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4월 23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브리핑에서 빌 브라이언 국토안보부 과학기술국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4월 23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브리핑에서 빌 브라이언 국토안보부 과학기술국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극적이거나 황당한 말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 본토를 강타한 이후 존재감을 더 드러내고 있다. 그가 주재한 코로나19 브리핑 때문이다. 정부의 기민한 재난 대응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브리핑이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의 허술한 면모를 부각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미국에서 급격히 확산한 3월 중순 이후 브리핑을 직접 챙겨왔다. 잡음은 이때부터 끊이지 않았다. 그가 여러 차례 코로나19 정복의 비밀 무기처럼 소개했던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대표적이다. 트럼프의 말과 달리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임상시험 결과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란의 정점을 찍은 장면은 4월 23일(이하 현지시각) 열린 브리핑에서 등장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국토안보부 소속 빌 브라이언 과학기술국장이 “바이러스는 고온 다습한 환경에 약하고 살균제에 노출되면 빨리 죽는다”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자, 곁에 있던 트럼프 대통령이 “환자에게 자외선과 강한 햇볕을 쬐게 하거나 살균제를 주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라고 말한 것이다.

미국 여론은 즉시 들끓었다. 보건 당국에 빗발친 살균제 관련 전화 문의 때문에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환경보호청(EPA)은 살균제를 인체에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발표해야 했다. 살균제 제조사 레킷벤키저도 “살균 제품이 사람 몸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성명서를 내놨다.

거센 후폭풍을 접한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인 4월 24일 브리핑에서 질문을 받지 않았고, 이후 26일까지는 아예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 기간에 70여 건의 트윗 폭탄을 쏟아부으며 야당인 민주당과 자신에게 적대적인 언론을 비난했다.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의 기괴한 발언이 그의 행정부에 충격을 줬다”고 보도했다.


중국·북한 발언으로 상황 모면 시도

사흘 만에 모습을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 관련 멘트로 화제 전환을 노렸다. 그는 4월 27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기 전에 중국이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중국에 대해) 심각한 조사를 하고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은 많다”는 말도 남겼다.

트럼프는 북한에 관해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잘 알고 있지만, 말해 줄 순 없다”고 했다. 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여러분도 (김 위원장 소식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CNN이 4월 20일 김 위원장 위중설을 보도한 직후 “우린 모른다”라고 답한 바 있다. 이후 “CNN 보도는 가짜 뉴스”라고 입장을 바꿨다가 “그의 상태를 잘 알고 있다”로 또 한 차례 입장에 변화를 준 것이다. 그런데 28일에는 다시 “김 위원장이 잘 있기를 바란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트럼프 이름이 적힌 양말을 신고 있다. 사진 AP연합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트럼프 이름이 적힌 양말을 신고 있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1
대선 패배 우려하나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조급함이 최근 그의 발언 수위를 더 높인 배경일 수 있다고 말한다. 갤럽이 4월 19일 발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율은 3월 중순 49%에서 한 달 만에 43%로 6%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45%에서 54%로 9%포인트 늘었다. 폭스뉴스 여론 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와 미시간주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게 약 8%포인트 차이로 밀렸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셀프 홍보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그는 4월 26일 “나를 알고 미국 역사를 아는 사람은 내가 역사상 가장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이란 사실을 안다. 첫 번째 임기 3년 반 동안 어느 대통령보다 더 많은 것을 이뤄냈다”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4월 13일 브리핑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을 갑자기 틀기도 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NIAID 소장으로 변신한 배우 브래드 피트가 SNL에 출연해 상황극을 펼치고 있다. 사진 AP연합
앤서니 파우치 미국 NIAID 소장으로 변신한 배우 브래드 피트가 SNL에 출연해 상황극을 펼치고 있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2
잇단 구설수에 동네북 신세

미국 방송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종종 풍자극 소재로 활용한다. 4월 25일 NBC 코미디쇼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SNL)’에는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으로 변장한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다. 피트는 평소 반(反)트럼프 인사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 방송에서 피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관련 발언을 검증해 보자”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피트는 트럼프가 “모든 미국인이 검사받을 것”이라고 말한 장면을 보여주며 “대부분 검사받지 못할 것이란 뜻”이라고 했고, 트럼프가 코로나19 검사를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면봉으로 뇌를 간지럽히는 게 아름답다는 것이냐”고 비꼬았다.

공화당 소속 정치인도 트럼프 비판에 동참했다. 래리 호건 미 메릴랜드주 주지사는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그냥 말하면 잘못된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했다.


탑승객이 없어 텅 빈 미국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공항. 사진 EPA연합
탑승객이 없어 텅 빈 미국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공항. 사진 EPA연합

연결 포인트 3
결국 재선 열쇠는 경제

그간 숱한 즉흥적·돌발적 발언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견고하게 받쳐준 건 ‘경제’였다. 4월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발표한 설문 조사에서도 ‘누가 더 경제를 잘 이끌 것 같으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7%가 트럼프를 택했다. 바이든 후보를 고른 이는 36%에 불과했다. 어설픈 코로나19 대응으로 트럼프 지지율이 떨어져도 꾸준히 40%대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남은 반년 동안 미국 경제를 어떻게 다시 끌어올리느냐다. 현재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100만 명, 사망자는 5만 명에 이른다. 미국 전체 노동인구의 16%인 2645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1분기에 이어 2분기 경제 성장률도 마이너스가 확실시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대규모 국가 행사를 예고하며 그날을 ‘코로나19 해방일’로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내 코로나19 종식과 경제 정상화를 선포해야 11월 대선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