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7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보잉 필드에 ‘737 맥스’ 항공기들이 세워져 있다. 사진 블룸버그
2019년 12월 17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보잉 필드에 ‘737 맥스’ 항공기들이 세워져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항공기 제조회사 보잉이 두 차례에 걸친 추락 참사로 세계 각국에서 운항이 정지된 ‘737 맥스’ 항공기의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12월 16일(현지시각) 발표했다. 보잉은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는 앞서 737 맥스의 운항 금지가 예상보다 길어지면 생산 계획을 다시 고려해보겠다고 밝혔다”며 “그 결과 다음 달부터 737 생산 프로그램을 임시 중단하고 재고 물량을 우선 처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보잉 737 맥스는 2017년부터 생산된 차세대 협동체 제트 여객기다. 1968년부터 생산된 ‘737 오리지널’ ‘737 클래식’ ‘737 NG(Next Generation)’를 잇는 보잉의 간판 라인이다. 저가 항공사가 대세로 떠오른 항공 업계 트렌드에 맞춰 우월한 연비를 내세웠다. 그러나 취항 1년여 만인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탑승객 전원이 숨지는 추락 사고가 발생하고, 다음 해인 2019년 3월에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며 전 세계적인 운항 금지 사태를 맞았다.

두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737 맥스에 새로 도입된 항공기 소프트웨어 ‘MCAS’의 오작동이었다. MCAS는 항공기가 비행 중 양력을 잃고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으로, 오작동 시 비행기 추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737 맥스는 태생적으로 기체 결함을 안고 있는 기종’이며 ‘보잉은 이를 인지하고도 전면 재설계가 아닌 보조 시스템이란 미봉책을 택해 화를 불렀다’고 관측하고 있다. 보잉은 문제가 된 MCAS를 보완하면 737 맥스의 운항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국연방항공청(FAA)이 이를 불허하며 결국 생산 중단이 결정됐다.

737 맥스뿐만 아니라 이전 기종인 737 NG에서도 기체 결함이 보고됐다. 세계 각국 항공사의 737 NG 1130대를 조사한 결과 4.7%에 해당하는 53대에서 동체와 날개가 연결되는 부위에 균열이 발견됐다. 국내에서도 점검 대상 항공기 42대 중 9대에서 균열이 발견돼 운항이 중지됐다. 보잉은 결함 부위의 부품 전체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균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보잉이 그간 보여온 ‘안전 불감증’에 전 세계 항공 업계는 ‘보잉 불신증’을 보인다.


보잉 CEO가 미국 상원 위원회에 출석한 가운데, 사고 유족들이 사망자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AP연합
보잉 CEO가 미국 상원 위원회에 출석한 가운데, 사고 유족들이 사망자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1
뒤늦게 기체 결함 인정

2018년 10월 29일 ‘라이언에어 610편’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서 이륙한 지 13분 만에 인근 바다로 추락했다. 탑승객 189명이 모두 숨졌다. 이 기체는 2개월 전 인수된 737 맥스 8 모델로 누적 비행시간이 약 800시간에 불과했다. 라이언에어 최고경영자(CEO)는 “사고 기체가 이전에도 비슷한 기술적 문제를 겪은 적 있다”고 밝혔지만, 보잉은 사고 원인을 항공사 측의 관리 부실과 조종사의 대응 실패로 돌렸다.

2019년 3월 10일에는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이 아디스아바바 볼레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지 6분 만에 추락했다. 탑승객 157명 중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다. 앞서 추락한 라이언에어 610편과 같은 모델이었고, 이륙 직후 항공기가 일정 고도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추락했다는 사고 과정도 일치했다. 의혹은 확신으로 변했고, 보잉은 뒤늦게 기체 결함을 인정했다.

‘보잉의 미래’였던 737 맥스는 ‘죽음의 비행기’라는 오명을 떠안았다. 전 세계 40여 개국은 3월 이 기종의 운항을 중단했다.


연결 포인트 2
재고 부담에 생산 중단

보잉은 각국이 운항 금지 조치를 내린 뒤에도 한 달에 42대꼴로 737 맥스 생산을 이어 갔다.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항공기 소프트웨어 MCAS를 보완하면 올해 내에 재운항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에서였다. 안정성을 검증받고 운항이 재개되면, 선주문을 받아둔 737 맥스를 각국 항공사에 인도할 수 있게 된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생산을 계속해야 했다.

그러나 보잉의 타임라인은 계속해서 틀어졌다. FAA가 면허 갱신 처리 시기를 계속해서 늦췄기 때문이다. 737 맥스에서 MCAS 외에도 추가적인 기체 결함이 발견된 것이 문제였다. FAA는 12월 11일 “보잉 737 맥스가 2020년에 운항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다”며 “여전히 많은 절차가 남아있고 그것이 완료돼야 운항 재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이르면 내년 2월, 늦으면 3월에나 FAA가 재운항 허가를 내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FAA가 항공기의 안정성을 승인해도 실제 재운항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기존 항공사가 보유한 737 맥스에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 조종사가 시범 운항을 거쳐 적응하는 데 2~3개월이 소요된다. FAA가 내준 안정성 승인을 근거로 각국의 항공 당국에서 재운항 허가를 받는 데도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바꿔 말하면 2020년 1분기까지는 신규 생산한 737 맥스 400여 대를 재고로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연결 포인트 3
저가 항공사, 항공 업계 타격

‘보잉 쇼크’의 영향은 저비용 항공사와 항공 업계 전체로도 확산하고 있다. 저가 항공사들은 이전 세대 기종인 보잉 737 NG보다 연료 소모가 14%나 적고 운항 거리도 늘어난 737 맥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왔다. 2018년 12월 737맥스 2대를 도입한 이스타항공은 싱가포르 등 중장거리 노선을 확대할 계획에 차질을 입고 있다.

보잉 737 맥스 대신 에어버스 항공기를 택하는 항공사도 늘고 있다. 2025년까지 737맥스 10대를 구입하려던 티웨이항공은 계획을 선회해 유럽 에어버스의 중장거리용 기종인 A330을 도입하기로 했다. 보잉의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인 미국 유나이티드항공도 최근 에어버스 항공기 50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전 세계 항공기의 20%를 보유한 중국 항공사들은 해외 조종사 채용을 중단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737 맥스를 대량 구입한 중국 항공사들은 업계 평균 임금 이상을 주는 조건으로 매년 한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1000명가량의 조종사를 채용해왔다. 하지만 운항 중단이 9개월 이상 지속돼 외국인 조종사에 대한 수요가 줄자 채용을 급격히 줄였다.

보잉이 737맥스 생산을 중단할 경우 전 세계 항공 업계의 부담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737맥스 생산과 관련된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약 600개에 달하며, 소규모 부품 공급 회사는 수백 곳이 넘는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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