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오키나와 상공에서 찍은 후텐마 주일 미 해병대 기지 전경.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활주로를 둘러싸고 거주지가 밀집해있다. 사진 블룸버그·AP연합
2006년 오키나와 상공에서 찍은 후텐마 주일 미 해병대 기지 전경.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활주로를 둘러싸고 거주지가 밀집해있다. 사진 블룸버그·AP연합

“미·일 동맹을 유지하면서 후텐마(普天間) 기지를 (민간에) 반환하기 위해 헤노코(邊野古)로의 기지 이전을 하루빨리 실현해야 한다.”-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방위상

“(기지를 현 내부에서 이전하는 것에 대한 반대, 즉 현 바깥으로 이전해달라는 요청서를 전달하며) 오키나와(沖繩)의 민의(民意)는 확고하다.” -다마키 데니(玉城デニ)-오키나와현 지사

주일 미군 해병대 기지 이전을 놓고 일본 중앙정부와 오키나와 지방정부의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고노 신임 방위상은 9월 29일부터 이틀간 오키나와현을 방문해 미군 기지 이전에 대한 이해를 구했으나, 다마키 데니 지사는 현 바깥으로 이전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케이(産經)신문은 “두 사람은 예의를 갖췄지만 헤노코 이전에 대해서는 완전한 평행선을 달렸다”고 분석했다.

이전 대상인 후텐마 기지는 오키나와현에 있는 미군 해병대의 비행장으로 미 해병대의 중추인 제3해병 원정군의 항공기지다.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 해군이 이 지역을 점령한 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곳이 일본 지역 갈등의 씨앗이 된 것은 미·일 동맹 사수와 주민 안전 사수라는 양측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 헬기와 항공기가 매일 이착륙하는 후텐마 기지 비행장은 주거 지역이 담 하나를 두고 바로 붙어 있는 탓에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사고가 잦기로 악명 높은 전투수송헬기 MV-22 오스프리, 미군 헬기 중 제일 큰 CH-53E 수퍼 스탤리온 등이 매일 뜨고 내린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전(前) 국방부 장관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미군 기지”라고 말했을 정도다.

기지 이전이 본격화된 것은 1995년 미군이 현지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미·일 양국은 이듬해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미국이 일본에 후텐마 기지를 반환하고, 대신 일본은 미국에 새로운 기지 터를 찾아주기로 합의했다. 이때 일본 정부가 찾은 곳이 헤노코 해안이다. 현 바깥으로의 이전을 바랐던 오키나와 주민의 바람과 다르게 기존 기지에서 52㎞ 떨어진 곳이다.


후텐마 비행장에 CH-46 헬리곱터가 착륙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AP연합
후텐마 비행장에 CH-46 헬리곱터가 착륙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AP연합

연결 포인트 1
美 동북아 방어전략의 최전선
대만 유사시, 2시간 내 작전

일본 최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대만에서 동북쪽으로 750㎞ 떨어져 있다. 대만 유사시에 주일 미군 가운데 가장 빨리 전투병력을 보낼 수 있다. 대만에서 가장 가까운 미 해병대 기지인 후텐마 기지에서 MV-22 오스프리에 병력을 태워 보낼 경우, 2시간 이내에 대만에서 작전이 가능하다. 즉 후텐마 기지는 중국의 대만 공격 시 초기 방어의 중책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 면적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는 주일 미군 병력의 70% 이상이 집중돼있다.


연결 포인트 2
오키나와 주민 마음 얻지 못한 미·일
1945년 태평양전쟁의 상처 여전

그러나 오키나와 주민들은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둘 사이 감정의 골은 생각보다 깊다. 오키나와의 옛 이름인 ‘류큐(琉球) 왕국’은 17세기 초 일본의 침략에 속령으로 전락했다.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일본은 미군이 점령하기 직전 주민에게 ‘옥쇄(玉碎·깨끗이 죽음)’를 강요했다. 오키나와 주민 4분의 1인 10만 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지 언론 오키나와타임스는 최근 사설에서 “헤노코 기지 건설 역시 군사력 강화와 민의 무시라는 두 가지 폭력이 합쳐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결 포인트 3
美에 현내 기지 이전 약속한 日 정부
아베의 정치·외교 리더십 시험대

기지 이전은 오랫동안 미·일 관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현 안에서의 이전에 반대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던 2009~2012년 미·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던 적이 있다. 이 문제로 지지자들이 돌아서면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취임 9개월 만에 사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치·외교 리더십 시험대인 셈이다.

아베 총리의 특명을 받은 고노 신임 방위상의 어깨가 무겁다. 외무상 시절 ‘포스트 아베’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번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난관에 봉착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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