이 민간 기업과 금융기관의 임원이나 감사, 고문으로 자리를 옮겨 가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관행이 된 상태입니다. 스스로 시장을 선택한 계기나 이유가 있습니까.

 사실 이헌재 장관 입각 이후 공직 제의도 있었고 금융기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지만, 저는 시장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 부담이 되거나 ‘낙하산 인사’란 말을 듣는 게 싫었지요. 오히려 이제는 뭔가에 독자적으로 도전하는 인생을 살아 보는 게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직 이후 저축은행 대표를 역임한 경험이 있으신데, 왜 하필 자산운용사를 선택하게 됐는지요.

 자산운용업은 금융산업의 꽃입니다.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죠. 외환위기 당시 경제 혁신 작업이나 많은 기업 공개, M&A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시장에서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시장의 일원으로서 제 일생의 마지막 성적표를 받아 보고도 싶었고요.



 회장님과 칸서스를 논하면 아직까지도 이헌재펀드, 이헌재사단이란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게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경쟁 업체들은 칸서스가 잘하면 이헌재 장관의 후광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이헌재 장관과 함께 일한 사람이란 점에서 전문성과 도덕성을 인정해 주기도 해요. 일장일단이 있는 거죠. 하지만 이제는 과거 공직 생활에서처럼 독자적으로 전문성과 경쟁력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김영재 회장은 지난 1977년 31세의 늦은 나이에 증권감독원(현 금융감독원)에 들어가 가장 빨리 임원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아직도 그의 승진 기록을 깬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증권감독원에서 검사국 과장, 홍보실 차장, 기업등록국장, 재무국장 등을 역임했던 그는 98년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에 올랐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은 이헌재 전임 부총리였다. 대변인으로 이헌재 당시 위원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했던  김회장은 이후 이헌재사단의 핵심 인물로 불렸다. 지난 2003년에는 ‘이헌재펀드’ 설립을 주도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지만, 이듬해 이헌재 전임 부총리의 입각으로 펀드 설립이 무산됐다. 이후 김회장은 독자적으로 주주를 모아 칸서스자산운용사를 설립했고, 멀티클래스펀드와 PEF 등 새로운 자산 운용 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기업의 CEO로 과거 공직 생활과 다른 점이 많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과거 공직에선 큰 시스템하에서 움직이면서 개별 업무에만 집중하면 됐어요. 하지만 이제는 한 회사의 대표로서 모든 일을 챙겨야 하는 책임감과 압박감이 있죠. 이를 위해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스스로 많은 지식을 챙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산운용업에 대해선 나름대로 전문가라고 자신하지만, 과거와 다른 새로운 트렌드나 금융 기법들이 쏟아져 나와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어요.



 칸서스자산운용이 출범한지 반년이 넘었습니다. 설정액이 6600억원(5월2일 현재) 정도인데, 짧은 기간이지만 스스로 평가를 해주시지요.

 일단 신생사로서는 대단한 성과였다고 판단합니다. 지난해 새롭게 시행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하에서 만들어진 운용사는 칸서스자산운용이 처음입니다. 기존의 자산운용사는 대부분 은행과 증권 등 금융기관이나 재벌들의 자회사로, 모회사로부터 운용 자산 등 많은 지원을 받아 성장했습니다. 그만큼 유리했던 거죠. 하지만 주주를 끌어 모아 설립된 칸서스자산운용과 같은 신생사는 모회사의 지원도 받을 수 없어 자금 모집이나 펀드 수익률 경쟁 등에서 힘든 게 사실이에요. 더욱이 자산운용사의 운용 보수는 과거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든 상태여서 그만큼 홀로서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출범 반년만에 66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볼 수 있지요. 모회사의 지원이 아닌 발로 뛰면서 만난 고객의 돈 10억, 20억원을 모아서 만든 자금이기에 더욱 애착이 갑니다.



 회사 설립 당시 주주 구성에 특히 신경을 썼던 것으로 압니다. 가장 주안점을 뒀던 것은 무엇입니까.

 회사 설립 당시 신생사로의 약점을 보완키 위해 공신력 있는 주주를 모으는 데 주력했습니다. 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함으로써 투명하고 독자적인 회사 운영을 가능케 하는 한편, 전문 인력으로 운용 조직을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기관’이란 인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시장에서도 이런 점들을 인정해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금융기관이나 재벌 등을 모회사로 둔 자산운용사는 쉽게 출발할 수 있지만 투명성이나 전문성을 키워가 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목표는 일반 주식 및 채권 펀드를 기반으로 사모주식펀드(PEF), 부동산펀드(REF)에 전문성을 지닌 ‘작지만 강한 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칸서스자산운용은 당초 금융기관 위주로 주주가 구성될 계획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하지만 이헌재 전임 부총리 입각으로 여러 가지 구설수가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게 싫어 주주 구성을 변경했다고 한다. 이헌재펀드(사모주식펀드 PEF) 설립 작업 당시 만났던 기관들을 대상으로 자산운용업에 이해도가 높고 공신력 있는 곳을 선정했고, 그 결과 M&A와 부동산업계의 큰손인 군인공제회, 굴뚝산업의 삼성전자로 불리는 한일시멘트, 펀드 판매를 담당할 하나증권, 알짜 기업인 보성건설 등이 지금의 주주가 됐다.



 칸서스자산운용 설립 이후 펀드시장은 26조원 가량 성장하면서 200조원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시장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많은 관심을 받았던 칸서스의 성장이 다소 부진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늘어난 26조원 가량 중 60% 가량은 단기성 자금인 MMF입니다. 나머지가 주식과 채권형 펀드지요. 성장 속도에 연연해 소규모 펀드를 양산하는 것은 회사나 시장을 위해서라도 절대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펀드의 수나 설정액으로 운용사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펀드의 수익률, 자금 모집 등 질적인 부분이 중요하지요. 칸서스자산운용이 추구하는 것도 피델리티의 마젤란펀드처럼 대형 장기 주식형펀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칸서스자산운용은 총 18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펀드별로는 주식·채권·혼합형 펀드 14개, MMF 1개, 부동산펀드 1개, 파생 상품 관련 펀드 2개 등이다. 주식형펀드의 경우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5월9일 현재 칸서스자산운용의 하베스트적립주식펀드의 3개월 누적 수익률은 7.24%로 설정 규모 500억원 이상인 전체 펀드 중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칸서스자산운용의 올해 목표는 무엇입니까.

 전체 펀드 설정 규모를 3조원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주식·혼합형 펀드로 2조원, MMF와 PEF 등으로 1조원까지만 채우면 칸서스가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는 것은 물론 주주나 직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수지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독자적인 자산운용사로서 가장 빠른 시일내에 수익 구조를 맞출 수 있는 기록을 세울 계획이에요.



 회사 설립시 강조했던 PEF 투자가 늦어지고 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PEF는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 큰 특징입니다. 노 리스크 노 리턴(No Risk No Return)을 선호하는 국내 환경과는 잘 맞지 않아요. 최근에 PEF를 통해 기업을 인수한 컨소시엄에서 일정 수익률을 보장해 논란이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환경이 다른 상태에서 제도를 그대로 도입한 데 있어요. 선진 금융제도라고 모두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 경제 환경과 관습에 맞게 다듬을 필요가 있는 거예요. 이밖에 투자 한도 제한 등 제도상의 갖가지 제약들도 한국형 PEF 정착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 당국에서 한국 환경에 맞게 PEF 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보다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대주주인 군인공제회는 최근 진로에 이어 하이닉스, 대우건설 등 굵직한 M&A에 참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칸서스와 PEF 공동 추진 계획이 있는지요.

 현재로선 PEF 공동 추진 계획은 없지만 시너지효과를 높일 수 있는 프로젝트라면 충분히 공동 작업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M&A 등 사안별로 검토해 나갈 계획입니다.



 자산운용사 CEO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간단합니다. 큰 회사보다는 고수익을 내는 자산운용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최고의 전문가가 필요하고, 최고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선 최고 대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성과관리시스템을 개편해 모든 임직원이 만족하고, 더 나아가 고객들도 만족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회사를 만드는 제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