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판교IC를 빠져나와 자동차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어,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으로 향하자, 눈앞에 이국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외국 어느 마을에 온 듯 착각이 든다. 경부고속도로를 기점으로 분당 쪽은 동(東)판교, 반대편은 서(西)판교라고 불리는데, 외국 주택단지 분위기가 물씬나는 이곳은 서판교로 불리는 곳이다. 동판교가 빽빽한 아파트 단지로 이뤄졌다면, 서판교는 고즈넉한 전원형 주택단지 모습이다. 획일화로 상징되는 아파트 문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집의 형태도 제각각이다. 일부 타운하우스를 제외하고는 모양새가 똑같은 집을 찾기 어렵다. 집 짓는 데 쓰인 건축 자재도 노출 콘크리트부터 목재, 철, 강화 유리 등 다양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이국적인 정취에 빠지게 만드는 서판교 단독 주택지는 이런 이유로, 최근 서울 강남 3040세대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권상우·허영만 등 문화예술인 모여 살아
얼마 전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직후,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적잖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성적 부진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이와 함께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것은 월드컵 직전, 한 주택지를 매입한 사실 때문이었다. 그 땅이 바로 서판교 단독 주택지다. 월드컵과 같은 중대한 일전(一戰)이 코앞에 있더라도, 매입을 서둘러야 할 만큼 서판교 단독 주택지는 서울, 수도권을 통틀어 요사이 가장 인기가 있다.
실제로 서판교 단독 주택지가 위치한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운중동에는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고 있다. 배우 신하균을 비롯해 김영철, 김보성, 가수 솔비 등이 현재 서판교 단독 주택지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배우 권상우가 사는 것으로 알려진 고급 빌라 르시뜨 빌모트는 서판교에서도 인기가 있는 주거단지 중 하나다. 총 다섯 개동 36가구로 이뤄진 르시뜨 빌모트는 서초동, 청담동 고급 빌라 못지않게 경비가 삼엄해 사생활 보호를 중요시하는 연예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스포츠 스타로는 서정원 현 수원 삼성 감독이 이곳에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타운하우스로 지어진 주공휴먼시아 7단지에 살고 있으며, 만화가 허영만도 서판교 단독 주택단지 입주민이다. 재계 인사로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대표적인 판교 주민이다. 남서울CC 부근에 위치한 정 부회장 저택은 건물 외관이 스페인풍(風)으로 꾸며져, 이곳에서도 꽤 유명하다.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과 김준일 락앤락 회장도 판교에 사는 대표적인 재계 인사다.
서판교가 최고의 단독 주택지로 평가받는 것은 지리적인 이점이 가장 큰 이유다. 경부고속도로 판교IC와 바로 연결된 사실상 서울 생활권이다. 주변에 금토산, 운중천 등 쾌적한 자연 환경도 갖추고 있다. 판교역 주변의 다양한 생활 편의 시설이나 분당과의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다. 이시정 이도건축 대표는 “잘 발달된 교통 여건과 생활 편의 시설, 서울 강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 등은 도심형 단독 주택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서판교 단독 주택지는 땅값도 비쌀뿐더러, 오름폭도 크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서판교 단독 주택지는 4억6000만~10억원에 분양됐다. 3.3㎡로 환산하면 700만~80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 거래되는 땅값은 3.3㎡당 평균 1000만원 선이다. 가장 인기 있는 5블록은 땅값만 3.3㎡당 1500만~2000만원이다. 고현숙 LH 통합판매센터 차장은 “최대 청약 경쟁률이 119대 1을 기록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땅은 하나도 없이 모두 팔렸다”고 전했다.
총 14개 블록으로 돼 있는 서판교 단독 주택지는 블록별로 땅값, 집값 차이도 난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은 4~6블록이다. 14개 블록 내 들어선 주택만 1352가구에 달한다. 택지 크지는 다양하지만 231~264㎡(70~80평)대가 가장 많다. 비슷한 다른 신도시에 비해 땅 면적이 크지 않다. 마당은 크지 않고, 대부분 건물이 차지하고 있는 구조다.
전체 택지 중 절반가량 주택 들어서
지리적인 이점 탓에 지역주민들의 만족도는 상당하다. 얼마 전 한 유명 작곡·작사가 부부인 A씨 부부는 서판교 단독 주택 토지를 알아보러 지역 부동산을 찾았다. 231㎡(70평)대 택지 땅값으로 5억~6억원 정도를 생각했던 이들은 3.3㎡당 땅값이 1000만원을 넘자, 결국 매입을 포기했다. 도심형 단독 주택을 전문으로 시공하는 김연철 창조코퍼레이션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승용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용인 동백지구 단독 주택지는 땅값이 3.3㎡당 600만원에 불과해, 이를 추천했더니, 눈길조차 안 주더군요. ‘판교가 아니면 살지 않겠다’는 거예요. 직업 특성상 제시간에 출퇴근을 하지 않아 괜찮을 것 같은 데도, ‘꼭 여기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걸 보면서 판교에 대한 인기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동판교 지역에 IT(정보기술) 단지가 들어선 것도 수요 확대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 집을 구하려는 수요층은 30~40대가 가장 많다. 9월 중 이곳에 단독 주택을 지어 입주하는 강범석(45)씨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동판교에 살던 강씨는 층간 소음 등 아파트 생활이 주는 불편함에 염증을 느끼고 서판교로 이사를 결정했다. 김연철 대표는 “50~60대가 주 수요층인 전원주택시장과 달리, 도심형 단독 주택은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자녀로 둔 30~40대의 관심이 가장 높다”면서 “서판교에는 운중초, 산운초 등 교육시설도 꽤 잘 갖춰져 있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판교에서 단독 주택을 지으려면 비용이 얼마 정도 들까. 땅값은 3.3당㎡ 1000만원을 기준으로 하고, 건평 231㎡(70평)짜리 단독 주택을 지을 경우, 토지 매입에 필요한 비용만 7억원이다. 건축비는 3.3㎡당 550만~600만원 수준. 다른 수도권 단지보다 3.3㎡당 땅값이 100만원가량 비싸다. 단순 계산해도 들어가는 비용은 10억8500만~11억2000만원이다. 때문에 토지가 기준 금액의 70~80%까지 금융기관에서 대출해주고 있다. 이장욱 그린이노베이티브프로포절(GIP) 대표의 말이다.
“최근 만난 건축주 중에는 그동안 투자 등을 고려해 참아가며 낡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서 살아왔는데, 재건축 사업이 몇 년째 지지부진하자, 이를 팔고 단독(주택)에서 편히 살고 싶다며 건축을 문의해온 분도 있었습니다. 이곳(서판교)은 오히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될수록, 희소성이 커지는 탓에 인기가 더 높아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현재 서판교 택지 중 50% 정도는 이미 집들이 들어서 있다. 나머지 택지는 현재 건축 중이거나, 향후 1~2년 내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운중동 삼성플러스공인 심지영 대표는 “서판교가 신흥 인기 주거지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매매를 희망하는 고객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전세 물건은 품귀 상태다. 231~264㎡(70~80평) 기준 전세값은 3억~4억원 선이다. 삼성플러스공인 심 대표는 “전용 면적 132㎡(40평)짜리 주택을 2층으로 지어 66㎡(20평)짜리 한 개 층은 자신이 쓰고, 다른 한 개 층은 세를 주는 식의 임대사업도 생겨나고 있으며, 땅콩집(두 집이 한 벽을 중심으로 붙어있는 듀플렉스 스타일 타운하우스) 타입으로 지어 세를 놓는 집주인도 있다”고 말했다.
고급 레스토랑, 카페 등 상권을 비롯해 전반적인 동네 분위기는 일반 주거지와 다른 모습이다. 1000여 가구 주택이 들어서면서 서판교 단독 주택지를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 영화, CF 촬영도 한창이다. 서판교에 198㎡(60평)짜리 단독 주택을 짓고 사는 김 모씨는 얼마 전 모 광고 기획사로부터 1박 2일간 집에서 CF 광고를 찍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집을 빌려주는 대신 촬영 기간 동안 김 씨 가족에게는 5성급 호텔에서 묵을 수 있는 숙박권과 사용료로 5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결국 김 씨는 기물 파손 시 전액 배상한다는 각서를 받고 집을 빌려줬다.
영화·드라마·CF 촬영지로도 인기
실제로 서판교 단독 주택지를 방문하면, 자신의 집을 외부에 공개하는 오픈하우스도 종종 볼 수 있다. 블록별 커뮤니티도 잘 형성돼 있다. 일종의 반상회 같은 모임이다. 블록마다 별도의 관리 규약을 갖고 있는 것도 판교 단독 주택 단지의 특징 중 하나다.
다만 1, 2층은 상가로 이용하고, 3층만 주택으로 쓰는 상가 주택은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수익률 확보에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원래 택지 청약 경쟁률은 상가주택이 단독 주택보다 훨씬 높았는데, 지금은 사정이 역전됐다”면서 “판교신도시는 기본적으로 소득이 많은 부유층이 전원형 단독 주택 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이사 오는 곳이기 때문에 임대사업을 위한 상가 주택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