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사진 블룸버그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사진 블룸버그

국제통화기금(IMF)이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의 금리인상 등의 영향으로 신흥국에서 최대 1000억달러(약 113조4000억원)의 자본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중국을 제외한 수치로 신흥국 국내총생산(GDP)의 0.6%에 달하는 수준이다. IMF의 이 같은 예상이 현실화될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맞먹는 규모의 자본이 신흥국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10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IMF가 이날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앞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총재도 지난 1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 연설에서 “신흥국이 받는 압박으로 (신흥국) 금융시장이 위축되고 급격한 환율변동과 더 심각한 자본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가 신흥국 자본 유출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은 올해 들어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RB)가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에 있던 세계 투자자들의 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고 이에 따라 달러화에 대한 신흥국 통화의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 미·중 양국 간 무역전쟁도 세계 교역량 감소와 신흥국 경제의 성장 둔화,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IMF의 경고대로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통화가치 급락으로 지난 6월 IMF에 5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요청한 아르헨티나는 통화가치가 더 하락해 구제금융 요청금액을 570억달러까지 늘려 IMF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터키와 파키스탄 등 다른 신흥국들도 통화가치 급락을 겪고 있다. 파키스탄은 IMF와 구제금융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50.4%, 터키 리라화 가치는 37.9%, 파키스탄 루피화 가치는 11.6% 하락했다.

롤런드 미스 퍼시픽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매니저는 WSJ에 “지금이 신흥국 중앙은행들에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말했다. WSJ는 “각국이 처한 어려움에 차이는 있지만 통화가치 하락이 미국 달러화 강세와 연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모리스 옵스펠트도 “최근 미‧중 양국의 광범위한 무역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하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금융협회(IIF)도 “신흥국 통화 가치가 이미 크게 하락한 상태인 데다 미·중 무역전쟁, 이에 따른 중국 경기 둔화 등이 신흥국에 광범위한 위기를 유발할 것”이라고 주의를 준 바 있다.

한편 신흥국의 경제성장률 하락과 자본유출 우려 등으로 12일(현지시각)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줄줄이 급락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61.60포인트(5.93%) 하락한 2564.24에 거래를 마쳤다. 홍콩 항셍지수는 1048.99포인트(4.00%) 떨어진 2만5144.08에, 대만 가권지수는 660.72포인트(6.31%) 폭락한 9806.11에 마감했다. 코스피지수도 전날보다 98.94포인트(4.44%) 떨어진 2129.6에 장을 마쳤다. 코스피는 7년 만에 가장 큰폭으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