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비 부부가 왕실로부터 ‘독립 선언’을 했다. AFP,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월 13일(현지시각) 잉글랜드 동부 노퍽에 있는 샌드링엄 영지에서 긴급 가족회의를 열고, 해리 왕손 부부의 독립 문제를 논의했다. 회의에는 여왕과 여왕의 장남 찰스 왕세자, 찰스 왕세자의 아들인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손이 참석했다. 캐나다에 머물던 메건 왕손비는 화상 통화로 회의에 참석할 계획이었으나, 보안상의 이유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왕은 회의를 마친 뒤 성명을 내고 “(회의는) 매우 건설적이었다”며 “내 가족과 나는 젊은 가족으로서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는 해리와 메건의 바람을 전적으로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는 그들이 로열 패밀리의 일원으로 늘 함께하기를 선호했다”며 “하지만 가족의 가치 있는 일원으로 남으면서 좀 더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희망을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 간 풀어야 할 복잡한 문제가 있고 할 일도 많지만, 수일 내에 최종 결정을 내도록 (가족들에게)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복잡한 문제’란 해리 왕손 부부가 어떤 방식으로 독립할지, 또 기존의 직함을 유지할지 등을 말한다.

여왕은 평소 의전에 엄격한 편이지만, 이 성명에서 해리 왕손 부부를 공식 직함인 ‘서식스 공작과 서식스 공작 부인’ 대신 ‘해리와 메건’으로 불렀다. 이에 대해 여왕이 해리 왕손 부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일각에서 나왔다. 해리 왕손 부부의 공식 직함이 박탈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 해리 왕손 부부는 1월 8일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과 홈페이지 등에 성명을 내고 “왕실 고위 구성원에서 물러나는 한편 재정적으로 독립하겠다”고 했다. 왕실과 사전에 상의하지 않은 깜짝 발표였다고 한다. 앞으로 영국과 북미에서 균형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새 자선단체를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해리 왕손 부부는 “지리적 균형은 우리 아들 아치를 키울 수 있도록 해주고, 새로운 자선단체 출범을 포함한 다음 단계에 집중할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리 왕손 부부의 독립 선언은 로열 패밀리 불화설에 기름을 부었다. 해리 왕손 부부가 결혼한 뒤부터 해리 왕손과 형인 윌리엄 왕세손 간 불화, 메건 왕손비와 친아버지의 갈등 등 언론의 사생활 관련 추측성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이로 인한 피로감 누적도 독립을 결심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해리 왕손 부부의 독립 선언 직후에도 영국의 일간지 더타임스는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윌리엄 왕세손이 해리 왕손 부부를 계속해서 괴롭혔으며, 이 때문에 해리 왕손 부부가 마치 쫓겨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손은 즉각 공동 명의의 성명을 내고 부인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분명하게 부인했는데도 케임브리지(윌리엄 왕세손) 공작과 서식스(해리 왕손) 공작 간의 관계를 추측하는 거짓된 이야기가 영국 신문에 실렸다”며 “정신 건강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는 형제에게 이런 방식의 선동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극히 불쾌하며 잠재적으로 해로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영국 언론은 해리 왕손 부부의 독립 선언을 메건 왕손비의 이름과 탈출을 의미하는 ‘exit’를 합쳐 ‘메그시트(Megxit·메건 왕손비의 왕실 탈출)’로 부르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최대 이슈였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빗댄 표현으로, 해리 왕손 부부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도 담겼다.


해리 왕손 부부가 왕실로부터 독립한다는 기사가 1월 9일 발행된 영국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사진 AFP연합
해리 왕손 부부가 왕실로부터 독립한다는 기사가 1월 9일 발행된 영국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사진 AFP연합

연결 포인트 1
잇단 스캔들…결국 왕실 탈출로

영국 왕실 직계 인사가 왕실과 결별을 선언한 것은 1936년 미국인 이혼녀와 결혼하기 위해 왕좌에서 물러난 에드워드 8세 이후 처음이다. 해리 왕손에게는 영국 왕실의 ‘문제아’라는 꼬리표가 붙었는데, 이번 독립 선언이 해리 왕손다운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대마초 흡연과 음주로 재활센터 신세를 졌고 나치 제복을 입고 파티에 참석하거나, 나체 파티를 벌이는 등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켰다. 2018년 5월 메건 왕손비와 결혼도 논란거리였다. 미국인, 흑인 혼혈, 연상, 이혼녀인 메건 왕손비가 전형적인 영국 왕실 며느리상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해리 왕손 부부는 영국 왕실 결혼식의 관례였던 복종 서약을 거부했고, 출산 직후 병원 앞에서 아이를 공개하는 관행도 따르지 않았다. 해리 왕손의 아들 아치는 작위가 없다. 영국 왕족은 아들이 태어나면 자신이 가진 작위 중 하나를 물려주는데, 해리 왕손은 아들에게 아무 작위도 물려주지 않았다. 해리 왕손이 아들은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해리 왕손 부부가 1월 7일 영국 런던에 있는 캐나다 하우스를 찾았다. 사진 AP연합
해리 왕손 부부가 1월 7일 영국 런던에 있는 캐나다 하우스를 찾았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2
혈세 낭비? 왕손 부부 생계는

해리 왕손 부부는 왕실 교부금을 받지 않고 전세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왕실로부터 재정적 독립을 한 뒤 어떤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이들이 새로 설립한 서식스 로열재단의 이름을 딴 ‘서식스 로열’ 국제 상표권이 등록되면서, 브랜드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인 메건 왕손비는 이미 디즈니와 계약해 방송·영화 활동을 재개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해리 왕손 부부는 거주지 개조 공사에 37억원 상당의 세금을 쓰는 등 혈세 낭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해리 왕손 부부가 머물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에서는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캐나다 최대 신문인 더 글로브 앤드 메일의 해리 왕손 부부 관련 인터넷 기사에는 “캐나다로 오는 것을 환영하지만 경호비나 다른 비용은 당신이 낼 것으로 믿는다.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혜택받아선 안 된다”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영국 왕실이 1월 4일 공개한 사진 속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왕위 계승자들. 사진 EPA연합
영국 왕실이 1월 4일 공개한 사진 속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왕위 계승자들. 사진 EPA연합

연결 포인트 3
세 조카에 6위로…英 왕위는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위는 찰스 왕세자이며 2위는 윌리엄 왕세손, 3·4·5위는 윌리엄 왕세손의 자녀인 왕증세손 조지 왕자, 샬럿 공주, 루이스 왕자다. 올해 94세인 여왕이 건재한 데다 72세의 나이에도 아직 왕자 신분인 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형인 윌리엄 왕세손이 있고,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출산으로 해리 왕손의 서열은 6위까지 밀려났다. 영국 왕위 계승 순위에서 우선권은 상속되기 때문에, 상위 순위에서 자녀를 출산하면 하위 순위는 모두 밀려난다. 같은 세대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우선권이 있지만, 2013년 발표된 칙령에 따라 2011년 10월 28일 이후 출생자는 성별 상관없이 순위는 출생 순서에 따라 정해진다.

버킹엄궁은 1월 초 여왕과 왕위 계승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왕위 계승 서열 1~3위인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세손, 조지 왕자가 있다. 여왕이 왕권 후계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한 것은 2016년 여왕의 90세 생일 기념 촬영 이후 두 번째다.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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