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무역 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TPP)이 9월 5일 대략적 합의에 이르자 베트남은 일본, 말레이시아 등을 비롯해 TPP의 가장 큰 수혜국 중 한 곳으로 떠올랐다. 12개 국가로 이루어진 TPP에는 미국, 일본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으로 베트남 전체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일본은 10.3%다. 베트남은 TPP 국가들 가운데 7개 국가와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기타의 관세 협정을 맺고 있다. 베트남의 입장에서 TPP는 나머지 4개 국가와 무역 장벽을 철폐할 수 있는 기회다. 이 4개 국가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페루로 이들에 대한 베트남의 수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22.3%다. TPP 회원국들의 새로운 무역 상대국이 이들 국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6.7%다. 수출만 봤을 때 베트남은 12개 회원국 중 가장 큰 수혜자다.
팜후찌 주한베트남 대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베트남에서의 원사, 직물, 의류와 액세서리 제조에 대한 투자가 촉진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진 :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팜후찌 주한베트남 대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베트남에서의 원사, 직물, 의류와 액세서리 제조에 대한 투자가 촉진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진 :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이에 따라 기업들은 TPP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베트남에서의 비즈니스 확대 기회를 준비 중이다. 베트남을 대(對)미, 대일 수출 생산 기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10월 6일 한국도 베트남을 생산 기지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TPP 역내 거대 소비 시장인 미국, 일본 등에서 베트남산 섬유·의류 제품에 붙었던 높은 관세가 철폐되면 베트남이 국제 섬유·의류 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TPP로 인한 베트남의 경제 전망, 한국과의 협력 관계 등에 대해 묻기 위해 주한베트남대사를 만났다. 팜후찌(Pham Huu Chi) 주한베트남대사는 “역내산 원사를 사용해 역내에서 제조한 섬유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요구하는 TPP의 규정은 베트남에서의 원사, 직물, 의류와 액세서리 제조에 대한 투자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베트남이 TPP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TPP가 발효되면 먼저 미국과 일본 시장으로의 수출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의류와 섬유, 수산물 분야에서 크게 효과를 볼 것으로 보인다. 또한, TPP가 베트남의 사업 환경을 더 투명하고 개방적이며 안정적으로 만들어 외국인 직접 투자(FDI)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TPP로 인해 베트남의 행정 시스템 등이 개선될 수 있다. TPP는 베트남이 행정 개혁을 서두르고 부패와 관료주의를 철폐하는 동기가 될 것이다. TPP는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고 세계 무역의 30%를 담당하는 만큼 베트남이 글로벌 공급망에 더 완전히 통합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TPP로 인해 베트남의 국내총생산(GDP)은 2025년까지 335억달러(37조8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따라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고 소득이 증가해 빈곤율이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시장에서 TPP 회원국인 베트남이 비회원국인 중국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을 것으로 보나?
“모든 국가는 자신만의 경쟁 우위가 있다. 이런 경쟁력은 국가의 자원일 수도 있고 기술력이나 인력, 세계 시장에서의 위치일 수도 있다. 베트남은 TPP에 참여함으로써 비회원국들에 비해 역내 시장의 접근성 면에 있어 분명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또한, TPP의 회원국인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해외 기업들도 더 많아질 것이다. 비회원국들에 비해 세계 시장에서 베트남의 입지가 더 강화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베트남의 어떤 산업 분야가 가장 유망하다고 보나?
“섬유와 의류, 신발 관련 산업과 농업과 어업의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크다. 역내산 원사를 사용해 역내에서 제조한 섬유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요구하는 TPP의 얀 포워드 규정(Yarn-Forwad Rule·원사 기준 원산지판정방식)은 베트남에서의 원사, 직물, 의류와 액세서리 제조에 대한 투자를 촉진할 것이다. 이에 더해 베트남 경제는 TPP가 발효되면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조성될 새로운 공급망에 편승해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TPP로 인해 가속화될 것 같은데.
“맞다. 하지만 TPP를 통한 혜택을 모두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상품들의 원산지가 TPP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각각의 제품들이 TPP 역내에서 제조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기준들 때문에 베트남에 직접 투자하는 해외 기업 및 자본이 증가할 것이다.”

TPP와 관련해 베트남이 개선하고 극복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TPP 회원국들은 TPP에 합류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TPP 협상이 타결되기 며칠 전까지도 자동차와 의약품, 유제품에 대한 토론이 팽팽하게 이어졌다. 이런 논쟁들이 TPP 국가들이 넘어서야 할 문제들이다. 베트남의 경우 농업의 일부 부문, 닭고기와 돼지고기 등은 TPP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유제품이나 동물 사료, 종이, 철강, 자동차, 제약 등의 특정 산업 분야에서는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TPP가 요구하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지배 구조 등 높은 기준이 우리 정부에게는 법적 및 제도적 틀을 수정해야 하는 큰 과제이기도 하다. 정부 조달, 경쟁 정책, 국유 기업, 지적 재산권, 노동, 환경, 규제의 일관성 등에 대한 TPP 조항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TPP에서 빠져있다. 한-베트남, 중-베트남의 무역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나?
“TPP가 역내 시장 진입을 훨씬 더 자유롭게 함에 따라 한국과 베트남, 중국과 베트남 간의 무역 구조가 바뀔 수 있다. TPP가 역내에서 취급되는 상품들이 역내에서 제조되도록 규정하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이 중간재를 한국이나 중국에서 수입하기보다 베트남 등 역내 국가에서 찾게 될 수 있다. 반면 베트남은 TPP 역내 국가들과의 교역을 늘리는 과정에서 중간재를 한국과 중국에서 더 많이 수입할 수도 있다. TPP의 원사 결정기준만 충족한다면 말이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등 TPP에 대항하는 또 다른 경제 동반자 협정이 나온다면?
“베트남은 독립과 주권, 그리고 평화 유지의 기반 위에 협력과 발전을 추진하는 일관된 외교 정책을 추구한다. 우리는 외교 채널을 다각화하고 적극적으로 세계에 통합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길 원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우리는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국제 평화와 안정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무역 활동을 환영한다.”

지난 해 12월 한국과 베트남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한-베트남의 교역은 어떻게 되고 있나?
“2014년 1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과 응웬 떤 중(Nguyen Tan Dung) 베트남 총리가 한-베트남 FTA의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몇 가지 지엽적인 문제가 남아있었지만, 양측은 올해 5월 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최종 합의안에 서명했다. 한국 경제와 베트남 경제는 서로를 보완해준다. 예를 들면 베트남 정부는 하이테크나 인프라 산업에서 한국의 기술을 필요로 하고 한국 기업들은 이런 곳에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양국의 무역과 투자에 불필요한 장애물들만 없애면 무역규모가 2020년에는 700억달러(82조6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본다.”

양국 간 FTA 효과를 극대화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나?
“양국 간의 FTA는 한국 제품들이 베트남 시장으로 들어가고 베트남 제품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돕는 데 분명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FTA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가치 사슬(value chain)에서 한국과 베트남 기업들이 긴밀히 협력해 세계 무대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TPP란
Trans-Pacific Partnership의 줄임말이다. 태평양을 둘러싼 광대한 지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자유무역협정으로 2015년 10월 5일 협상이 타결됐다. 2005년 6월 뉴질랜드·싱가포르·칠레·브루나이(P4) 등 4개국의 소규모 FTA로 시작됐으나 2008년 미국이 참여하면서 협상이 본격화 됐다. 2010년 협상 개시 선언 6년 만에 타결됐다. 경제규모 1·3위인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캐나다, 멕시코, 페루, 칠레,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 팜후찌 주한베트남 대사는…
팜후찌 대사는 베트남 외교부, 주미베트남대사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을 거친 외교통이다. 2005~2009년 주한베트남대사관에서 근무하다 이후 4년간 베트남 외교부 정책기획국 사무총장을 지내고 나서 2013년 10월 주한베트남대사로 부임했다.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