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에서 수녀와 자원봉사자가 환자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고 있다.
- 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에서 수녀와 자원봉사자가 환자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에는 ‘소원 성취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다. 환자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서서 이를 들어주는 것이다. 서울성모병원에서 15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예은주 봉사팀장이 이곳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든 환자를 떠올리며 들려준 얘기다.

“환자 분이 딸을 둔 어머니였어요. 그 분 소원은 결혼하는 딸에게 폐백을 해주는 것이었죠. 하지만 휠체어 타기도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해 병원에 누워만 계시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분들을 모시고 와 병원 내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서 폐백을 했어요. 집에서 병풍을 가져오고 실에다 대추를 꿰는 등 그럴싸하게 상을 차렸지요. 딸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어머니한테 절을 하는데, 어머님이 너무 행복해하시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모두가 울었어요.”

때로는 환자를 앰뷸런스에 태워서 병원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남성 환자를 앰뷸런스로 모시고 을왕리(인천시 중구)에 다녀왔다고 한다. 결혼한 지 4년, 제대로 된 데이트 한번 해본 적이 없었던 그의 소원은 아내와 함께 바닷가를 거니는 것이었다. 비록 휠체어를 탄 몸이었지만 그는 을왕리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그 바람을 이룰 수 있었다.

일부 호스피스의 사례긴 하지만, 병원에서 폐백 상을 차리고 앰뷸런스로 환자를 바닷가에 데리고 간다는 건 일반 암 병동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호스피스는 의료적 측면만큼이나 환자의 정서적 행복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벌어진다.

이전 치료기관보다 월등히 높은 만족도 보여
그렇다면 ‘호스피스’란 정확히 어떤 곳일까. 인력 구성에서부터 확연한 차이가 난다. 호스피스에서는 의사, 간호사, 성직자,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완화의료팀이 통증, 구토, 호흡곤란 등 환자를 힘들게 하는 신체적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할 뿐만 아니라, 대화·기도 등을 통해 환자와 그 가족을 정서적·영적으로 지지한다. 예후(豫後)를 판단하기 힘든 비암성(非癌性) 질환과는 달리, 말기 암 판정을 받으면 대개 남은 수명이 길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호스피스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남은 삶을 더 행복하게 보내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환자가 임종한 뒤에도 꾸준한 관계 맺음을 통해 사별가족이 아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 말기 암 환자만 이용 가능하며 지난 7월부터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됐다.

과거에 비해 부정적인 인식은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일부 환자는 호스피스를 ‘죽으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 꺼려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립암센터 자료에 따르면, 완화의료 전문기관(호스피스)에서 제공받은 의료서비스에 대해 응답자의 75%가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이는 이전 암치료기관의 34%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도 호스피스의 높은 만족도를 체감한다. 윤조히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임상강사(의사)는 “암 병동에서 호스피스로 옮겨온 환자들은 처음엔 치료를 중단한다는 사실에 힘들어하지만 금방 적응한다. 이곳에서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집 같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병동에서보다 통증 관리가 잘 된다는 것도 높은 만족도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다. 기존 의료기관은 질병 치료가 우선이므로 통증이 수반된다 해도 치료를 감행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호스피스 의료진은 환자가 심한 고통을 겪을 것으로 판단되면 의료적 처치를 자제한다. 통증 등 환자가 겪는 신체적 불편을 완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윤조히 임상강사는 “암 병동에서 치료 부작용 등으로 고통을 겪던 환자가 호스피스에 오면 2~3일 이내에 통증이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환자가 원하면 간호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일반 병동에 비해 환자 당 간호사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덕분이다. 함혜영 부산가톨릭대학교 생명과학대학원생의 석사 논문(2013)에 따르면, 호스피스에 대한 만족도를 측정한 항목 중 ‘가족이 간호사를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이 5점 만점에 4.60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의료진 이외에 성직자,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는 환자를 정신적으로 지지해준다. 환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찾아와 기도해주는 신부와 수녀, 환자에게 다정하게 말 걸어주고 노래도 불러주는 자원봉사자 등 따뜻한 손길이 많다. 특히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자의 비중은 큰 편이다. 그들은 수시로 환자를 찾아와 환자의 자세를 바꿔주고 등을 쓸어주고 베개를 갈아주는 등 환자가 편안히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환자의 마음속에 맺힌 것이 있으면 풀어주고, 환자와 가족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중간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도 세심하게 챙긴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있는 환자의 아내인 김명순(가명)씨는 병원에서 보호자를 위해 마련한 점심식사를 먹으며 “대단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자원봉사자들이 끓여준 따뜻한 국물을 마시면서 진심으로 위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 호스피스에서는 의사, 간호사, 성직자,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완화의료팀이 통증, 구토, 호흡곤란 등 환자를 힘들게 하는 신체적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할 뿐만 아니라, 대화, 기도 등을 통해 환자와 그 가족을 정서적·영적으로 지지한다.
- 호스피스에서는 의사, 간호사, 성직자,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완화의료팀이 통증, 구토, 호흡곤란 등 환자를 힘들게 하는 신체적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할 뿐만 아니라, 대화, 기도 등을 통해 환자와 그 가족을 정서적·영적으로 지지한다.

공급 부족에다 쏠림현상까지
이렇듯 호스피스는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에게 많은 이점이 있다.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발적으로 호스피스에 오고 싶어 하는 환자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필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암 사망자는 2013년을 기준으로 7만5000여명이다. 그러나 전국의 호스피스 병상은 1000여 개가 채 안 된다. 단순 숫자로 비교해도 공급이 적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좀 더 안 좋다. 지역병원을 기피하고 수도권 대형병원만 고집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때문에 병상 수 자체도 모자라지만 일부 기관으로의 쏠림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라정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팀장은 “서울·수도권에 비해 지방 의료시스템이 취약한 게 사실인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효(孝) 사상 때문에 부모를 시설과 인력이 잘 갖춰진 대형병원에 모시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23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에는 항상 대기자가 줄을 서 있다. 심할 땐 몇 달을 기다리기도 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금전적 부담도 걸림돌이다.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에 “말기 암 환자가 호스피스를 이용할 경우, 일당 약 1만8000~2만3000원의 환자 부담이 발생한다(총 진료비 일당 28만~37만원, 간병급여 포함)”고 명시했다. 이는 의료비뿐만 아니라 간병비도 건강보험 처리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간병급여 혜택을 받으려면 환자가 이용하는 호스피스가 복지부가 제시한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해야만 한다. 즉, 해당 의료기관이 환자 세 명 당 간병인 한 명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안 그래도 재정적자인 호스피스 기관들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복지부가 지정한 전국 60개 호스피스 전문기관 중 이 기준을 충족하겠다고 응답한 곳이 지역 소규모 병원 2군데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게다가 아직 호스피스 전문 교육을 받은 간병인 숫자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결국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간병비가 일 4000원밖에 안 되지만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 간병비로 일 8만원을 내야 한다.

의료서비스 공급자인 기관 입장에서도 호스피스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일반 병동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수익은 적어 거의 필연적으로 재정적자가 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정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이 되기 위해선 임종실, 가족실, 상담실 등 호스피스 내에 여러 별도 공간을 갖춰야 한다. 인건비 지출도 상당하다. 간호사도 여러 명이 필요한데다 성직자, 사회복지사 등 의료 외적 인력도 적지 않아서다. 금전적 대가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도 관리 차원에서 비용이 든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호스피스를 설립했어도 전문기관으로 등록하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 국내 대표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인 서울성모병원은 23명의 환자를 돌보기 위해 간호사가 18명, 자원봉사자는 무려 50명이 근무 중이다. 라정란 팀장은 “대형병원도 다른 병동에서 번 수익으로 호스피스 적자를 메우는 상황이기 때문에 확고한 운영철학이 없으면 호스피스 사업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자의 비중은 큰 편이다. 그들은 수시로 환자를 찾아와 환자의 자세를 바꿔주고 등을 쓸어주고 베개를 갈아주는 등 환자가 편안히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자의 비중은 큰 편이다. 그들은 수시로 환자를 찾아와 환자의 자세를 바꿔주고 등을 쓸어주고 베개를 갈아주는 등 환자가 편안히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가정 호스피스도 건강보험 적용 추진
한편 정부 지원이 병동형 호스피스 기관에 집중돼 온 탓에 가정형 호스피스는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진단 초기이거나 심한 증상이 있는 환자는 병동형 호스피스에서 치료를 받는 게 좋지만, 어느 정도 상태가 진정된 이후에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가정형 호스피스로 이동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정 호스피스는 환자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를 선호하는 환자가 많다.

해외의 경우 가정형 호스피스가 기본이다. 가정에서 증상 조절이 안 될 경우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관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정 호스피스 체계가 미비한 탓에 긴급 상황이 생기면 응급실로 향하는 말기 암 환자가 많다. 정부는 올해 내로 가정 호스피스 관련 규정을 법제화 하고 건강보험 수가 시범사업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가정 호스피스가 정착하려면 그와 연계할 지역 의료가 지금보다 더 탄탄해져야 한다. 집에서 임종하는 것을 두려워해 가능하면 병원에 있으려고 하는 한국적 정서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반복된 치료와 고통에 지쳐있는 말기 암 환자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다. 그러나 1000개도 안 되는 병상 수, 일부 대형병원에만 환자가 쏠리는 현상은 호스피스 이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됐지만 간병비는 사실상 여전히 환자의 몫인데다 의료기관도 재정 문제로 호스피스 설립·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가정 호스피스는 앞길이 첩첩산중이다. 호스피스 사업을 지원한다는 방향은 옳지만 보다 현실에 맞는 전향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