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을 펼쳐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0월 12일 ‘프랑스 2030 투자 계획’을 통해 원전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블룸버그
탈원전 정책을 펼쳐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0월 12일 ‘프랑스 2030 투자 계획’을 통해 원전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블룸버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0월 12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2030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소형 모듈화 원자로(SMR)’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웠다. 원자력 발전(원전) 사업에 10억유로(약 1조401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10월 18일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전에 6기의 새로운 유럽형 가압 원자로 건설 소식을 발표하기를 원한다는 보도가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를 통해 흘러나왔다. 2017년 취임한 마크롱 대통령은 원자로 14기를 닫고 전력 생산에서 원전 비중을 2035년까지 75%에서 50%로 낮추겠다고 공언했었다. 마크롱의 친원전 변심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의 브뤼노 르메르 경제장관을 비롯한 핀란드 등 유럽 10개국 16명의 경제·에너지 장관은 “원전은 기후 변화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최상의 무기”라며 원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동 기고문을 10월 11일 유럽 각국 주요 신문에 게재했다. 이들은 기고문에서 “올해 말까지 유럽연합(EU)의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 리스트에 원전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유럽 바깥) 제삼국의 에너지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경쟁력 있는 대량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바로 원전”이라고 했다.

영국도 정부 대변인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향후 수년 내에 최소 한 건의 대규모 원자력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0월 17일 전했다. 비슷한 시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원전 비율을 높여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대책을 담은 ‘넷제로(탄소 배출량 0)’ 전략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SMR 개발 투자를 늘리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탈원전으로 방향을 잡은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국가들이 원전 확대로 돌아선 뒤에는 에너지 대란이 있다. 올해 들어 유럽의 에너지 가격은 연초 대비 400%가량 뛰어올랐고,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 1월 이래 유럽 전역에서 평균 3.5배 상승했다. 일차적 원인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에너지 수요가 늘어난 것과 에너지 원자재 가격 급등이다. 기후 변화 위기 속 국제 사회가 ‘탄소중립’을 위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춘 상태에서 청정에너지 투자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에너지 쇼크라는 평가도 있다.

문제는 유럽이 천연가스 수요의 약 50%를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에너지 대란이 국가 안보 문제로까지 부각되고 있다는 데 있다. 신에너지 투자가 성숙되기 전에 성급한 탈탄소 행보가 에너지 안보를 흔들자 ‘친원전’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은 탈원전을 고수하고 있다. 태양광·풍력 등 그린 에너지로의 과속 전환 탓에 부각되는 ‘그린 플레이션’이 유럽의 탈탄소 정책을 양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결 포인트 1
신(新)에너지 전환 투자 불균형
에너지 대란 야기

“에너지 쇼크는 아직도 전 세계가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화석연료 투자가 줄어든 만큼 청정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늘지 않아, 폭발하는 에너지 수요를 에너지 산업이 감당하지 못했다는 분석을 10월 17일 내놓았다. 최근의 에너지 대란이 투자 불균형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화석연료 공급이 줄어든 만큼 그 격차를 채울 규모의 그린 에너지 투자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IEA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고 기후 변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가 청정에너지 투자를 올해 1조1000억달러(약 1325조원)에서 2030년까지 연 3조4000억달러(약 4097조원)로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산쿠가트델발례스에 건설된 태양광 에너지 발전소. 사진 블룸버그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산쿠가트델발례스에 건설된 태양광 에너지 발전소. 사진 블룸버그

연결 포인트 2
탈탄소 선진국 스페인·이탈리아
탈원전 부작용

‘탈탄소 모범국’으로 분류되는 스페인은 최근 1년 새 전기료가 5배 급등했다. 주요 에너지원인 천연가스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풍력 발전량도 기상 변화로 줄어들면서 전력 대란이 발생해 전기요금이 인상됐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2025년부터 2035년까지 전국에 설치된 총 7개의 원전을 모두 폐쇄한다고 밝힌 바 있다. G7(주요 7국) 중 가장 먼저 모든 원전을 폐쇄한 이탈리아는 이번 에너지 대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양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으며, 전력 공급량의 16%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탈원전 탓에 에너지 주권을 잃어버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8일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8일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연결 포인트 3
탈원전·탈탄소 가속 한국
산업계 우려 커져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급격한 변화가 기업의 생산 설비 신·증설 중단, 해외 이전, 고용 감소 등 국가 경제의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10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 제2차 전체회의에서 탈원전을 고수하고, 탈탄소를 가속화하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을 확정하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내놓은 반응이다. 탄중위는 2050년 ‘넷제로’ 달성에 앞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26.3%에서 크게 상향된 40%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작년 19%였던 원전 발전 비율은 2050년까지 6.1~7.2%로 줄어든다. 산업계는 전력 생산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체계를 급격하게 전환한다면,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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