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왼쪽) 교수와 그의 남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 사진 로이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왼쪽) 교수와 그의 남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 사진 로이터

10월 14일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빈곤 문제를 연구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아브히지트 바네르지(58·미국) 교수와 에스테르 뒤플로(46·프랑스) 교수, 하버드대의 마이클 크레이머(55·미국) 교수가 공동 선정됐다. 특히 뒤플로 교수는 최연소이자 두 번째 여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종전의 노벨 경제학상 최연소 수상자는 1972년 캐네스 애로(미국)로 당시 51세였으며, 첫 번째 여성 수상자는 2009년 엘리너 오스트롬(1933~2012·미국)이었다. 여성 경제학자로 범위를 좁히면 뒤플로가 첫 번째 여성 수상자다. 오스트롬은 정치학자였다.

뒤플로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여성이 성공하고 또 성공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며 “이번 수상이 많은 여성을 계속해서 일하게 하고,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여성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올해 수상자 세 명이 “세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들의 실험 기반 접근법은 20년 만에 개발 경제학(저소득 국가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경제학)을 변화시켰고 현재 각광받는 연구 분야가 됐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무작위대조군연구(무작위 방법론 RCT·randomized controlled trials)를 통해 빈곤 문제를 바라봤다. 무작위대조군연구란 표본을 무작위로 추출해 통제 실험을 진행하고, 여기서 얻은 데이터를 해석해 사회 문제에 대입하는 연구 방법이다. 기존에는 의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에서만 통용됐는데 이를 사회 문제 해석에 적용했다.

한편 뒤플로 교수의 수상은 기존 노벨 경제학상의 수상 법칙이라 여겨지던 ‘남성·미국인·시카고대’의 세 가지 조건이 모두 깨졌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뒤플로 교수는 프랑스 출신으로 MIT의 여성 경제학자다. 작년까지 81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 여성은 오스트롬 한 명에 불과했으며, 미국 국적이 57명에 달했다. 2000년 이후 수상자만 보면 미국인(복수 국적 포함)이 37명 중 31명이었다. 작년까지 수상자 81명 중 14%에 해당하는 11명이 상을 받을 당시 시카고대 교수였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 사진 연합뉴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 사진 연합뉴스

연결 포인트 1
피케티·디턴의 불평등 분석에 이어
빈곤의 지속 가능 해결책 연구

노벨 경제학상의 연구 성과 주제에 ‘빈곤’이 등장한 것은 2015년 이후 4년 만이다. 2015년에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앵거스 디턴(74·영국) 교수가 ‘소비·빈곤·복지’에 대한 연구로 상을 받았다. 그는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복지 증진과 빈곤 감소를 위해 개인의 소비를 활용할 것을 제시했다.

최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주제는 빈곤(2015·2019)과 환경(2017) 문제 등 사회의 ‘지속 가능성’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불평등’ 문제 역시 지속 가능한 사회 구축을 위한 세계 경제계의 관심사다. 2014년에는 ‘세습 자본주의’를 지적하며 소득과 부의 불평등 문제를 다룬 책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저)’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빈곤 퇴치’에 대한 연구는 2015년 ‘소비·빈곤·복지’ 연구의 속편 격으로 볼 수 있다. 실험을 통한 실증 연구로 불평등과 국제 빈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다뤘다.


TED 강연 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TED 강연 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연결 포인트 2
무상원조만으로는 빈곤 해결 불가
‘동기 부여’있어야 근본적 해결

세 교수는 아프리카가 서양의 지속적인 원조를 받고 있음에도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지 않고 있다며, 그 원인을 세 가지 실험을 통해 분석했다.


과제 백신 접종률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해결책 렌즈콩 제공해 접종 동기 부여

아프리카는 백신 관련 기술과 인프라를 갖췄음에도 백신 접종률이 낮다. 백신 접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백신 접종을 할 때마다 렌즈콩 1㎏을 인센티브로 제공해 사람들이 접종을 미루지 않고 바로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백신 접종률이 38%까지 증가해 렌즈콩을 제공하지 않았을 경우 접종률(17%)을 상회했다.


과제 교육률 상승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해결책 ‘교육을 통한 향후 이익’에 대해 홍보

교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은 추가로 교사를 고용하고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당장의 투자가 교육 효과를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실험 결과, 교사나 장학금에 대한 투자는 1~2년 정도의 추가 교육 효과만 있는 반면 ‘교육을 통한 향후 이익’을 알리는 것은 40년간 교육 효과를 보였다. 수상자들은 이러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해 빈곤을 퇴치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제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해결책 모기장 사용에 익숙해지도록 도움

또한 이들은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무료 모기장’을 보급하는 것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실험했다. 일부 사람들은 모기장을 무료로 나눠주면 모기장의 가치가 하락해 본래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들은 실험 결과, 사람들은 모기장 구입 가격과 상관없이 모기장을 얻으면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특히 모기장의 재구매율은 모기장을 무료로 받은 사람들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높았다. 이는 모기장을 계속 무료로 보급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모기장 사용에 익숙해져 앞으로도 모기장을 스스로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보여줬다. 이 내용은 2010년 TED에서 뒤플로 교수가 강연한 17분짜리 영상에 잘 정리돼 있다.


1960년대 한강(위)과 오늘날 한강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1960년대 한강(위)과 오늘날 한강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연결 포인트 3
한국은 빈곤 퇴치의 좋은 사례
미래 바라본 투자가 긍정적 효과

뒤플로 교수와 바네르지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별로 여건이 달라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한국은 빈곤 탈출의 좋은 사례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국은 1960년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지만 2019년 세계 GDP 12위의 경제 대국 반열에 올랐다. 1960·70년대 한국은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이후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한국은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사회적 구조를 구축해 빈곤을 퇴치했다는 점에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가 시사하는 내용과 연결된다.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과거 한국의 정책은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무상 복지보다는 기술이나 교육 등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힘썼다”고 말했다. 또한 “한 명의 인재가 자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인재 그룹 확보를 통해 국가 전체적인 상향 평준화를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