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최첨단 기술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AP연합
미국과 중국이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최첨단 기술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AP연합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1890년을 전후해 글로벌 리더였던 스페인은 신흥 강자로 부상하는 미국과 쿠바에서 사활을 건 전쟁을 벌였다. 당시 스페인이 쿠바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데 열중하고 있을 때 미국이 지리적 이점을 통해 투자를 늘리고 무역량을 확대하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한 것이다. 스페인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쿠바에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중단토록 강요했고, 이에 미국은 쿠바로부터 들여오던 설탕에 대해 관세를 부과해 보복했다. 무역 전쟁은 곧바로 무기를 동원한 전쟁으로 비화했다. 양국 간 충돌은 글로벌 강자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쉽게 마무리됐다.

그 이유로 군사전문가들은 군함의 성능이 아닌 통신기술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당시 미국은 거의 모든 군함에 전신(통신) 시설을 갖춰 상륙작전과 해안공격 그리고 친미 성향의 쿠바 내 독립군과 유기적으로 작전을 전개한 반면 스페인은 산티아고 해안에만 머물면서 화력에만 의존해 수비하는 데 치중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세계 최고의 항해력을 자랑하는 스페인 함대가 맥없이 무너진 것은 미군이 보유 통신기술의 우월성을 내세워 협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부흥을 위해 기술전쟁이 일어나는 것처럼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그 기저는 다르다. 정보통신기술(ICT)이 국가안보와 군사작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한다. 더구나 미래 전쟁은 첨단 통신장비를 통해 정보를 빼내고 내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는 능력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에서 시계추를 좀 더 현대로 돌리면 더욱 생생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영국군에 패한 것은 통신망이 마비되면서 자국 군대 간에 유기적인 작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영국은 첨단 통신기술을 확보해 독일의 거의 모든 통신망을 차단하며 연합작전을 불가능하게 했다. 이로 인해 독일군은 제때 진격과 철수를 하지 못해 많은 병력을 잃었고 공격 작전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냉전에 종말을 고하게 된 구소련의 붕괴도 통신과 관련돼 있다. 구소련은 해저에 매설된 통신망을 통해 정보를 전달했는데 암호화하는 기술이 없어 미국 정보 당국에 그대로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산업 전쟁은 안보 전쟁에서 출발

최근 반도체와 관련 기술을 두고 미국과 중국 간의 날카로운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다. 겉으로는 산업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포장되고 있지만 반도체를 디딤돌 삼아 보다 앞선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확보하려는 전략이 깔려있다. 중국은 1980년 초 개혁·개방과 더불어 ICT 기술 확보를 위해 막대한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왔다. 이런 노력의 대표적인 결과물이 세계적인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의 부상이다.

미국은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간첩 활동에 이용될 수 있다고 동맹국 등에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통신 전략이 민간과 정부, 특히 민간과 군(軍)과의 경계가 모호한 민·군 융합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5G 등 첨단 통신을 두고 표준화 전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표준화를 선점해야 보다 우월한 통신 플랫폼에 올라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부 정책을 통해 산업의 구조 전환과 혁신을 선도하고 있으며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을 통해 표준화를 선도하면서 반중국 5G 동맹을 띄우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과 달리 통신기술 표준화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투자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외연을 확장하는 것은 물론 ‘디지털 실크로드’에 심혈을 기울이며 인터넷 초강국으로의 부상을 꿈꾸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공급망 전쟁은 결국 통신장비와 관련 기술의 진보에 대한 지름길 확보를 두고 벌어지는 충돌로 이해된다.

중국은 희토류 왕국으로서 통신기술 진보에 필수적인 배터리와 디스플레이의 생산을 좌지우지할 파워를 갖고 있다. 한때 중국의 희토류 생산 비중은 전 세계의 90%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그 비중이 60% 정도로 낮아졌다. 최근 중국과 통상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호주의 생산량이 매우 증가한 결과지만 여전히 무시하지 못할 지배력을 갖고 있다. 또한 중국은 자국 기업에 차별적인 조치를 할 경우 보복할 수 있는 반외국제재법(反外國制裁法)을 올해 6월에 통과시키고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같은 시기에 미국은 대통령 명령에 따라 4대 핵심 품목(반도체·배터리·필수광물·의약품)에 대한 공급망 점검 결과를 내놓고 연구개발(R&D) 등 다양한 지원은 물론 동맹국과 손잡고 국제공조 및 수출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미래 전쟁은 AI 기술이 선봉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군사 장비에 채용하는 과정에서 국제 경쟁이 과열되며 제2의 통신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미래 전쟁은 전투기와 보병의 참가를 전제하는 전면전보다는 AI 기술이 선봉에 설 것으로 점쳐진다. 로봇, 드론, 무인기 등에 AI를 어떻게 응용하느냐가 군사적 우위 확보는 물론 국제 질서 재편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강대국이라도 AI에서 뒤처지면 경제적 측면에서의 경쟁력 상실은 물론 안보위협에 바로 노출되는 상황이다.

올해 3월 미국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회(NSCAI)는 700쪽이 넘는 보고서를 내고 미국이 AI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국방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의회와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통신과 AI를 통한 국방력 문제는 국가 간 사이버 공격에 대한 우려로 연결된다. 최근 미국의 송유관 업체, 육류가공 업체와 지하철, 선박 등이 랜섬웨어(ransomware·몸값 요구하는 악성코드)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는 일이 현실이 됐다. 올해 5월 초 미국 동남부에 대한 석유 공급 점유율이 45%에 달하는 업체가 공격을 받으면서 엿새간 주유 대란이 벌어진 게 대표적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국이 돈을 주고 위기를 극복했을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이다. 해커의 탈을 쓰고 특정국이 통신망이나 에너지 네트워크를 마비시킬 경우 9·11 테러에 버금가는 타격이 우려된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에 따라 AI를 통해 상대의 공격 의도를 한발 앞서 신속히 파악하고 복구 능력을 제고하는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원자재 공급망과 통신기술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격돌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무역 전쟁이 언제든지 형태를 가늠하기 힘든 방향으로 확전될 수 있다. 5G를 넘어선 6G(6세대)와 AI 기술은 향후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점치기도 힘들다. 분명한 것은 이런 기술이 산업은 물론 안보도 좌우할 것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인력양성론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미국처럼 디지털 인재육성기관을 설립해 인재풀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해 특수직 형태의 디지털 전문가를 충분히 확보해 비상시에 대비하는 플랜을 실행해야 한다. 국가안보가 전투기보다 디지털 인력과 인프라에 더 좌우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최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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